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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밀어붙임 사이..아버지와 선배가 된다는 것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단,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바다는 사납다

by 광화문덕

삶은 종종

두 개의 바다 사이에 서 있는 일과 같다.


하나는

자식이라는 항해자에게

자신만의 속도로 노를 저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바다.


다른 하나는

후배라는 이에게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하길 바라는 바다.


전자는

파도를 넘는 법을 스스로 익히게 하고,


후자는

파도 속에서도 빠르게 방향을 정하도록 이끈다.


같은 물결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나는 지금

그 두 바다 사이에 선 채로

아버지이고, 선배다.


아들에게는

느릿한 강처럼 다가갈 수 있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그 실패가 너의 근육이 되고,

너의 뼈대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아버지로서의 나는,

‘인생은 실패라는 바위에 부딪히며

모양을 갖춰가는 조약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약돌이 언젠가는

강물 끝의 햇빛을 품은 자리가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다르다.

그들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30대, 이미 사회의 시곗바늘은 그들을 재촉하고 있다.

실수할 여유가 없다고 느끼고,

실패를 사치로 여기는 세상 앞에서

그들을 안심시킬 시간조차 나에겐 없다.

그러니 나는 때때로 그들을 ‘밀어붙여야’ 한다.

말보다 실전, 위로보다 전략.

'이렇게 하면 된다'는 즉답을 요구받을 때,

내 속엔 언제나 갈등이 일어난다.


나는 알고 있다.

진짜 실력은

실패 속에서 연마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락된 실패는

너무나 짧다.


인생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지시사항으로는

배우지 못한다.

넘어져야 배운다.

추워봐야 따뜻함의 의미를 안다.

실패라는 ‘고통의 온도’는

성장이라는 불꽃을 피운다.

진짜 배움은 그렇게 익는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후배들을 ‘굽는’ 화로가 되어야 할 때가 많다.

재촉한다. 몰아붙인다.


그러다 가끔,

문득 겁이 난다.

이렇게 조급하게 굽는 열기 속에,

혹시 이들이 타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그들을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보다

더 빨리 돌아오는 마감일이 있고,

지표가 있고, 숫자가 있다.

현실은,

믿음이기보단

결과를 요구한다.

이들에게 시간이 없다.

아니, 시간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견딜 수 있도록

‘불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일’이다.


아들에겐

불을 멀찍이 두고,

그 스스로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나무를 건넨다.

후배들에겐

불을 직접 붙여준다.

“이 불 위에 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온도를 재고 있다.

“괜찮을까?” “너무 뜨겁진 않을까?”

“이 실패가 그들을 부술까, 아니면 단단하게 만들까?”


나는 여전히 배운다.
선배로 산다는 건, 늘 뜨겁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사랑하되, 재촉하고
기다리되, 밀어붙이고
이해하되, 냉정해야 한다.


아들에게 준 것이 시간이었고,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시간이라면

그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너희는 누구보다 치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타버리지 않도록

언제나 옆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너희를 아끼는 방식이다.”


바다는 스스로를 훈련하는 장소다.
누구에게는 한없이 고요하고, 또 누구에게는 끝없이 사납다.
나는 너희가 어느 파도 앞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너희도 누군가의 항해를, 기다려줄 수 있기를.

2025.05.04. 긴 연휴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광화문덕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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