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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Sep 26. 2023

도전, 아들의 일기 쓰기

아들, 글을 읽는 즐거움에 글을 쓰는 기쁨이 더해지길 바라

아빠 나도 레트로 키보드 갖고 싶어


아들이 나의 페나 키보드를 보더니 자신도 갖고 싶다고 내게 강력한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비싼 예쁜 장식품이 될 것 같아 망설여졌다.


"아들 사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네가 잘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되네". 나는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잠시 호기심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실용적으로 잘 사용하는 것과 호기심에 선뜻 지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아빠가 예전에 준 블루투스 키보드도 많이 있는데 잘 사용하지 않잖어". 


사실 아들이 원해서 준 블루투스 키보드가 아니었다.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호기심에 구매했다가 블루투스 키보드가 너무 많아져서 아들에게 사용하라고 떠넘기듯 준 것임을 고백한다. 아들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아들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떠안게 된 것이니 애착이 없을 만도 하다.


"아빠 나도 타자기 모양의 레트로 키보드가 갖고 싶어. 잘 사용할 수 있어"



아들은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럼 일단 다른 키보드가 마음에 들 수도 있으니 우리 이마트 일렉트로마트로 가서 한 번 네 맘에 드는 키보드를 찾아볼까? 페나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인데 청축, 갈축, 적축, 백축 등 다양한 키감을 느낄 수 있거든" 이번에 기왕 사는 거 아들에게 맞는, 아들이 원하는 키보드를 사주고 싶었다.


"응 좋아! 자전거 타고 가자".


그렇게 주일 아침 아들과 중계동에서 월계동 이마트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됐다. 아들과 자전거를 같이 타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주 다니는 익숙한 길은 아들이 앞에서 나를 끌어주고,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내가 앞에서 아들을 가이드해 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30여분 만에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월계동 이마트에 도착했다. 1층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는 2층에 위치한 일렉트로마트로 향했다.


아들은 노트북부터 다양한 전자기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전자제품 구경에 신이 난 듯보였다.



"아들 여기에 있네~ 정말 여기 종류가 어마어마한걸~ 한번 키를 눌러보면서 네 스타일을 찾아봐"


아들은 로지텍부터 제닉스, 이마트 전용 키보드 등 다양한 키보드를 실제로 만져보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갔다.


"아빠 이거 한 번 눌러봐~ 키감이 괜찮아~ 그리고 번쩍 번쩍여~~~"


아들은 기계식 키보드를 보며 신기해했다. 게임전용 키보드이니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술개발을 했겠는가!


그리고 한참을 살펴본 뒤에 아들이 마침내 키보드를 골랐다. 그것은 바로 타자기 레트로 키보드인 앱코 레트로2 미니 키보드였다.


이미지 출처: 액토몰


"아들 타자기 모양 키보드가 가장 마음에 들어?" 나는 아들이 안쓰러워 재차 물었다.


"응! 검은색이 좋아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흰색이 더 마음에 들어" 아들은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그래 알았어 일단 네 마음에 드는 것은 찾았으니 우리 점심 먹으러 갈까?" 


"응 난 이번엔 치즈피자 2조각 먹고 싶어"


"그래그래 많이 먹으면 좋은 거지~"


나는 아들의 취향을 확인한 것으로 오늘 미션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아들과 이마트 건너편에 있는 트레이더스 1층에 있는 푸드코트로 아들을 꼬셨다. 아들도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런지 배가 고팠던 것 같다.



"아들 일단 네가 정말 타자기 모양의 레트로 키보드를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빠한테 보여준다면 아빠는 흔쾌히 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아빠 그럼 내가 매일 시를 써서 보여주면 될까?"


"응?? 그래 시도 좋고 일기도 좋아~ 블루투스 키보드를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인 거잖아~ 글자를 입력하는 위해 사는 거니까 말야~~"


"아빠 그럼 내가 매일매일 글을 써볼게"


"난 무조건 찬성이지~ 그럼 오늘부터 다음 주 금요일까지 6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 아빠가 타자기 키보드 사줄게! 이마트 일렉트로마트에서 봤던 하얀색 타자기 모양의 레트로 키보드로 말이야"


"응 알았어! 오늘부터 내가 시나 오늘 일을 써 볼게!!!"


아들은 엄청난 의욕을 보여줬고 반드시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아들의 그런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고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의 글솜씨가 궁금해졌다. 


'과연 아들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마음속,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자 형태로 만들어낼까'


아들과 난 이마트 트레이더스 1층 푸드코트에서 아들은 치즈피자를 먹고 난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시큼한 토마토 파스타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들은 오늘 나와 함께 이마트 월계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던 이야기를 일기형식으로 적어서 내게 제출했다.


아들이 쓴 글을 보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TV가 없어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덕택인지 사용하는 단어들이 통통 튀는 듯 신선했다. 표현도, 단어를 구사하는 어휘력도 말이다. 글의 흐름이나 전체적인 짜임새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훈련이 필요해 보였지만, 글 안에 담겨있는 자신의 생각들만큼은 너무도 훌륭했다.


'그래! 아들 그동안 네게 글을 읽는 재미가 컸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이제 네가 글을 쓰는 즐거움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다음 날


아들이 학교 수업 끝나고 집 근처 구민체육센터에서 하는 농구 강습을 받고 집에 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아빠 나 오늘은 시도 쓰고 일기도 쓸게"


"오~~ 둘 다 쓰려고?"


"응"


아들이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보였다. 그리고 바로 식탁에 앉더니 노트북을 켜고 한글 파일을 열고 오늘 체육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지런히 쓰기 시작했다.


"아들, 오늘 즐거운 일 있었어?"


아들은 나의 질문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는지,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며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빠 오늘 쓴 글 메일로 보냈어~"


메일함에는 아들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일부러 아들에게 쓴 글을 날짜와 요일 그리고 제목을 써서 파일로 저장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의 소중한 일기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싶어서였다. 혹여라도 내 컴퓨터 드라이브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내가 어제 내 메일함에 '아들의 일기'라고 만들어놓은 편지함에 차곡차곡 쌓일 수 있도록 말이다.


나중에 아들의 지금 모습이 보고 싶을 때면, 아들과의 소중한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아들이 내게 써준 메일 속 파일을 하나하나 꺼내서 읽으며 내 삶의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아들의 귀여운, 사랑스러운 오늘의 모습을 말이다.


아들이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게, 지금은 그 기록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 20대가 되고 30대가 됐을 때 자신이 10대에 기록한 날들에 대한 글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나의 지금은 내 미래를 만든다. 아들과 난 오늘을 살고 있지만 오늘 아들과 내가 잘 살았다면 미래에도 아들과 난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들 오늘도 멋진 하루의 기록 잘 읽었어! 정말 멋진 하루를 보냈더라~ 내일도 아들의 가치 있는 하루가 되길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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