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데블스 플랜》리뷰] 긴 연휴, 한 편의 게임이 건넨 질문들
긴 연휴의 문턱에서, 뜻밖의 프로그램과 마주했다. 2023년 업로드된 넷플릭스의 《데블스 플랜》.
처음엔 그저 두뇌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치열한 경쟁, 날 선 심리전, 결국엔 누군가가 승리하는 익숙한 예능일 거라고.
하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나는 이 게임이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존재 방식과 구조를 실험하는 작은 우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작은 실험실처럼 닫힌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존재의 방식, 선택의 결, 사고의 방향성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매일 출근하며 마주하는 나의 일상, 내가 속한 조직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12명의 인물. 각자의 배경과 전략, 삶의 태도에서 개성이 흘러넘쳤다.
누군가는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판을 읽고, 누군가는 유연한 언어와 감성으로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또 누군가는 조용히 자신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러고 이내, 게임을 바라보는 두 갈래의 결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믿고 자기 주도적으로 판을 짜는 이들과,
공생과 협업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
그것은 단지 전략의 차이가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고,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의 차이처럼 보였다. ‘신념’같이.
초반엔 ‘공생’이라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함께 살아남자는 외침, 약자를 끌어안는 말들. 따뜻하고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회차가 쌓일수록, 그 아름다운 말들 사이에 이상한 균열이 스며들었다. 이상과 연대를 말하던 구조는 점차 한 사람의 판단에 기댄 체계로 변해갔다.
자신의 생각은 내려놓게 되고, 다른 의견 내기를 조심스러워하고, 주도하는 이의 발언은 지시형처럼 들리고, 그를 중심으로 의심 없이 수행하는 모습이랄까. ‘공생’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결이 흐려지는 장면들이 잦아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공산당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냉소적으로 “이건 데블스 플랜이 아니라 빌붙어 플랜”이라 했다.
그 말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묘하게 오래 남았고, 자꾸만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왜일까’ 고심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 때문이라는 걸....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그곳에서도 유사한 풍경이 반복된다.
어떤 날은 자기 주도적인 태도로 삶의 실타래를 풀어내며 전진하고, 또 어떤 날은 ‘공생’과 ‘협업’이라는 말을 앞세워 타인에게 나의 믿음과 방식에 따르길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속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탁월한 실행력과 판단력으로 흐름을 이끌고, 빠르게 방향을 제시하며 구조의 중심에 선다. 그는 똑똑하고 추진력이 있으며, 수많은 신뢰를 받는다. 그러나 그 역시 실수할 때가 있고, 때론 명백히 틀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의 실수는 어느새 그만이 스스로 지적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되어버리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그 경계를 넘지 못한 채 조용히 굳는다. 질문은 줄어들고, 반론은 조심스러워지고, 사람들은 다수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를 중심으로 말없이 동화된 존재가 되어간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은 나 또한 주도하는 위치에서 살았고, 또 어떤 날은 그저 흐름에 편승한 채, 질문을 삼키고 내 생각을 감추며 ‘이 방향이 맞겠지’라며 스스로를 타이르던 날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공생’을 말하면서도 정작 누구의 목소리로 움직이고 있었는지조차 모호했던 나.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순응하고, 존재의 결을 잃어가던 순간들.
그때 나는 단지 구조 안에서 버티고 있었을 뿐, 진정 살아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깨달음이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한때는 내가 믿는 방향이 모두에게 옳다고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의 흐름 안에 편입되어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공생이라는 말이 때로는 가장 교묘한 강요였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사고가 무뎌지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졌음을 이제는 부끄럽지만 고백할 수 있다.
주도자이기도 했고, 동시에 순응자이기도 했던 그 모든 순간들, 그런 나의 이중적 모습들을 떠올리며 《데블스 플랜》을 보게 됐고, 장면 하나하나가 나를 흔들었다. 그들이 고립된 공간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었던 동안, 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구조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게 됐다.
나의 여러 삶의 단면들이 겹쳐졌다.
주도하며 살아갔던 날들과, 주도하는 이에 속하여 생활하면서 질문이 줄어들고, 반론은 삼켜지고, 내 생각은 조심스럽게 숨겨지던 시간들. 도움을 받는 입장,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위치. 다수의 동의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점차 ‘공생’이라는 명분 아래 내 결을 잃어가고 있었던 날들.
《데블스 플랜》회차를 거듭할수록, 나는 자꾸만 그들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협업이라는 말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비판 없는 동조가 지속될 때, 그 구조는 너무 쉽게 위계로 흐르고, 공감은 무력감으로 변모한다.
그 지점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누구의 목소리로, 누구의 플랜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언제쯤 나의 플랜을, 오롯이 나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놀라웠던 것은, 그런 구조를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임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남의 시선이 아닌 자기 판단으로 다시 길을 내는 이들.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는 그 감정들의 무게감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맞선 모습. ‘이제는 내 방식대로 하겠다’며 스스로를 주체로 다시 세우는 시도. 그들은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마치 어두운 방에서 새어 나오는 빛처럼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게임이었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삶이었다.
나는 아직 내 자리에 익숙하지 않고, 매일 같은 문제를 붙잡고도 해답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면 매일 놓이는 문제 앞에서 망설이고, 정답을 찾아 헤매고, 타인의 판단에 기댈 때도 많다.
하지만 《데블스 플랜》을 보며, 나도 나만의 리듬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 서툴고, 때로는 엉뚱하더라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닌 내 생각으로 일을 해나갈 용기. 그것이 진짜 공생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서툴고, 더디더라도, 내 방식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누군가의 판단에만 기대지 않고, 내 목소리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데블스 플랜》프로그램은 단지 예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축소된 우주였고, 그 안에서 나는 과거 '공생'과 '협업' 속 내가 함께 하는 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이념', '가치'를 강요하며 독재자처럼 행동한 모습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또한, 누군가의 주도 하에 속해 그 안에서 나는 침묵하던 나, 주저하던 나,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던 나의 모습과도 마주하게 돼 내 모습을 명확히 인지하게 됐다.
《데블스 플랜》이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서툴고 더디더라도, 너만의 리듬으로 걸어가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닌, 너의 목소리로 네 삶을 설계하라'
공생은 누군가를 따르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결이 살아 있는 채로 함께 걸어가는 것. 그걸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데블스 플랜》은 단지 한 편의 리얼리티 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내 안의 ‘권력’, 그리고 조용히 누군가에게 나의 이념과 방식을 강요하던 옛 나를 떠오르게 했다. 누군가의 말에 가려 침묵했던 나, 주저하다 끝내 사라질 뻔한 나, 그 안에서 점점 희미해지던 나와 마주하게 했다.
《데블스 플랜》 속 악마는 내게 묻고 있는 듯했다.
“과거의 너는 잘 살았니? 그리고 지금, 너는 너답게 살고 있니?”
나는 아직 그 질문 앞에 선 채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는, 내 이름으로 한 줄의 전략을 쓰겠다는 것.
비록 느리고 서툰 업무가 주어지더라도,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플랜을 세워볼 것이다. 누구의 설계도 위에 올려진 부품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려나가는 작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2025년 5월 초 내게 주어진 긴 연휴,《데블스 플랜》 이란 한 편의 게임이 건넨 질문들 속에서 나는 오늘, 이렇게 다짐해 본다.
'누군가의 왕국이 아닌,
내가 일구는 단단한 삶의 땅 위에서,
조심스럽지만 또렷하게,
나만의 전략과 리듬으로 걸어가리라.'
- 2025년 5월 6일 광화문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