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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06. 2015

어머님께 - GOD(1998年)

학창시절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엄마와 나

이 노래를 들으면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그 시절...


재봉틀

엄마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셔서 재봉틀 일을 하셨다. 옥상을 고쳐 천막을 만든 공간. 그곳은 여름이면 땀이 비 오듯 했고 겨울이면 한기가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런 환경에서 엄마는 하루 18시간 이상 자식을 위해 일하셨다.


가래떡

그래도 이곳 천막에서의 추억은 있다. 가래떡과 고구마, 밤 등을 난로에 구워 먹던 추억. 석유 냄새가 진동했지만 이렇게 먹는 간식은 일품이었다. 특히 가래떡은 지금 생각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어머니가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는데 가래떡을 좀 구워 먹어봐야겠다. 꿀에 찍어서!


등굣길

학교 갈 때면 난 김을 하나 사서 가려고 했다. 지금은 300원 정도 하는 그런 김... 당시엔 양반김이 대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락을 열어보지 않아도 내 반찬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밥통에 꽉꽉 눌러 담긴 흰 쌀밥 그리고 원형으로 된 철통에 한가득 들어간 신김치... 내 도시락은 거의 이랬다. 밥과 김치가 내 도시락 반찬이었다. 그래서 난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아껴두었다가 등굣길에 김이나 참치캔을 사갔다.


신김치

점심시간이면 난 친구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도시락 반찬이 너무도 민망해서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 그저 민망해하는 나를 농담으로 상황을 모면하게 해줬다. 난 그들의 도시락 반찬을 먹는 게 늘 미안해서 되도록 내 반찬만 먹으려고 노력했다. 내 별명이 신김치였던 것도 이런 이유였을까... 늘 생각하지만 내 친구들은 참 착했다.

비엔나소시지

엄마에게 반찬 투정을 해보기도 했다. 당시 인기 있던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를 사다가 내일 아침 도시락 반찬으로 해달라고 신경질을 부린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다. 엄마는 집에서 하루 세끼를 밥과 김치만 드셨었는데... 수면 부족에 영양 부족이셨을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짜장면

고 2 때 아버지와 충돌해 쫓겨난 적이 있다. 그때 난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면서 등하교를 했다. 당시 엄마가 걱정돼 집 밖을 서성댔다. 그때 엄마는 나를 집 인근 짜장면집으로 데려가셨다. 짜장면은 한 그릇만 시켰다. 엄마는 배가 부르다는 하셨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때 우리 집은 가족여행은커녕 한 달에 한 번의 외식도 쉽지 않았다. 짜장면을 먹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대단한 집념

부모님은 온종일 한 달을 일 해도 160만 원 벌이가 쉽지 않았다. 하청업자한테 돈을 받지 못하신 때도 꽤 있었다. 그달 벌이는 마이너스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저축까지 한 부모님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요즘 난 아이 하나 키우는 데도 힘이 부치는데... 부모가 되니 이제야 그때 엄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다고 깨닫게 됐다. 난 그런 과거가 있어 행복하다. 그땐 도시락을 여는 게 창피했지만, 지금은 도시락 추억을 꺼내보는 느낌이 참 행복하다.



god - 어머님께 MV (뮤비) (1999)
"어머니 보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것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니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중학교 1학년때 도시락 까먹을때
다같이 함께 모여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부자집아들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어
반찬이 그게 뭐냐며 나에게 뭐라고 했어

창피했어 그만 눈물이 났어
그러자 그녀석은 내가 운다며 놀려댔어
참을수 없어서 얼굴로 날아간 내 주먹에
일터에 계시던 어머님은 또 다시 학교에

불려오셨어 아니 또 끌려오셨어
다시는 이런일이 없을 거라며 비셨어
그녀석 어머니께 고개를 숙여 비셨어
(우리 어머니가 비셨어)

야이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아버님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마침내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갖게 됐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행복했어
주름진 어머니 눈가엔 눈물이 고였어

어머니와 내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식당이름을 짓고 고사를 지내고
밤이 깊어가도 아무도 떠날줄 모르고
사람들의 축하는 계속 되었고

자정이 다되서야 돌아갔어
피곤하셨는지 어머님은 어느새 깊이
잠이 들어버리시고는 깨지 않으셨어

다시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번도 말을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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