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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ug 25. 2023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우리는 영업인생이라오

퇴근길 중계동 은행사거리 앞.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한 손에는 에코백이, 다른 한 손에는 플라스틱 부채가 들려져 있다. 그녀는 남성 앞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한 후 미소를 지으며 남성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남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쏘아봤고,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신호등 쪽으로 몸을 틀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플라스틱 부채에는 학원 광고가 적혀있었고, 에코백 안에 플라스틱 부채 더미가 가지런하게 담겨있음이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 플라스틱 부채를 건네며 현장 영업활동을 했던 것이리라 짐작했다.


'저렇게까지 사람 무안하게 인상까지 쓰면서 갈 필요가 있었을까...'


남일 같지 않았다. 나 역시 현장 영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보니 감정이입이 됐다.




노원역 문화의 거리가 보이는 길목에서 잠시 바람을 쐴 겸 서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서다.


내쪽으로 한 분이 다가오셨다. 내 뒤쪽에도 길이 있기에, 그쪽으로 가려는 분인가 싶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것을 계속 이어갔다.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ㅇㅇ카드 있으세요?"


"네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이미 가지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답했다. 안 그래도 폭염으로 더운 날이다. 걷는 것조차 숨이 차오를 정도로 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이런 날 거리를 걸으며 현장 영업활동을 하는 분이셨다. 


누구나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길 원할 테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현장 영업을 하고 있다. 그의 얼굴엔 폭염도 이겨낼 만큼 여유 넘치는 미소가 있었고, 목소리엔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만큼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멋진 분이라 생각했다.


나의 죄송하다는 얘기에 그는 발걸음을 아파트 쪽으로 옮겨가셨다. 그의 뒷모습에 대한 잔상이 내 마음이 꽤 오래 남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사드릴걸... 더운 날 현장영업하시느라 고생하신다는 말 한마디 더 보태드릴걸...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하나 더 사드릴걸... 그랬더라면 그의 오늘 하루가 더 힘나시지 않았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흔들어놓았다.




흔들림 없이 내리쬐는 아침 태양이 동네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밤사이 굳게 내려져있던 셔터들이 천천히 열리며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 집에서 회사로 사람들을 실어 날라 주시는 버스기사님부터 새벽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아픈 것인지 소아과 병원 앞에 이른 시간부터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등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리라.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마주치는 분들마다 환하게 웃음으로 반겨주고 싶은 그런 날. 오늘이 그런 날이다. 길을 걷는 이, 창문 너머로 소리 내어 다가오는 자동차를 기다리는 이,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한 마디의 인사로 그들의 마음에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그런 날.


저들도 똑같이 어떤 가족의 아버지, 어떤 사람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아들, 소중한 딸일 것이다. 


나는 요즘 현장에서 영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저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 현장영업이라는 것은 것일 뿐, 영업이란 단어 속에는 더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상품을 팔고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영업이란 것은 종종 냉정한 숫자와 거래의 과정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있다. 그것이 영업의 본질이었다. 우리는 모두 혼자서 살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쩌면 인생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영업의 연속일지도 몰라'




요즘 먹고살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다. 몇 년 사이 치솟은 금리로 시민들의 지갑은 굳게 잠겨버려 지역상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거기에 뉴스에는 연일 살인, 강간, 실종, 폭행, 자살 등 분노와 우울로 가득 찬 이들의 사건사고 소식들로 도배가 되어 보다 보면 마음이 어두워져 뉴스를 보는 것을 피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험난한 세상 속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말을 걸어 인사를 하고 나면, '도를 아십니까'일 때도 있고, '사이비 종교 집단의 전도집단'일 때도 있다.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데 팔까지 붙들며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지만 실상은 나도 모르게 '정기구독 가입자로 둔갑시키는 못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그들에게 사로잡혀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인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가 다 나쁜 사람이고, 모두가 다 범죄자는 아니듯이.... 우연히 내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내게 간단한 플라스틱 부채라든가 행주, 물티슈 등과 함께 전단지를 건네는 현장영업하는 분들을 마주하게 되면 되도록이면 따뜻한 미소와 말 한마디로 응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에 담아본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누군가의 아빠이고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다. 영업이라는 게 피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어찌 보면 이 세상은 모든 일이 영업임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현장에서 무더위, 혹한기와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고, 이것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서 고립된 삶을 살고자 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다. 내가 인지하고 있든,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든 어쩌면 인생은 영업의 연속이다. 오늘은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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