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Oct 08. 2023

난 잠시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결혼식장 영상 속 26년 전 선생님 모습에 울컥했다 

 오랜만에 결혼식장이다


내가 다시 결혼(?)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학창 시절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점을 찍어주신 선생님의 아드님 결혼식이다.


친구들이나 후배들 결혼식이라면 어차피 사진으로 참석 인증을 하면 되니 늦어도 상관없겠지만, 이번 결혼식에는 사진 인증이 어려운 만큼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기에 다행히도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휴일에는 육아를 해야 하기에, 이날 결혼식장에는 아들도 함께 했다. 


안 그래도 요즘 결혼식장 식대가 많이 비싸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민폐 하객이 되지 않기 위해 축의금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 내가 하는 금액 기준으로 아들과 나 이렇게 두 명의 축의금을 넣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고3 시절 이 선생님을 만난 덕택이니 아들도 아빠의 선생님께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에 지금의 아빠가 있으니 말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별명은 '깡패'셨다. 제자들이 지어드린 별명이 단어만으로만 보면 아주 거칠지만, 선생님은 늘 정의로우셨고, 그 어떤 제자들에게도 공평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뭉치든 모범생이든 잘못을 하면 그 어떤 편견도 없이 가르침을 주셨으며,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모두가 최선을 다해 수업을 경청해야 했다. 예외란 없었다.



선생님은 선생님 수업을 듣는 제자들이 늘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고3이란 어려운 시기에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행운이었다. 


정말로 그때 선생님을 만난 덕택에 지금의 더 나은 삶을 사는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점을 찍어주셨기에, 평생 감사하다고 말해도 부족할 만큼 내겐 삶의 은인이신 분이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축의금을 내고 식사하러 갔다. 그런데 예식장이 아닌 레스토랑을 빌려 대관한 경우라서 그런지 결혼식 1부가 마친 뒤에 식사가 제공된다는 룰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2부까지 보게 됐다


당초 계획은 얼굴 도장 찍고 식사하고 빨리 집으로 복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1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들과 나 이렇게 2인에 해당하는 축의금을 드렸다고 생각하더라도, 선생님 아드님의 결혼식장에서 식사를 하고 간다는 게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식장에서 나오는 음식을 무척 야무지게 잘 먹으며 예식장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어찌 됐든 잘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조바심은 사라지고 잘 먹는 아들을 보는 아빠의 마음은 그저 뿌듯하기만 했다. 


사실 결혼하고 결혼식장에 가서 2부까지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주 친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사만 하고 축의금만 내고 돌아오는 게 보통이다. 아주 친한 경우에만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하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1부 끝나고 하객으로 왔다는 단체사진 속에 인증샷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부까지 보게 된 것은 참 오랜만이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전하는 영상 메시지입니다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란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선생님님의 젊었을 시절의 모습이 영상 속에 흘러간다. 


양희은 (Yang Hee Eun) - 엄마가 딸에게 (Mother to daughter)


내 나이 18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뵈었던 선생님의 그때 그 시절 그 모습이 영상 속 사진에 나타났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속 알 수 없는 울컥함이 솟구쳐 올라왔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 앉아서 야무지게 음식을 먹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삶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갔구나


미묘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슬픔이라기보다는 세월의 야속함에 대한 서러움이랄까... 아련함과 벌써 내 나이가 마흔 중반 아니 마흔 후반으로 치닫고 있음에 대한 아쉬움....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선생님께 혼나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결혼식장에 올라가 주례사를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이제 곧 있으면 선생님이 서 계신 저 자리에 설 날도 머지않았겠다는 생각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결혼식 때 아빠들이 우는 것이 자식을 잘 키웠다는 뿌듯함도 있겠지만, 예전 자신의 결혼식 때 모습이 떠올라서 더 뭉클해진 것은 아닐까'


내 젊음이 다 흘러가고 이제 하나둘 내 곁을 떠나니 홀로 보내야 할 남은 날들에 대한 외로움과 걱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났다


이대로 잠깐 눈을 감고 떴는데 10년이 흘러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루를 더 의미 있게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더 부단히 애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이야"라고.


돈이 많건 적건, 권력을 가졌던 못 가졌던, 명예가 있건 없건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간다. 그 어떤 이도 차별하지 않고 아주 공정하게 불편부당하게 흘러간다......


엄마가 딸에게 (Feat. Tymee & 김규리)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아들....


아빤....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고 마음도 약해져가고 있구나....


요즘은 하루에도 몇번이고

지금에 안주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들어...

그런 아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늙었구나란 생각을 하며

거울 속에 비친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보곤 한단다...


아들....

아빠에게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점점 형아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곧 어른이 되겠구나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야...



가끔 말야....
아빤.... 후회하곤 해


10대엔 왜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렀으면'이라고 생각했는지...

20대엔 왜그렇게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시간을 허비하고 살았는지...

30대엔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주변을 더 많이 돌아보지 못하고 산 것 같아...

40대엔 이제 좀 시간의 소중함을 알 것 같은데... 눈을 잠시 감았다 뜬 것 같은데... 한해 한해가 너무도 빠르게 흐르네.... 그게 너무 슬퍼.....

50대엔.............. 어떤 말로 채우게 될까...


아들.... 아빠는 사실 많이 두려워..... 시간이 흘러가는 게 말야.....

그러니 너가 가진 시간을 소중히 아껴쓰며 잘 사용하렴....


기도할게....


2023년 10월 8일 오후 9시43분
아들과 팔짱을 끼고 손을 꼭 잡고 지하철 여행을 하며
오늘의 소중함과 
아들과 함께한 애틋한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며...
광화문덕....
매거진의 이전글 "물줄기 속 무지개가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