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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06. 2023

"물줄기 속 무지개가 보였다"

아들의 오늘 기록이 내겐 감동이 되고, 내 삶의 행복이 되어가고 있다

띵동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아들의 편지가 내 메일함에 도착했다. 아들은 매일 밤 내게 이메일을 보낸다. 오늘 하루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을 에피소드 삼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서 말이다.


"아들, 이건 그냥 네 삶의 기록이야. 아빠가 미래의 너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줘"


아들에게 타자기 모양의 레트로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주는 대신 하루하루 삶의 기록을 하기로 한 약속을 아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잘 지켜내고 있다.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일주일이 됐는데 조금씩 아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오늘 현 시각 오후 2시 40분쯤"


아들의 일기의 특징은 정확한 시간이 기록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하루를 보내다가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시간을 기억해 뒀다가 집에 와서 기록하는 듯 보였다.


아들의 글을 받아보며 읽는 것이 매번 감동으로 내게 다가온다. 아들의 표현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감탄사가 나와서다.


오늘은 아들이 토요일에 나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을 다녀온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이날 오전 대학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업무적으로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이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와 너무도 맞지 않는 사람과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이날은 정말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괜히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쉬어야 하는 주말에 마음을 힘들게 한 것 같아 내가 나에게 미안한 하루였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고 지쳐서였을까. 아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물놀이하는 곳에 마련된 계단에 누워 가을바람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아들이 즐겁게 물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아들이 물놀이를 마치고 내게 건넨 "아빠 이제 가자"란 말 뿐이었다. 아들은 바닥에서 솟구쳐 나오는 물줄기에 흠뻑 젖은 채였고, 난 아들에게 "집에 가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면 옷도 금방 마를 거야"라며 아들과 자전거 타고 집으로 왔다.


일기를 보니, 아들은 그날 물이 흠뻑 젖어 추워서 내게 집에 가자고 한 거였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아들에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옷이 마를 거야"라고 했으니...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일기장에 아빠로서 그날의 내 일기를 덧붙여 적었다. 폰트는 고딕체로 하고 글자 크기는 10으로 재설정했다. 아들과 다른 폰트와 글씨 크기, 글씨 색으로 써서 나중에 아들이 커서 이 글을 봤을 때 아빠의 마음을 느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아빠로서 아들이 잘 커가고 있는 모습에 대한 속 마음을 담았다. 꾸미지 않았고 늘 내가 쓰는 방식으로 덤덤하게 적어내려 갔다. 아들이 기록한 9월 23일 토요일 날에 대한 아빠의 기억, 아들의 시각이 아닌 아빠의 하루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아들의 멋진 표현에 대한 소감도 한 줄 적었다.


아들이 적은 일기에는 구체적인 장소가 빠져있어 그 부분에 대해서도 혹시라도 나중에 아들이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쉽도록, 구체적인 묘사를 넣어 내 에 추가해 뒀다.


그리고 아들의 일기 속에 아빠의 모습이 왜 없는지 나중에 궁금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날 내 상황과 왜 아들이 혼자서 물놀이를 했는지에 대한 상황설명도 사실 있는 그대로 적어놓았다.



아들의 오늘의 기록이 내겐 감동이 되고, 내 삶의 행복이 되어가고 있다. 난 믿는다. 오늘의 이러한 기록들이 먼 훗날 아들에게는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아들, 오늘 네가 쓴 표현이 너무도 좋아서 아빠도 이렇게 오늘 그 마음을 글로 남겼어. 네가 쓴 문장 중에 '무지개를 보았다'라는 문장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야. 오늘도 일기를 써줘서 고마워."


지금 시각 새벽 1시 49분을 지나고 있다. 아들은 꿈나라에 가 있다. 꿈을 꾸지 않는다고 늘 말하지만, 아들의 꿈속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에 난 아들의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냥 말하기 민망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일 아들에게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질지, 그리고 그중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골라 일기장에 어떤 표현으로 써 내려갈지 기대된다. 오늘의 설렘과 내일의 기대감으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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