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커피, 에스프레소

제대한 지 알마 안돼 찾은 커피숍

by 광화문덕
아아 마이크테스트 아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요즘 내가 밀고 있는 아재개그다. 같은 팀 동료가 내게 식사 후 무슨 커피 마시겠느냐고 물으면 난 어김없이 이렇게 외친다.


아메리카노.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커피다.


얼마 전 웹툰을 보다가 문득 내 생애 첫 커피가 생각났다.

웹툰은 남자가 여자와 커피숍에 오래 있으려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내게도 에스프레소에 대한 추억이 있다. 늘 자판기 커피만 마시던 나는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커피숍이란 곳에 갔다. 오늘은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제대

2002년 1월 15일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나왔다. 제대 후 새벽엔 영어학원, 오후에는 프로그래밍 학원에 다녔다. 9월 복학을 앞두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행 학습 차원에서였다.


학원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 애들은 특기생으로도 입학하는 경우가 있어서 프로그래밍 기술이 남다르다고 했다. 난 더 열심히 배워야 했다.

1학년 2학기 복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해서다. 죄를 짓거나 사랑에 실패한 뒤의 도피는 아니었다.


입학 후 3월 한달 내내 술만 마셔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술이 덜 깬 상태로 병무청에 갔다. 그리고 입대신청서를 썼다.


사실 입대할 때는 군대만 다녀오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소중한 경험을 얻긴 했다. 2년 2개월 동안 군대란 공간에서 경험한 작은 사회.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내 판단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공간... 양육강식 속 생존경쟁... 적자생존...

영어스터디

당시 난 삼육어학원 새벽반을 다니고 있었다. 지금도 영어 앞에만 서면 작아지지만... 당시엔 더욱 그랬다. 내게 늘 열등감을 안겨주는 존재.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스터디 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오프라인 첫 모임

종로3가 YBM옆에 위치한 4층짜리 커피숍에서 첫 모임을 하기로 했다. 지금도 생생하다. '커피 뎀셀브즈(COFFEE THEMSELVES)'.


이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피숍에 간 날이었다. 당시 22살이었지만 그전까지는 한 번도 커피숍에 간 적이 없었다.


남자들과는 커피숍에 가지 않는다는 게 당시 내 신념이었다. 공대 특유의 꼰대였을지도... 술집은 많이 가봤다...

뭐 마실래요?

스터디 그룹에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은 무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아메리카노, 라떼, 마끼야또..."


'음.... 아케리카노??? 라떼???? 마끼야또???? 그게 다 뭐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주문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빤히 쳐다봤다... 난 도무지 알 수 없어... TV광고에서 들어봤던 익숙한 단어를 내뱉었다...


"전.... 에..스..프레소.. 요..."


사람들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당시엔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느꼈던 것 같다. 착각이었다. 100%!!!

제 것은 어딨죠...?

모인 사람들과 스터디 운영 방침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카운터에서 우리 번호가 호명됐다.

이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당시 벨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누군가 대기하고 있다가 커피를 받아온 것 같다.

스터디 운영자분이 커피를 받아오셨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갔다. 난 내 것이 뭔지 몰라 어리바리했다.


"이게 제 거에요???"


덩그러니 남아있는 엄지만 한 크기의 작은 잔에 짙은 커피가 들어있었다. 마치 한약 같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한 모금을 들이켰다. 무지 썼다. 도저히 사람이 막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얼음물과 종이컵 그 옆에는 시럽이 준비돼 있었다.


종이컵에 에스프레소를 담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시럽도 추가했다. 맛을 봤다. 그래도 썼다. 시럽을 더 넣었다. 맛을 봤다. 다시 시럽을 넣고 맛을 봤다. 이러길 수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엔.........


버렸다..... 이건 쓴맛도 아니고 단맛도 아니고 정말 도무지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이후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쓴맛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커피숍에 가면 아메리카노만 먹는다. 커피의 쓰고 신 맛을 즐기고 있다.


에필로그
쓰고 나니 뭔가 상당히 허무한데...... 흠... 그냥 기록차원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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