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나의 문장에는, 나의 이름이 남길...

인간이 돈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AI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기를...

by 광화문덕

나는 편의점에 자주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들과 함께 마시는, 둘만의 ‘마법의 음료’를 사기 위해서다. 마법의 음료는 펩시콜라다. 코카콜라가 원조라는 걸 알지만, 난 펩시를 산다. 보통 '1+1'으로 팔아서다. 하나 사면 하나가 더 온다. 아들 손에 하나, 내 손에 하나. 마법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펩시는 원조는 아니지만, 익숙하고, 값싸고, 잘 닮았다. 가끔은 펩시가 코카보다 더 맛있기도 하다. 어쩌면 원조보다 나은 복제품일 수도 있다. 복제가 단순한 베끼기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것은 또 다른 해석이 되기도 하고, 취향의 확장이기도 한다.


나는 신경성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그래서 약국에도 자주 들른다. "소화제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면, 약사님마다 다른 약을 준다. 이름도, 포장도 제각각이다. 알고 보니 어떤 건 오리지널이고, 어떤 건 제네릭(복제약)이었다. 오리지널약이 특허 기간을 지나면 누구든 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보호와 공유, 법은 그렇게 균형을 맞춘다.


나는 글을 좋아한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빚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내게는 소화제보다 큰 위로다.


사람들은 AI로 글을 쓴다. 수업 시간에도 업무시간에도 모두가 AI로 글을 쓴다. 처음엔 신기했다. 하지만 요즘은 의문이 든다. '이건 누구의 것일까?'


AI는 수많은 글을 삼켜 학습하고, 또 토해낸다. 그중엔 분명, 내 글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동의한 적이 없지만, 내 문장은 데이터가 되어 AI의 연료가 됐을 것이다. 원조는 사라지고, 복제품이 넘쳐나는 세상.


이건 단순히 펩시냐, 코카냐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문제다.


저작권법은 원래 존재를 증명하는 법이다. 단순히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장려하는 역할도 한다. 저작권의 핵심은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이다. 누가 누구를 참고했고, 어디까지 비슷한가를 따진다.


생성형 AI는 강화 학습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쌓아온 수많은 흔적을 삼키고, 또다시 재조합한다. 마치 스스로 창조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AI 생성물에 저작권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라고.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보다 먼저 인간 스스로 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챗GPT를 도구로 볼 것인가, 인격체로 볼 것인가?"다.


내게 생성형 AI는 도구다. 어시스턴트(도우미)일 뿐이다. 법인격을 부여해 저작권을 논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일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어도비 프리미어가 AI 기능을 통해 영상을 자동으로 편집해 준다고 해서, 그 결과물의 저작권을 프리미어에 줄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요"다.


과거에도 노트패드, 이클립스, 비주얼베이직(Visual Basic), 나모웹에디터가 있었다. 그 도구들이 인간의 편의를 도왔을 뿐, 창작의 주인은 항상 인간이었다.


칼을 만드는 공장을 살인죄로 처벌하지 않듯, 도구를 만든 이에게 인간의 윤리까지 전가할 수는 없다. 우리가 규제해야 할 것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다.


결국 저작권 문제는 AI 윤리로 귀결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AI는 어시스턴트로서 공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돈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AI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재를 스스로 지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술은 늘 빠르다. 하지만 법은 언제나 더디다. 저작권법은 단지 억제하는 법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을 보호하고, 또 활성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 순간, 저작권법은 디지털 시대의 ‘붉은 깃발’이 되어 후대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복제의 시대,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존재를 복제할 수 있다면, 진짜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오늘도 펩시를 마신다. 단지 복제품이란 이유로, 모든 가치를 부정해선 안 된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 저작권법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우리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복제에도 기준이 필요하고, 존중과 인정,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바란다.
복제되는 세상에서도,
나의 문장에는, 나의 이름이 남기를.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되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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