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컵에 대한 추억

교양은 몸에서 배어나오는 것인데...

by 광화문덕
쨍그랑

그릇이 깨졌다. 식탁 위에는 아들이 멍하니 앉아 있다. 잠시 옷방에 다녀온 사이 아들이 그릇을 들다가 떨어뜨린 모양이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짜증이 튀어나왔다. 곧 4살이 되는 아들에게 난 요즘 짜증을 많이 낸다...


다행히 아내의 대처 능력은 나와 달랐다. 아내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친했던 '김원준'이란 친구 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당시 난 김원준이란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는 나와 쌍벽(?)을 이루는 모범생이었다.


특히 물리적 거리도 매우 가까웠다. 원준이네 집은 우리 집에서 10미터 거리에 살고 있었다. 정말 집 앞에서 엎어지면 그 친구네 집이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널찍한 마당이 있었고 집은 별장같이 지어져 있었다. 우리 엄마는 그 집은 100평 정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원준이네 여동생

당시 난 그 친구 여동생에게 마음이 있었다. 좋아했다기보다는 음... 암튼 초등학교 수준에 어울리는 순수함을 드러내는 단어를 못 찾겠지만... 암튼 그런 것이다...


친구는 내게 "너 내 동생 좋아하냐?"라며 놀려대곤 했다. 난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냥 막 뛰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난 원준이 여동생 이름은 모른다. 이름을 물어볼 용기조차 없었다. 그냥 그 아이가 즐겨듣던 노래만 알 뿐이다. 내가 원준이네 집에 갈 때마다 원준이 여동생은 '김치 없인 못 살아'란 곡을 듣고 있었다. 당시 난 이게 뭔 노래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곡이기에 나도 열심히 들었다. ㅎㅎ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유행했던 곡은 김국환의 '타타타' 등이었다. 현철, 설운도 아저씨가 가요톱10에서 1위를 하던 때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어머님은 주스를 내주셨다.


그런데 먹다가 컵을 떨어뜨렸다. 깨져버렸다. 무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너무도 놀랐다. 난 놀라 어찌할 줄 몰랐다. 친구는 날 위로하듯 괜찮다고 했다... 한쪽에선 친구네 여동생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너무 창피해 울고 싶었다.


그때 친구 어머님이 달려오셨다. 방에서 일을 보시다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놀라 나오신 듯했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니?

난 이 말이 당시 너무 충격적이었다. 보통 "이걸 어째" 혹은 "나가서 놀아"라며 혼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건강을 걱정해주셨다.


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죄책감과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 그 자리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그 집에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차라리 혼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컵을 또 깨뜨릴까 봐 겁이 나서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이후 이야기 듣기로는 삼선교 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들었다. 다시 한번쯤은 보고 싶은 친구다. 그 친구와 여동생도 번듯한 가정을 꾸렸으리라...

아들 미안해

그릇을 깬 아들에게 짜증을 내고 나니 그때가 생각이 났다. 교양이란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난 아직 먼 것 같다. 반성했다.


아들이 다음번에 또 깨면 그때는 아들이 다친 곳이 없는지부터 확인해 보자고 다짐했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