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탐구생활

그 아이는 떠나지 않았다

2026년 2월 24일 시행될 '지역의사제'를 배경으로 한 가상 스토리

by 광화문덕
2027학년도 대입부터 서울을 제외한 9개 권역, 32개 의과대학에서 '지역의사제'가 본격 도입된다. 「지역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2025년 12월 23일 국회를 통과해 제정됐으며, 2026년 2월 2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고교 출신자를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10년간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추진되며, 의무 불이행 시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이 글은 2026년 시행을 앞둔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지역의사제를 배경으로 한 가상 스토리다. 지역의사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입학–교육–복무–정착을 하나의 구조로 설계해 지역 의료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려는 제도다. 특히 중학교·고등학교 재학 이력 등 지역 기반 교육 과정을 선발 요건에 포함함으로써, 의료 인력 문제를 진로 선택 이전 단계부터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과 구별된다.

이 이야기는 제도의 찬반을 직접적으로 논증하기보다, 그 제도가 실제로 작동한다면 한 개인의 선택과 한 지역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지만, 이야기 속 제도의 조건과 구조는 실제 법안과 하위법령 논의를 토대로 구성됐다. 정책은 숫자와 조항으로 먼저 읽히지만, 그 영향은 언제나 사람의 삶과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글은 그 변화의 한 가능성을, 한 아이의 성장 서사로 그려본 기록이다.[편집자주]


그 아이의 마을에는 병원이 하나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이라기보다는, 진료소에 가까웠다. 하루 두 번 문을 열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의사는 오지 못했다.


아이의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아프면 참아야지. 여기선 그게 제일 빠른 치료야.”


아이의 이름은 민재였다. 중학교 1학년. 또래보다 키는 조금 작았고, 과학 시간이면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가 의사를 떠올리게 된 건 누군가를 동경해서도, 성공을 꿈꿔서도 아니었다.


어느 밤, 할머니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순간 때문이다.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민재에게 ‘의사’는 직업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몇 해가 흘렀다.


민재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이 지역에서 다녔다. 전학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서울로 가야 의대 가기 쉽다”는 말은 선생님도, 친척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도 공부는 할 수 있어요.”


그 무렵, 지역의사제라는 법이 시행됐다. 뉴스에서는 찬반이 갈렸고, 어른들은 또 하나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재에게 그 법은 달랐다.


처음으로 자신 같은 아이를 기준으로 설계된 제도처럼 느껴졌다. 의대 입학 설명회가 열린 날, 강당에는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학부모들, 아이 손을 잡고 전입 상담을 받는 사람들.


“중학교만 여기서 다니면 되죠?”

“고등학교는 최소 몇 년이죠?”


질문은 정확했고, 계산은 빨랐다. 하지만 제도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전 과정을 해당 지역에서 이수해야 했고, 단순한 주소 이전만으로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생활기록부, 실제 재학 이력, 지역 활동 기록까지 꼼꼼히 확인됐다.


잠깐 머무는 사람에게, 이 제도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결국 떠났다.


부모는 불만을 남기며 말했다.

“이건 기회 제한 아니냐.”


그날 민재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이 법은 누군가를 끌어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이미 남아 있던 사람을 지키기 위한 구조라는 걸.


민재는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학비는 국가가 지원했고, 기숙사 창문 밖에는 자신이 자란 마을과 닮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동기들 중 누군가는 물었다.

“10년이나 묶이는 게 무섭지 않냐?”


민재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미 거기서 살고 있었어.”


의대 생활 동안에도 제도는 느슨해지지 않았다. 정기적인 관리, 복무 교육, 지역 의료기관 연계 실습. 누군가는 이를 족쇄라 불렀고, 누군가는 안전망이라 말했다.


민재에게 그것은 약속이었다.


졸업 후, 민재는 다시 돌아왔다. 예전의 진료소는 작은 병원이 되어 있었고, 문 옆에는 그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붙어 있었다.


“민재 선생님, 이제 진짜 우리 동네 사람이네.”


누군가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그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가끔 후배들이 묻는다.


“선배, 이 제도 없었으면 서울 갈 생각 안 해봤어요?”


민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갔을 수도 있지. 근데 그럼, 여기엔 누가 남았을까.”


지역의사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분명한 선택을 했다.


악용하려는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는 구조.


민재는 그 구조 안에서 자랐고, 그 선택의 결과로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병원 창밖으로 해가 진다. 오늘도 응급 전화는 한 통 왔고, 이번에는 민재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그 아이는 그렇게, 지역이 만든 법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지역을 지키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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