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Sep 28. 2023

길들여지는 데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클래식한 윙팁 구두를 사고 난 후 깨달음

구두를 하나 샀다


나는 멋진 클래식한 윙팁 구두를 한 켤레 갖고 싶었다. 그래서 고르다 고르다 이 제품까지 오게 됐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참고참고참고 하다 결국 한 켤레를 장만했다.


이 구두를 산 사람들의 후기는 혹독했다. 이 제품을 사자마자 후회했다는 후기를 남기는 이들이 많았다. 너무 무겁고 신을 때마다 뒤꿈치를 긁어대서 하루도 안돼 뒤꿈치가 아작이 난다고 했다.


ⓒ 광화문덕
신기위해서가 아니다
사고 싶어서였다


사실 이 윙팁 구두를 산 이유는 잘 신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신발을 신은 내 모습을 상상하며 뿌듯해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가 명품 정장을 입을 날이 오면 그때 이 구두로 내 스타일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내게 명품이라는 것은 결국 내 상상 속의 멋진 나를 만들어줄 하나의 비싼 아이템일 뿐이다. 절대로 실용적이지 않다.


물론 나는 이렇게 고가의 물건을 사놓고는 아까워서 질 입거나 신지 못한다. 그저 착용했을 때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바라볼 때마다 뿌듯해 하는 비용치고는 너무 비싼 취미긴 하다.


당연히 고가의 상품은 전시해놓고 또다시 상품을 산다. 신거나 막 입을 용도의 또 다른 제품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물건이 넘쳐난다....


처음에 구두를 사고
발이 고생을 많이 했다.  


정말로 내 발이 고생 많았다. 구두를 만든 디자이너의 소신과 장인정신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그 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구두여서일까. 매번 신을 때마다 이 구두는 내 발과 전쟁을 벌였다. 


신고 싶을 땐 쉼호흠을 크게 하고 각오를 다진다. 고통이 두렵지만 오늘은 기필코 구두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신는다.


구두를 만든 디자이너의 소신과 철학이 내 발의 편함과 충돌한다. 무겁고 두꺼운 가죽으로 구두의 모양새를 잡아서일까, 신발이 편하지 않고 신고 다니는 게 힘들 정도다.


실제로 신어보고 이 구두를 구매한 이들의 후기가 왜 그렇게 독한 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이 구두는 정말 멋을 위해 고통을 인내하고 신는 신발이라는 느낌이다.


ⓒ톰브라운 홈페이지


그럼에도 난 생각했다.


내 발을 위해 착화감이 좋은 신발을 평소에는 사서 신다가도 가끔은 멋을 위해, 중후함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상상하는 그런 멋짐을 위해 구두에 발을 맞춰야 할 때도 있다고 말이다.


멋스러움을 위해 하루 정도는 발의 편안함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곧 익숙해지겠지란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구두는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가죽 제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말한다. 가죽 제품의 매력은 내게 맞춰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내가 이 구두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구두도 언젠가는, 자주 신지는 못하겠지만, 내 발에 맞춰 길들여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 발은 매번 시련을 겪으며 나를 향해 원망과 아픔을 호소하겠지만...


ⓒ톰브라운 홈페이지


구두를 보며
인간관계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늘 꿈꾼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앉아 조용히 글 쓰고 커피 마시며 사는 삶을.


내가 있는 외지고 한적한 곳까지 나를 보러 찾아와 주는 벗들이 있다면 그들과 같이 차 한 잔 마시고, 삶의 고통과 시련들을 함께 나누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그런 날들을 말이다.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며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하고, 그들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삶이기도 하다.


사실 가끔은 버겁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야만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가끔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물론 상대를 탓할 생각은 없다. 나란 사람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고집이 세서 그럴 수 있다.


물론 나 같이 고집 세고,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말을 해도 예의를 갖춰서 하는 분들에게는 나 역시도 아주아주 매너가 넘치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피 터지게 다투는 것처럼 보이는 토론을 하면서도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의점을 찾으려 애쓴다.


서로의 날카로운 신경전


구두는 자신을 만든 디자이너가 만들어 준 모양을 지켜내려 고집하는 것일 수 있다. '촘촘하게 꿰매어진 가죽과 가죽이 구두의 모양을 잡고 있어 가죽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내 발을 더욱 압박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톰브라운


반대로 내 발은 편안하지 못함을 토로하며 자신을 압박하는 구두 가죽을 밀쳐내며 대항할 것이다. 그러면서 불편한 이 신발을 신기로 결정한 나를 향해 불평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내게 호소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을 탄압하는 구두가죽과 투쟁하며 어떻게든 구두 가죽이 제압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일 수 있다. 자신(발)에게 맞춰 길들여지라고 말이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고민하게 된다.


'구두와 발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난 발을 위해 지원군을 보냈다. 다이소에서 나온 발의 고통을 완화해 주는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구매해 발이 좀 더 구두를 잘 길들일 수 있도록 내 발에 장착했다. 엄지발가락 보호캡, 새끼발가락 보호캡, 뒤꿈치 보호젤, 발가락 사이 보호캡 등이다.


그렇게 발을 무장시켜 놓고 신다 보니 구두가 조금씩 내 발 모양에 길들여져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다 며칠 전 깜박하고 발가락 보호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신었는데, 발이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드디어 발은 발대로 잘 이겨냈고, 구두는 자신의 고집을 조금 구부리며 내 발에 맞게 자신의 모양을 변형시킨 것이다.


지금은 보호캡을 사용하지 않고
신을 정도까지는 됐다


내 발은 이 구두에 익숙해졌고, 구두의 가죽은 내 발에 맞춰 길들여졌다.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버텨나간다는 말이 오히려 더 잘 맞는 것 같다.


문득 구두를 신고 걷다가 이 구두를 신고 버티는 내 모습이, 사람과의 관계와 닮아있는 것 같아 이렇게 적어봤다.


오늘도 난 버텨내듯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 같은 팀에 배속되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마음 건강을 잘 챙겨가며 올해 남은 날들을 잘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난 내게 힘든 시련이 닥치면 올해 예방주사를 세게 맞았으니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나을 거란 희망을 품곤 한다. 이렇게 글로 쓰면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이 한 문장을 인내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이 병드는 듯한 느낌을 이겨내야 한다.

실제로 내년이 됐는데 지난해보다 낫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덕택에 한해를 잘 버텨내고 새해를 맞게 됐으니 말이다. 정신 승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 살다보면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마음 건강만 잘 지켜낸다면 버티듯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어쨌든 살기 위해 버티는 거다. 마음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마음건강만 잘 챙기면 언젠가 인생에도 반등으 기회는 온다. 그러니 꼭 마음건강 챙기며 일하자!

오늘이 내 인생 바닥이라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는 낫지 않을까... 마음 건강 잘 챙기며 오늘도 버텨내자. 그리고 잘 버텨낸 나에게 가끔씩은 이런 선물(?)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매거진의 이전글 도전, 아들의 일기 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