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대를 못 채울까 봐 무서워
〈지후〉
메일 알림은 오전 9시 13분,
제목도 내용도 짧았다.
“채용 전형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였다.
이력서는 정성껏 썼고,
면접도 나쁘지 않았고,
면접관의 표정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언제나,
“아쉽지만.”
지후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햇살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 입자를 바라본다.
오늘의 기운이
예고도 없이 어깨를 눌렀다.
무너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딘가 고요하게 금이 갔다.
잠시 후, 그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긴다.
“오늘… 좀 무너졌다.
이직 또 떨어졌어.
누군가랑 말하고 싶은 날이야.”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누가 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단지 그 한마디를 꺼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오늘 아침 그가 해낸 유일한 용기였다.
〈희영〉
결과는 오후 2시에 도착했다.
공모전 1차 탈락.
정중하지만 차가운 메일 한 줄.
“이번에는 아쉽게 선정되지 않으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희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상처 준 것도,
누가 비난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허무할 수 있나 싶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낸 글.
밤마다 아이들 재우고,
몇 달을 고민하며 써 내려간 문장들.
그 문장들이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희영은 조용히 커피를 내렸다.
휴대폰을 열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누구 바쁘지 않으면,
프레임 커피에서 한 잔 어때요?
오늘은… 그냥 좀 기대고 싶어요.”
〈태석〉
사내 인사 보고가 끝난 뒤,
태석은 자신의 이름이
다음 분기 조직 개편 리스트에서
조용히 제외된 걸 확인했다.
직함은 여전히 상무였지만
그 자리는 분명 가벼워지고 있었다.
태석은 알고 있었다.
이건 내리막이라는 걸.
누군가 말 꺼내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고위직의 숙명이었다.
저녁,
그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열고
메시지 한 줄을 보냈다.
“지금 프레임 가는 중.
나도… 조금 기대고 싶다.”
카페에서 셋은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처음으로,
셋 다 무언가 꺼진 얼굴이었다.
“지후야, 오늘은 그냥
너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태석이 말했다.
“그래.
우리 셋 다,
지금은 괜찮지 않거든.”
희영도 덧붙였다.
지후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꺼냈다.
“나는…
내가 나한테 미안한 느낌이야.
뭘 해도 확신이 없고,
이력서는 자꾸 떨어지고,
견디는 척하는 내가
가끔 너무 낯설어.”
희영은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괜찮다는 말도,
잘 될 거라는 말도
오늘만큼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숨소리만이
잔잔히 테이블 위에 머물렀다.
태석이 조용히 컵을 들었다.
“나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기대를 못 채울까 봐 무서워.
어릴 땐 칭찬이 고팠는데,
지금은… 그냥 ‘괜찮다’는 한 마디가 고프다.”
그 순간, 셋은 알았다.
서로의 마음엔
작고 깊은 구멍이 있다는 걸.
그날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깊었다.
정해진 결론도,
희망적인 계획도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숨을 놓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들은 깨달았다.
어쩌면 진짜 괜찮아진다는 건
잘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
아마도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막막하니까 마흔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흔은 아직…로딩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