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내 손끝에, 오래도록 평안이 머물기를
긴 휴일이 시작됐다.
달력 위의 붉은 숫자들이 무려 여섯 칸을 연이어 물들였다.
목, 금, 토, 일, 월, 화.
그토록 바라던 쉼이, 이토록 긴 행렬로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당황하고 있다.
놀아야 할 시간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훌쩍 떠날 계획도 없고,
미뤄두었던 영화도,
나를 기다리는 소설 한 권도 없다.
심지어 ‘놀고 싶다’는 마음조차 어딘가 흐릿하다.
나는 지금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노는 법을 모른다.
너무 오래 바쁘게, 너무 오래 참고 견뎌내며 살아왔다.
그러는 사이, ‘쉼’이라는 감각은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어떤 문장은 자책으로 흐르고,
어떤 문장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끝나며,
어떤 문장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계절을 붙잡으려 한다.
나는 글 속에서 길을 잃고,
또 그 안에서 길을 만든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놀이’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기다릴 무언가가 있었다.
‘최강야구’, ‘감사합니다’, ‘협상의 기술’ 같은 이름들.
그 안에는 매주 기다림이 있었고,
누군가를 향한 몰입과 응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둘씩 종영되고,
그 자리에 공백이 찾아왔다.
기다릴 것이 사라지자,
나는 삶의 리듬도 함께 잃어버렸다.
기다림은 시간을 가꾸는 방식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나를 유예할 수 있었다.
이제 그 기다림이 사라진 그 자리엔,
공허만이 남았다.
그 공허 속에서 나는 자꾸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뭘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물음은 아마,
정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놀아야 하는 존재다.
아이처럼 웃고,
소리 내어 달리고,
때론 계획 없이 어딘가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난 그 방법을 모르겠다.
쉬어도 되는 건지,
쉬어도 괜찮은 건지,
자꾸 마음이 불안해진다.
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인데도
길게 누워도 좋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아도 좋고,
햇살 속에서 눈을 감아도 괜찮은데
막상 그런 시간이 내게 주어지면
나는 낯선 불안에 사로잡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이번 긴 휴일에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내게 늘 말하곤 한다.
계획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도 괜찮다고.
책장을 넘기다 스르르 잠들어도 좋다고.
글을 쓰다 말고, 눈을 들어 햇살을 바라봐도 된다고.
인생이 꼭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듯,
휴일도 꼭 ‘알차게’ 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지루함 속에서 뜻밖의 의미가 피어나고,
텅 빈 시간 속에서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그 순간이,
가장 깊이 쉬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난 오늘도 글을 쓴다.
내 미래의 내가,
쉼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그런 날이 오면,
이 글을 꺼내어 읽으며
이런 날들이 내게 있었음을 신기한 듯 떠올리기를
나는 바란다.
긴 휴일이,
나의 숨결을 가볍게 해주기를.
글을 쓰는 내 손끝에, 오래도록 평안이 머물기를.
그리고 나의 하루가, 그렇게 나지막이 충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