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한 문장

"안타깝다"

by 광화문덕

지난해 초, 회사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새 조직에 발령받던 날이었다. 복도 끝 유리 회의실에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아직 낯선 자리에서 노트북을 켜며 조용히 적응 중인 사람이었다. 매일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그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려고 했다. 실력이 부족하면 태도라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그 회의실의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고, 손에는 값비싸 보이는 만년필을 돌리고 있었다.


첫인상은 그럴듯했다. 말은 유창했고, 자신감은 넘쳤고, 본인을 소개하는 방식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예전에 비슷한 걸 해봤습니다.”

“팀장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능력 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은 설명이 아니라 과시였고, 조언은 지도가 아니라 서열 정리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늘 자신이 특별하다는 전제를 깔고 말했다. 마치 이 조직이 자신의 무대를 잠시 빌려 쓰는 것처럼.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내가 전에 해본 건데.”
“그 정도 수준이면, 아직 멀었지.”

“그거 해봐도 안 될 걸”


말은 부드러웠지만 끝에는 반드시 ‘위치 확인’이 붙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임원 보고 자리에서는 더 노골적이었다. 내가 준비한 자료는 그의 입을 거치며 점점 ‘그의 실적’이 되어갔다. 수치는 부풀려졌고, 리스크는 축소됐고, 결론은 과감해졌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걸 ‘회사에 대한 충성’이라 생각했다. 임원 앞에서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을 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일을 왜 이렇게 했지?”

“실무자가 허위보고를 했네요”


그 실무가 나였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금이 갔다.


'이 사람은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구나'


그는 공감하지 않았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는 해결책을 주는 척하며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는 다 겪어. 나는 더 힘들었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안 했지.”


타인의 감정은 그의 세계에서 그저 비교의 재료였다. 업무 시간에도 그는 나를 자주 불러 세웠다. 별거 아닌 자료 수정에도.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 문장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무시가 따라왔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둘만 남은 사무실. 그는 퇴근하려는 나를 불러 세워놓고 형광등 불빛 아래 시비걸듯 용어에 대해서 하나하나 캐묻기 시작했다.


“이 LLM OPS가 뭔지 알아요?”

“이 정도 개념은 기본이지.”


내가 잠시 멈칫하면 그는 미묘하게 웃었다.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통제였다. 자신의 자존감이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를 끌어내려 균형을 맞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원래 이런 말 안 하는데…”
“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가스라이팅.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씩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흔이 되어 다시 배우고 적응하고 버티는 시간. 그게 이렇게까지 흔들릴 줄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옆자리 부장님과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겨울 끝자락의 오후였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회사 건물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부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월급쟁이일 뿐인데… 왜 그렇게 서로를 깎아내리는지 모르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퇴직하고 나면 다 동네 아저씨야. 부장도, 임원도, 다 잠깐이야. 권력은 유한한데 어떤 사람들은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지.”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 안타깝다.”


나는 그 말을 따라 해봤다.

“안타깝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편안해졌다. 나는 비로소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는 우월한 사람이 아니었다. 불안한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사람. 자존감이 단단해서 오만한 게 아니라 흔들리기 때문에 오만한 사람.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안정적으로 존중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그 한 문장은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를 이해하라는 뜻이 아니다. 참으라는 뜻도 아니다. 그의 언행을 내 자존감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었다.


권력은 유한하다. 직함은 명함 위에만 존재한다.


퇴근 후엔 모두가 한 사람의 개인이다.그 사실을 모른 채 타인을 도구처럼 대하는 사람을 보며 이제 나는 속으로 말한다.


‘안타깝다.’


그 한 문장이 나를 그의 세계에서 분리시켜 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인정 욕구의 먹이가 아니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속도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이제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외톨이가 됐다. 처음엔 능력 있어 보였고, 말도 유창했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사람들은 결국 알게 된다.누가 사람을 키우는지, 누가 사람을 깎아내리는지. 누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


누군가 그랬다. 나르시시스트는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유형이라고. 마흔이 되어서야 나는 배웠다.


모든 싸움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

모든 공격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한 문장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


막막하니까, 마흔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속으로 한 번 더 말한다.


"안타깝다."


그리고 내 길을 간다.


아래는 나르시시스트에 관련한 영상, 그런데 굳이 대응하지 말고 아예 상대하지 않고 손절하거나 피하는 게 상책이다. 경험해보니 엮이면 그자체로 불행이 찾아온다. 마음에 감기가 깃들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