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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Sep 01. 2023

우울이 찾아왔을 땐

마음속 감기는 그야말로 감기예요 처방과 관리가 필요해요

친형 같은 형님이 계신다


내겐 친형님이시면서도 인생의 은사님 같은 선배가 계시다. 고등학교 시절 그 선배를 처음 알게 됐다. 선배는 늘 당당하셨고 샤프하면서도 정의로운 분이셨다.


그리고 그런 기억 속에 자리하던 형님을 서른 살이 되어 모교 행사에서 다시 보게 됐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이어졌다. 나는 형님과 술 한잔 마시면 세상 속 울분을 터트리는 막냇동생 같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내게 마음속 감기가 찾아왔다. 형님은 그런 나와 매일 점심 함께 해주시며 말벗이 되어주셨다. 때론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이 겪은 험한 인생사를 들려주시며 내 마음속 감기가 치유되길 바라셨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마음속 감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제도 점심 벙개였다. 형님은 늘 내가 점심 벙개를 치면 나를 환대해 주셨다. 형님은 지금도 내겐 영웅이시고, 듬직한 친형님 같은 존재시다. 나처럼 실수도 안 하시고 늘 정정당당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셔서 내가 존경하는 분이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너 요즘 우울함은 좀 어때?"


갑작스러운 형님의 질문에 당황했다. 보통 첫인사는 "잘 지냈어?", "요즘은 뭐 재미난 일 없어?"이런 류의 안부 인사를 하시는데, 첫 질문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전 요즘은 괜찮아요. 약도 끊은 지 몇 년은 지난걸요! 요즘은 브런치스토리 연재도 하고 dxReport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마음은 건강해요~"


"음... 그래..."


아무래도 형님의 말투에서 평상시와 좀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형님 요즘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시죠?"


"어... 사실 요즘 공황장애가 좀 왔어"


'아...... 형님.... ㅠ_ㅠ'


형님처럼 심지가 굳은 분이시다. 그런 형님이 공황장애라니... 형님의 마음이 아프시다는 건, 요즘 형님이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더 묻지 않고 형님이 더 깊은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 

우울함을 겪어보지 않은 분께 당부드리는 말씀은, 우울함을 가진 이에게는 어설픈 동정은 금물이다. 우울함은 동정한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니어서다. 우울함을 극복해야 하는 건 자신이고, 그건 주변에 의존해서 극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롯이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무래도 승진시기가 다가왔다 보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나 봐. 그리고 요즘 여기저기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느꼈던 것도 있고..."


그랬다. 여기에 개인사라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적을 수 없지만, 형님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듯했다. 형님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말 그대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새 그래서 명상을 좀 해보고 있는데, 명상을 하니 괜찮아지는 것 같더라고". 형님은 내 얼굴이 무거워짐을 느끼셨는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발을 이어가셨다.


형님.... 혹시 병원 가보시는 건 어때요?


나는 조심스럽게 형님께 제안했다.


"아냐 아냐 병원보다는 난 명상이 좋은 것 같어. 그리고 왠지 약을 먹으면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 좀 그래"


사실 나도 마음의 감기가 왔을 때 똑같이 생각했었다. 내 의지로 우울증 따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난 이겨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내 의지를 믿다가 우울함은 더욱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근데 사회생활을 하니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를 가야 하잖아. 명상으로 좀 나아졌나 싶다가 술 마시고 난 다음날에는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더라구"


나도 그랬다. 어쩌면 이게 패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마음을 잘 안다. 우울함은 술을 마시면 다시 나를 집어삼킨다. 


"형님 제 경험상 병원 가서 상담받는 걸 추천해요. 작은 알약이지만 마음의 상처에도 약이 필요하거든요. 감기약처럼요. 저를 보세요. 중독, 금단 현상 같은 건 없어요. 감기약이에요. 감기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거구요". 형님께 진지하게 말씀드렸다.


"어 그래... 알았어... 그래도 난 일단 지금은 명상으로도 충분히 좋아지는 것 같아, 약은 아무래도 꺼려져. 약은 내가 나중에 필요하면 얘기할게"


그렇게 형님과 점심 식사가 끝났다. 그리고 그날 뵌 형님의 모습과 형님과 나눈 대화는 내 마음속 한편에 있는 작은 상자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브런치스토리 글과 함께.


혹시 우울함이 있으시다면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셨으면 해요


나도 우울함을 혹독히 앓았던 때가 있다. 


우울함은 소리소문 없이 다가오지 않는다. 평소 건강했던 마음이 자신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곪아 마음의 감기에 걸릴 것 같으면 사전 경고를 보내준다. 그게 바로 공황장애와 불면증, 분노조절 장애와 같은 전조 증상이다. 내 경우엔 그랬다.

물론 항우울제까지 가지 않았기에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우울증세는 가볍다 치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은 우울증세를 겪고 있거나, 마음이 우울함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데 이를 너무 쉽게 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록으로 남긴다.


보통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주변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 복수 등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곧 나의 말을 변화시킨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던 내 언어 습관은 180도 바뀌어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들이 독이 가득 묻은 독설로 변했다. 미움, 증오, 복수와 관련된 단어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를 방치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마음을 점점 잠식해 나가며,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면 난 얘기하곤 했다.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하면 꿀잠을 잘 수 있지 않나요?"


모르는 소리였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미움과 증오, 분노로 가득한 정신이 마음을 집어삼키고 있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무지 피곤한데 머릿속이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하니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 된다. 내 경우 2주 동안 잠을 거의 못 자서 10kg 정도가 빠졌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제서야 내 마음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게 됐고, '명상'을 시작했다. 


바가바드기타 '삶과 죽음의 이야기'란 힌두교 경전까지 읽게 됐다. 하지만 이 마저도 근본적으로 내 마음의 감기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조금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내가 미워하는 이와 마주치는 순간 그동안의 내 명상으로 들인 공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이겨보려 했지만, 직장생활 '술자리'를 피하지 못했다. 동료들이 술 한잔 하자고 하면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동석했고, 어떤 때에는 우울함을 달래려 주변 동료들에게 '동정'을 구걸하며 술자리를 하자고 애원하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결국 우울증은 점점 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존증으로 번져나갔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이렇게 살다 간 정말 나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뵈었고 그간의 일을 터놓으며 나의 마음이 병들었음을 고백하게 됐다.


작은 알약


작고 흰 알약을 처방받았다. 신경안정제였다. 하지만 그 작고 흰 알약 하나가 내 삶에 주는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기자시절부터 늘 단독을 찾아다니고, 다툼의 현장을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정서는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음을 마음의 감기가 들고서야 알게 됐다. 기업인이 되어서도 난 그렇게 매일을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살았을 수 있음을 고백한다. 사실 지금도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정상으로 돌아오니 매일을 날카롭게 살고 있는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작고 흰 알약 하나'를 삼키자, 세상이 모든 게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고무풍선 같은 느낌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됐다. 온몸이 느슨해지는 느낌과 함께 늘 나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마음이 둥글둥글한 인형 곰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마음이 힘들 때면 '작고 흰 알약'을 집어삼키며, 내 마음에 위로를 전하곤 했다.


이러다... 


2주 정도 그렇게 약의 기운을 빌려 마음의 감기가 다스려지는 듯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바로 술자리다. 술자리가 있은 다음날에는 공허함이 커져 우울함은 더욱 깊게 나를 반겼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평생 이 약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 약을 끊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뵙는 것도 미뤘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감기는 낫는가 싶더니 다시 미움과 분노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의사 선생님을 찾아뵀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경안정제는 걱정하시는 것만큼 중독성이 있거나 하지 않아요. 언제든 나아지시면 안 드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나를 다독이셨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치부, 속마음을 의사 선생님께 모두 이야기하며 공감받는다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 굉장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하고 필요하면 약을 타왔다. 지금도 마음속 답답함이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뵙고 속이야기를 터놓는다.


6개월째가 되었다


"정말 축하드려요! 이렇게 빨리 감기에서 회복되신 분은 처음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내가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일 수 있다. 완벽한 회복은 아니지만, 병원을 다니고 6개월 만에 나는 다시 부정적인 말을 내뱉은 나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말을 주로 쓰는 나로 변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술자리가 인생에 꼭 필요한 건 아닐 거예요

                    

대외 업무 특성상 외부 술자리가 많다고 변명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조언해 주셨다.


"저희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서 회사 대표님도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진료받으러 오세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분들이 술을 끊고 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술을 끊으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심지어 회사 매출도 좋아졌다는 거예요"


아마도 더 또렷하게 사시면서 술자리를 갖되 적당히 마시거나 술조절을 함으로써 실수가 줄어들어 더 나은 결과, 더 나은 인생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셔야 하니 술을 끊을 수 없다면 조절해 보도록 노력해 보세요"


의사 선생님은 내 마음을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셨다.


술을 조절할 수 없다면 끊어야지


술을 조절하려고 애썼지만, 난 술을 조절하지 못했다. 매번 나의 의지는 무용지물이었다. 조금만 마시자고 시작했던 술자리에서 열 번 중에 8번 정도는 만취해 정신을 잃었다.


'그래 이럴 거면 아예 마시지 말자'


결단을 내렸다. 처음엔 어려웠다. 술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때론 호기로움에, 때론 술맛이 그리워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술 마시는 습관에서 술을 안 마시는 습관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2년 여가 흘렀다. 그러면서 나는 나만의 저녁 자리 원칙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저녁 약속요청이 오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자리가 내가 꼭 저녁으로 해야 하는 자리인가?'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자리인가?'


그런 삶이 1년 여가 흘렀고, 요새는 월 1회 정도 저녁 술자리를 하곤 한다. 취하지 않으며 필름도 끊기지 않는다. 물론 신경안정제도 안 먹은 지 2년 여가 넘었다.


그리고 내 삶은 내 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우울증을 앓고 난 이후 내 삶은 더욱 깊어졌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더 넓어졌다. 가족에 향한 사랑도 더 커졌다.


우울증은 나를 한층 더 어른으로 만들어줬다.


지금 우울함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부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나 역시 우울증을 겪는 동안 매일 밤에 울며 기도하며 잠들었으니 말이다. 


꼭 기억해야 한다.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아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내 글에 어느 순간부터 적혀있는 문구들이 있다.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축복이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던 2주간의 일상은 지옥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요새 잠이 오면 그게 언제든 잠을 물리치지 않고 잠든다. 마음건강을 챙기며 하루하루 살아감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아들과 아내와 함께 웃으며 살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봐달라고 동정을 구걸하는 못난 이가 아니라,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혹시라도 지금 우울함이 있다면 


우울함이 찾아왔거나, 마음이 우울함 경보를 보내고 있는 분이라면, 마음의 경고를 받아들여 병원에 찾아가시길 권한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의지로 이겨내려고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울함을 방치해서 항우울제까지 가게 된다면 정말 그땐 더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어서다.


우울증은 늪과 같다. 초반에 발목까지 들어갔을 때 빨리 주변에 도움을 구해서 빠져나올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의지로 발버둥 치며 나오려고 해 봤자 더 깊이 들어갈 뿐이다. 물론 그중에서 늪에서 빠져나오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확률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울함은 마음의 감기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감기가 걸리면 민간요법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약을 먹고 훌훌 털어버리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부디 의지로 이겨내려 하기보다 작지만 흰 알약으로 마음의 상처를 잘 아물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지난날의 나의 기억을 되짚어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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