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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23. 2015

바위섬-김원중(1984年)

초등학교 6학년 학예회 때 설렘...2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참 의미

초등학교 6학년 2학년 학예회 준비하던 그때. 친구들과 난 반 친구 집에 모여 노래 연습을 했다. 별명이 '진흙탕'이었던 친구... 사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친구... 이 친구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난 알아요' 노래에 맞춰 춤 연습을 했다. 나도 그 친구를 따라 춤을 춰보려 했으나.... 이 때 난 알게 됐다. 몸치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 이후로는 춤 시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클럽 한 번 가지 않았던 것도 그때의 깨달음 때문이다.


학예회 준비가 무르익어갈 때 즈음. 우린 합창곡을 골라야 했다. 누군가 이 노래를 추천했고 우린 이 노래를 열심히 연습했다. 난 사실 당시 학예회에서 빠지고 싶었다.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내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난 수줍었다. 민망했다.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창피했다. 용기가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합창곡은 예외가 없었다.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바위섬이 인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바위섬이란 곡이 당시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곡이 선정됐다는 것밖에... 악보를 받아들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잊지 못할 기억 하나가 있다... 무대에 남녀가 번갈아 서기로 했다. 그리고 모두다 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많이 설렜던 기억이 난다. 내 생애 처음으로 이성과 손을 맞잡는다는 것에 밤잠을 설쳤다.


큰 키(165센티미터는 됐던 것 같다. 당시 내 키는 144센티미터. 생활기록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에 성당을 다녔던 여자애. 하교할 때면 늘 마주쳤던 그 아이. 함께 걸었지만 서로 어색해 멀찌감치 떨어져 걷던 추억.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이 노래가 흘렀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난다. 잘살고 있겠지? ㅎㅎ


https://youtu.be/x8hbukdXoBY

[가사] 김원중|3집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 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바위섬이란 노래에 대해서. 그래서 찾아봤다. 찾아보니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노래였다.


다음은 경향신문 내용이다.


1984년 나온 가수 김원중씨의 ‘바위섬’은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중년들은 그 노래를 기억하고, 부른다. 세대가 달라도, 제목은 몰라도 노래를 들으면 “아, 이 노래!”라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대중에게 알려진 노래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아는 모두가 노래에 담긴 속뜻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시절을 풍미한 ‘유행가’ 정도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중략)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 하에서 ‘5·18 광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였다. 198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정오차씨는 ‘바윗돌’이란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오차씨는 ‘바윗돌’의 의미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이고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권과 대척점에 있던 ‘5·18 민주열사’의 넋을 기리는 노래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 방송을 탄 셈이다. ‘바윗돌’은 바로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김원중씨도 데뷔 방송에서 바위섬이 ‘5·18 광주’를 의미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방송에서 처음부터 내놓고 바위섬의 의미를 얘기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방송에 나갈 때마다 ‘나는 광주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씨는 방송이 아닌 개인 공연 무대에서 바위섬의 의미를 소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바위섬’은 ‘5·18 광주’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바위섬’은 금지곡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김원중씨는 “관리자들이 제 말을 잘 못들었든가, 아니면 제가 얘기를 잘 (애둘러) 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바위섬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2위를, 라디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바위섬’은 북한 사람들도 아는 노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보면, 북한 평양 김일성 대학 젊은이들 사이에서 ‘바위섬’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전문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리뉴스]노래 ‘바위섬’은 고립된 섬, ‘5·18 광주’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714160958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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