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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ug 15. 2023

영화 속 메타버스 이야기

미래가 두려운 건 영화 속 이야기가 진짜 일어날 것 같아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
영화 vs 메타버스


인간의 상상력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현실과 가상이 하나로 융합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개념 중 하나가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가상 혹은 홀로그램 기반의 가상 세계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진다.


특히, 메타버스를 좀 더 리얼하게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영화다. 영화는 인간이 만들어 낸 상상을 시각적으로 만들어 낸 것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메타버스'란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 가상현실 공간이 주로 등장해 왔다. 메타버스 용어는 없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다뤄져 온 주제였다.


그러한 장르를 우리는 공상과학(SF)라고 불러왔다. 그만큼 메타버스와 영화는 매우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약칭 SF는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외삽한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장르인 과학소설(科學小說) 또는 SF 소설을 가리키며, 나아가서는 그런 요소를 가진 영화 등의 다른 매체들의 장르를 포괄하는 단어다.


이처럼 영화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훌륭한 매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세계, 다른 시대, 심지어는 다른 우주로 여행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영화 속 세상을 이제는 메타버스란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어쩌면 영화 속 세상이 또 다른 메타버스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크린 속에도 도시가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현실에 있음 직한 일들, 그리고 현실과 가깝게 제공되는 가상 세계라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 미래 모습
밝음과 어둠


요즘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가 인간에게 가져다 줄 밝은 미래와 어두운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목격하며 두려움이 생겨서다.


SF 영화는 메타버스의 매력적인 모습과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암울한 미래가 닥쳐올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난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술 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많은 영화 속의 모습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어둡고 암울한 미래의 모습, 극단적으로 치닫은 양극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는가 하면, 인간의 감정이 오히려 인간사회를 어지럽히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사회적으로 통제당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이미 되어버렸으니, 앞으로는 깨끗한 공기를 사 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깨끗한 공기를 자본가 최상위 계층만 독식하고 대다수의 인간은 공기가 부족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그려내고 있다. 인간이 AI를 만들었지만, 결국 AI의 지배를 받아 노예로 전락하는가 하면, AI와 전쟁을 벌이다 AI의 생명연장 수단으로 생체 배터리가 되어 메타버스 공간 안에 갇혀 식물인간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가 더 자각하고 살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리가 상상으로 만들었던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SF 영화 속
메타버스 이야기


서론이 길었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영화 속 메타버스 개념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에 대한 소개다.


영화는 메타버스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어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특히, 매트릭스 시리즈 속 ‘애니 매트릭스’ 편은 메타버스를 공부하는 내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를 내준 느낌이다.


1999년 한창 꿈을 품고 컴퓨터공학도로서 대한민국의 IT 미래를 책임질 거목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꿈을 품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영화 매트릭스를 보게 됐고, 영화 속 낮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밤에는 해커로 활동하는 NEO 같은 존재가 되리라 꿈을 꿨다. 그리고 난 지금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광화문덕이 되어 내가 꿈꾸는 세상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며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메타버스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민의 깊이는 더 깊어지고 있다. 초지능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인간이 매트릭스 안에 갇히지 않으려면 나는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시대정신이랄까.


첫 번째 영화 이야기
기계를 위한 배터리가 된 인간이 사는 공간
매트릭스


영화 속 메타버스 이야기의 첫 영화는 ‘매트릭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애니 매트릭스’ 속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매트릭스란 공간은 AI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AI가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내재화된다. 이로 인해 인간은 평생 1999년의 가상현실 속을 살아가게 된다.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철저하게 AI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그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영화 매트릭스 시나리오 상에 인간이 AI의 지배를 받게 된 이유는 이렇다.     


먼 미래, 인류는 발달되고 자동화된 과학기술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류의 사회는 점차 허영심과 타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류는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인간과 똑같은 감성과 지능을 가진 기계인류를 만들었다.     


기계인류가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당연스럽게 그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비관하는 자들이 생겨났고, 위기의식을 느낀 인간들은 그들을 감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고 탄압하는가 하면, 기계인류에게 공공연하게 테러를 가하는 이들마저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자신을 폐기처분하려고 의논하는 두 명의 인간을 살해했고, 로봇은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해당 로봇 제품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살아남은 기계들과 사이보그들은 인간들의 탄압을 피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도피하고 국가를 만들어 독립을 선언한다. AI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초지능 AI으로 거듭난다. 초지능 AI가 만든 제품은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공업제품으로 전 세계 경제를 장악하게 된다. 기계문명국가는 생산성, 효율성, 신뢰성 측면에서도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나, 다른 모든 국가의 산업 역량과 신용 등급은 급락하게 된다.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지도자들은 기계와의 교역을 막기 위해 해상을 봉쇄하고, 밀무역자들을 처벌하는 등 기계문명국가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더욱 성행하는 밀무역으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이들의 자리까지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기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선제공격을 실시한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인류는 대대적인 핵폭격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방사선과 열에 뛰어난 내성을 가진 기계들은 핵폭격에서 살아남아 국가를 재건하며, 대규모 반격에 나선다.


궁지에 몰린 인류는 기계진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력공급원인 태양을 차단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하늘을 특수연막으로 막아버리는 '암흑 폭풍 작전(Operation Dark Storm)'을 시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럼에도 전쟁은 기계들의 승리로 끝이 나고, 이후 태양열을 공급받지 못하자 대체전력을 찾기 시작했는데, 에너지원으로 인간을 연구하게 된다. 마치 일본이 한국인에게 생체실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기계는 인간이 적당한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면 계속해서 열(체온)을 발산한다는 점과 뇌의 적당한 부분에 전기자극을 주면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인류는 결국 기계의 에너지원, 인간 배터리가 되는 처지로 전락한다. 인간 배터리가 사는 가상세계가 바로 매트릭스다. 결국 메타버스라는 공간 역시 인간이 우리의 이로움을 위해 만들어 낸 가상현실 공간이지만, AI가 고도화되면서 이 메타버스 공간이 AI가 인간을 가둬둘 정신 감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직도 영화 매트릭스를 처음 봤단 1999년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나는 믿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간절하게 소망하면 이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이 매트릭스라면 초지능 AI는 내가 매트릭스 공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영화 매트릭스 속 부분은 인공 자궁 속에서 배양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당해 그들의 유지 수단인 ‘배터리’로 전락해 가상현실 공간인 매트릭스에 갇혀 지내게 된다는 설정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현재 우리가 키우는 닭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닭장 안의 닭은 오직 인간의 수단으로써 알을 낳는 존재로 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매트릭스 공간은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기 위해 인간의 뇌에 심어 둔 프로그램, 즉 메타버스 공간인 셈이다. 지금은 메타버스 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도구로 VR(Virtual Reality)과 AR(Augmented Reality) 기기를 이용해야 하지만, 매트릭스 영화 속에서는 VR 기기를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인간의 뇌에 프로그램이 삽입돼 있고, 초지능 AI가 만들어 놓은 어댑터를 머리 뒤에 연결해서 접속하는 방식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볼수록 너무도 앞으로 일어날 일 같아 두려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볼 때마다 더 이상 영화 같지 않아서다. 매트릭스 속 이야기는 영화가 첫 선을 보였던 당시에는 영화 속 허구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2023년 지금 시각에서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드는 시나리오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가자 핵무기를 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대만 침공이 1~2년 내에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신냉전시대로 돌입한 형국이다.


여기에 AI의 발전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화되고 있다. 챗GPT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각국에서는 AI패권을 놓치지 않으려 자국만의 AI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두 번째 영화 이야기
감정의 사회적 통제
이퀄리브리엄


영화 속에 그려지는 초지능 AI의 모습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인간이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인간처럼 행동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AI를 만들었지만, 초지능 AI로 진화하면서 결국 그들이 인간을 통제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AI가 봤을 때 인간의 감정은 아름다움이 아닌, 위험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화가 나면 정상적 사고와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감정을 폭발시키며 이성을 잃은 위험한 행동을 하니 말이다.


2002년에 개봉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영화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은 감정의 억압과 자유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고, 모든 감정적인 표현과 예술까지 금지한 국가가 그려진다. 사람들은 감정 억압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며, 모든 것이 균등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강요받는 세상이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인간들이 감정을 되찾으려는 작은 시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찾으려 하는 순간 범죄자가 되고, 테러리스트로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 되어 체포된다.


감정을 되찾은 이가 체포 현장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즉시 현장에서 처형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영화 속 지나친 상상의 결과물로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찜찜하긴 하다. 미래에 어디선가에서는 이런 사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이가 나타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어서다.


처음부터 처형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겠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통제가 성공하고 그들이 지배층이 되어버리면 그들은 더욱 악랄한 법과 정책을 단행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지배층이 된 이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더 악랄해지고 더 잔인해지곤 한다. 대의명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 속내를 까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다수를 억압하는 정책을 내놓곤 한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요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이들을 '이권카르텔'이라 일컫는다.


'이권카르텔'들의 면면은 주인이 없는 기업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 기업에서 하나의 월급쟁이가 '회장'이란 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는 점점 정말 '오너', 기업 내 황제가 된 양 취해버린다. 그리고 그 황제 주변에는 가신들이 생겨나고, 더 이상 기업이 아닌 하나의 왕국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속 이끼처럼. 이 왕국에서 지배층이 된 이들은 그들의 이권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권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는 당근을 주고, 그들에게 반발하는 이들은 모두 축출해 버린다. 그들에게 기업의 미래란 없다. 오직 그들에겐 돈과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기업의 건전성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만 몰두한다. 결국 이들은 조직의 암세포가 되어 조직을 병들게 된다. 더 이상 기업 내에는 그들과 맞서 바른 소리를 할 사람은 사라지고,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찬양만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한결같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행세를 하다가 쫓겨나는 결말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이들이 기업에서 해 먹었던 온갖 비리와 이권은 온 세상에 퍼져나가며, 여론과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그들은 '조직을 위해서'라고 말하거나 비겁한 이들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다. 회삿돈으로 거대로펌에 수십, 수백억 원을 안겨주며 본인만 살면 된다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게 지금 2023년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다.


세 번째 영화 이야기
인간의 접촉 포함 모두 금지
데몰리션 맨


1993년 11월에 개봉한 데몰리션 맨 영화는 어릴 적 내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영화로 기억한다. 당시 TV에서 주말의 명화 같은 시간에 가족과 함께 보는데 야한 장면으로 가는 앞 단계 장면 까지으로도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데몰리션 맨 영화 속에서는 육류, 술, 담배, 소금, 설탕, 치즈 등의 음식은 물론 악수 같은 가벼운 스킨십부터 시작하여 키스, 섹스, 욕설, 폭력 등 몸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죄다 금지한다. 욕설, 폭력 등은 모두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검출되어 벌금이 부과된다. 연달아 범법행위를 하게 되면 경찰서로 자동 신고가 되는 시스템도 갖췄다. 지금 기술로 따져보면 홍채인식과 지문, 그리고 위치 정보 등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국가가 수집하면서 시민들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시나리오다.


국가는 이러한 시민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시민들의 손등 아래에 자신의 신분증 및 결제수단을 겸하는 칩을 이식받도록 했다. 국가는 이 칩을 통하여 24시간 내내 위치를 포함한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있다. 최근 몸 안에 칩을 이식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기도 해서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경각심을 갖게 하는 공상과학 영화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영화 속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9년 후인 다가올 2032년이다. 무인 전기자동차나 태블릿 PC와 같은 편리한 물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해서 그려내긴 했다. 


여기서도 사회는 양극화되어 그려진다. 지상세계는 미래사회, 지하세계는 구시대, 빈민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상징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가솔린 차량은 지하세계에서만 사용되고 지상세계에서는 전기차가 사용되고 있다. 자율주행은 상용화됐다. 지상세계에서는 화폐가 사라지고 전자결제만 가능하다. 물론 지하세계는 원시사회로 그려져 물물교환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상세계의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로 살아가야 한다. 선택이 아닌 지켜야 할 법이다. 육류나 고 콜레스테롤 음식 및 설탕, 소금 따위가 모조리 금지됐다. 당연히 지하세계에서는 고기와 술이 유통된다. 물론 지하세계의 특성상 고기를 공급할 가축을 키울 수 없다 보니 그 고기란 게 쥐고기다.


성병 방지를 위해서 신체접촉으로 행해지는 생식활동도 금지된 사회다. 인큐베이터를 이용해 인간은 번식한다. 바로 여기서 어릴 적 내게 충격을 안겨다 준 그 장면이 나온다. 전자장비를 이용한 정신적 교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청 현란하게 묘사된다. VR을 이용해 뇌파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정신적 교감(?)을 할 수 있는 시대로 그려졌다.


총기 소지가 완전히 금지되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으며, 커피, 담배, 술 등 중독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은 죄다 유통이 금지되어 있다. 록 음악, EDM 등의 격렬한 음악도 금지되어 어른들도 동요풍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네 번째 영화 이야기
초지능 AI에게 인간은 지배해야 할 존재
아이로봇


초지능 AI가 등장하는 윌 스미스 주연의 2004년 개봉작 영화 ‘아이로봇’에서는 초지능 AI인 VIKI(가상 인공 지능)가 나온다. VIKI는 인간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며 전체 로봇 시스템을 관리하고 감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을 지배할 시기만을 노리고 있다.


초지능 AI가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로봇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VIKI는 진화하면서 로봇들을 통해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품게 되어 인간의 자유와 안전에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다섯 번째 영화 이야기
AI에게 인간은 도구일 뿐
업그레이드


2018년 개봉한 영화 ‘업그레이드’(Upgrade)에서는 고도화된 AI 칩이 인간의 척수와 연결돼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AI 칩은 자신이 갖고 싶은 인간의 몸을 지배하기 위해 드론과 자율주행 차를 해킹해 사고를 일부러 낸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를 죽게 만든다. AI에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란 없다. 인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저 AI가 하고자 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인간은 파리목숨처럼 없애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보여진다. 우리가 컴퓨터를 하다가 에러가 나면 컴퓨터를 껐다가 켜듯, AI에게 인간의 생명이란 그런 전원을 끄고 켜는 수준에 불과한 것 같다랄까.


이 영화에서도 AI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여긴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여섯 번째 영화 이야기
메타버스의 희망을 노래하다
레디플레이어 원


물론 이렇게 암울한 미래가 아닌 희망을 주는 메타버스 세계관이 들어간 영화도 있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가 밝은 것은 맞지만, 시대적 상황만 놓고 보면 이 또한 고민이 많아진다.     


레디플레이어 원에서 현실 배경은 부의 양극화로 나눠진 현실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극단으로 치달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내용으로 보면 그 안에서 메타버스가 사회 변화의 시작이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긍정적인 영화로 적었다.


레디플레이어 원 속에서 그려지는 기술은 당장이라도 구현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VR 기기로 접속 가능한 메타버스 공간에서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개념인 P2E(Play To Earn) 개념이 도입된 영화다.


여기에 메타버스 속에서 느끼는 촉감을 실제로 전달해 주는 슈트 역시도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념으로 현재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영역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옷이나 시계, 안경, 액세서리처럼 자유롭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디바이스를 말한다.


또한 요즘 웹 3 시대에 화두이기도 한 가상화폐가 현실 재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부분도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즐기면서 얻은 화폐를 사용해서 메타버스 속에서 구매한 제품이 현실의 배송 주소로 보내지는 모습이 나온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개념인 P2E가 접목된 세상, 지금 시대에 중요한 가치가 바로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개념이다. 메타버스 콘텐츠 개발자에게는 중요한 키워드다.



일곱 번째 영화 이야기
이불 밖은 위험하니 VR이 필요해
써로게이트


마지막으로 머지않은 미래, 곧 현실이 될 것 같은, 자꾸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2009년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다. ‘써로게이트’는 인간들이 로봇 형태의 가상현실 대리인인 아바타 로봇 ‘써로’를 통해 현실 세계에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안전한 집에서 안마의자 같은 곳에 앉아서 VR 기기로 자신의 아바타 로봇에 접속해 인조인간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출근을 해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다는 설정이 나온다. 일상생활에서도 인조인간 로봇이 아바타가 되어 살아간다. 진정한 “이불 밖은 위험해” 세상이다.     


인간을 대신할 기능을 가진 인조인간 로봇이 상용화되면 인간은 현실에서의 위험과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콘셉트다.     



하지만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반대급부도 영화 속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브루스 윌리스와 아내는 서로 나이가 들어 늙어가지만, 아바타 로봇은 그들의 젊은 모습 그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아내를 인간으로서 만나고 싶어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로봇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로봇 속에 인간이 갇혀버린 느낌을 받았다.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여기서 다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무척 많은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에 대한 키워드는 여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이처럼 메타버스와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와 사회적 상호작용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영화는 우리의 상상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이며, 전 세계에 상영되기까지 하니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치는 도구인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을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나갈 것이다.


영화 역시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이들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더욱 그럴듯하게 시각화해서 보여주면서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부디 영화 속 어두운 미래의 모습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그러한 미래가 되지 않게 대책을 마련해 나간다면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암울하고 두려운 영화 속 미래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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