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합리화...

교보문고에서 보조배터리를 산 뒤..자기합리화 과정에 대한 고찰

by 광화문덕
휴대폰 배터리 방전

교보문고에서 axxen 16,000mAh 보조배터리를 샀다. 3만6900원에. 보통 때 같으면 가격 검색을 해 본 뒤 질렀을 텐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온종일 밖에서 촬영하느라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이 났기 때문이다. 먹통이 된 휴대전화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엔 갈등했다. LG전자 서비스센터로 가서 'G PRO2' 정품 배터리 3,200mAh를 살지 아니면 보조배터리를 살지. 고민 끝에 대용량 보조배터리를 사기로 했다. 정품 배터리가 좋긴 하지만, 3,200mAh는 오래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광화문 교보문고

'보조배터리를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광화문역 교보문고가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회사 지하 1층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5,000mAh 보조배터리를 2만9800원에 샀던 기억이 났다. 당시 5,000mAh급의 보조배터리가 대중적이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는데 교보문고에서는 꽤 다양한 보조배터리가 있었다.


교보문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보문고가 최근 내부 리모델링을 한 것 같다. 디지털 공간이 큼직하게 마련돼 있었다. 거기에는 2,800~16,000mAh까지 다양한 크기의 보조배터리가 한 눈에 볼 수 있게 전시돼 있었다. 샤오미도 눈에 띄었다. 사실 샤오미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꽤 비쌌다. 샤오미 16,000mAh가 4만2900원. 중국 제품이란 인식 때문인지 몰라도 비싸게만 느껴졌다.


케이스에 적혀있는 정가를 비교해가며 보조배터리 가성비(가격대성능비)를 따졌다. 아주 꼼꼼하게.


20여 분만에 결정했다. axxen 16,000mAh을 사기로! 가격은 3만6900원. 같은 용량의 샤오미보다 6000원이 쌌다. 가성비가 더 낫다고 판단했다.


계산대 직원의 환한 미소

계산대로 갔다. 결제를 도와주는 직원이 환하게 웃는다. 나도 웃었다.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넨다. 나도 인사했다. 듣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목소리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기분이 좋았다. 돈을 쓰고 기분이 좋은 건 참 오랜만이었다. 오는 동안 직원의 낭랑한 목소리와 환한 미소가 자꾸 떠올랐다.


집에 도착했다. 씻고 나서 컴퓨터를 켰다. 문득 교보문고에서 산 보조배터리의 온라인 최저가가 궁금해졌다. 끓어오르는 확인 욕구를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사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산 뒤에는 온라인 가격을 절대 찾아보면 안 된다는 건 불문율. 그런데도 너무 궁금했다. 아주아주! 매우매우!! 굉장히 굉장히!!!


최근 절약이 나의 최대 관심사이기에... 과연 오늘 나의 지출은 합리적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검색을 하기 전에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스스로 "온라인보다 3,000원 정도 비싸게 구매했다면 나쁘지 않은 거야"라며 방어벽을 쳤다. 검색창에 'axxen 16,000'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2만......4천......9백......원..........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2만4900원에 팔리는 제품이었다. 자그마치 1만2000원이나 더 비싸게 주고 샀다. 택배비를 포함하더라도 9500원을 더 주고 산 셈이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이 골이 아파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슴이 벌렁 벌렁거렸다. 뭔가 심각하게 잘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교보문고로 가서 환불받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이걸 환불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마음이 안 좋았다.


낭비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아끼자고 해놓고선 이런 데에서 이렇게 바보처럼 헛돈을 쓰다니... 며칠 전 산 와이셔츠와 운동화가 무색해졌다. 자책은 계속됐다. 나 자신이 한심했다. 영수증에 있는 환불 규정을 꼼꼼히 살폈다. 속상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사회공헌 기부?

자신을 한참 원망하던 중 머릿속에 최근 본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책읽을 공간 400석..교보문고는 작은 도서관
(헤럴드경제 2015.10.28)

(생략)
고객들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좌석은 모두 400석이 생긴다. 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장 내 고객의 동선 공간도 크게 늘어나고 높았던 서가가 낮아지는 등 인체공학을 적용한 고객 편의 중심의 쾌적한 공간으로 바뀐다.

독서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등을 기댈 수 있는 높고 쿠션감이 있는 쇼파형 독서공간부터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책을 펼쳐 놓고 불 수 있는 원탁 테이블형과 벤치형 독서공간, 교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1인용 독서 의자까지 다양하게 구비, 공간에 맞게 배치할 예정이다.

특히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볼 수 있는 어린이 책 독서 공간이 크게 확대됐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교보문고는 출간되는 모든 종류의 책은 구비하되 매장에 보관하는 권수는 줄이기로 했다. 파주 창고에서 하루 5차례씩 책이 보급되기 때문에 굳이 광화문에서 종당 권수를 많이 확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독자들의 휴게공간을 대폭 확충한 게 특징이다.

우선 고객 통로로만 활용되던 공간 일부와 이벤트 공간 일부에 의자들을 비치해 독자들이 쉬면서 책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키즈가든을 마련해 어린이 독자들이 책과 교구를 활용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교보문고가 고객들을 위해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그 기사. 아이들까지 배려한 모습. 이 기사가 인상 깊었는데 문득 떠올랐다.


머리가 복잡해

심히 요동치는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9500원. 온라인 제품가 2만4900원의 약 40%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


'이는 판매수수료일 수 있다. 판매수수료는 교보문고 운영비로 쓰이지 않을까?'


'내게 활짝 웃으며 계산을 도와준 분, 교보문고 가서 필요한 책을 이야기하면 재빠르게 찾아주시던 분들. 그리고 책을 사지 않아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교보의 배려... 어린이 독자들도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해준 그 마음...'


'이런 분들을 위해 내가 조금 더 낸 돈이 재투자된다면...'


이런 생각들이 한둘 씩 떠올랐다. 그러자 요동쳤던 불안감은 평온해졌다.


아울러 최근 아들과 함께했던 교보문고에서의 즐거웠던 추억도 떠올랐다.


얼마 전 광화문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아들과 교보문고에 놀러 갔다. 아들은 책을 좋아해서 교보문고를 너무도 좋아했다. 키즈카페만큼 좋아했다. 아이들 책들이 있는 공간에서 샘플 책을 만지작거리며 즐거워하던 아들의 모습. 사실 키즈카페에 가면 입장료만 8000~9000원이었는데, 이날 우린 공짜로 책도 보고 하면서 잘 지냈었다.


이 모든 생각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자기합리화...

자기합리화가 시작했다. 이번 지출은 꼭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나의 과도한 지출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교보문고에서 조금 비싸게 구매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닐 거야. 교보문고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이용자들을 위해 재투자하고 있잖아. 내가 이 곳을 이용하는 만큼 내 편의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비쌌지만 9000원을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부했다고 생각하자. 실제 교보문고는 사회공헌도 많이 하니까'


라며 내 자신을 합리화했다.


물론, 환불했을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영수증 환불규정을 살펴보니, 환불은 상품을 구입한 매장에서만 가능하다고 돼 있다. 환불을 하려면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 집에서 광화문까지 교통비는 왕복 2500원 정도다. 시간은 대략 왕복 2시간 가량 걸린다.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해 교통비를 더하면 9500원 보다 많거나 비슷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난 그냥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