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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Feb 06. 2016

내 생애 첫 순댓국

기자에게 술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첫 회식

인턴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첫 회식을 했다. 그 회사는 인턴만 버티면 정직원으로 해주는 곳이었기에 어쩌면 이날 회식은 신입 직원 환영회와도 같았다. 내 주위로 선배들이 둘러쌌다.


주량이 어떻게 되냐?

미래의 칼럼니스트를 희망한다는 그가 물었다. 난 "소주 한 병쯤 됩니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래? ㅋㅋㅋㅋ" 뭔가 비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거리가 된 느낌이었다.


선배들은 내게 연신 술을 먹여대기 시작했다. 한잔 두잔 석 잔... 종목은 삼겹살에 소주였는데...

여기가 어디지?

일어나보니 사우나였다. 어제 회식을 했던 바로 옆에 있던... 술이 만취하자 자기들은 집에 가고 난 사우나에 그냥 넣어둔 것 같았다.


원망할 정신도 없었다. 일어나보니 7시 반이었다. 당시 출근 시간이 8시였는데 이대로 있다간 지각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멈췄다가 토하고 가다가 다시 멈춰달라고 하고는 토하고 하기를 반복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8시 반쯤 됐다.


늦었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대하는 이들. 속은 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기운은 없고... 말 그대로 폐인이었다. 안경을 잃어버린 것도 나중에 알 정도로 만신창이었다.


점심 시간

평소에 청국장을 먹는데 이날은 순대국을 막으러 갔다. 사실 그전까지는 순댓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해장에는 순댓국이 최고야. 먹어둬"


이날은 물을 먹어도 토할 지경이었다. 보통 심각하게 과음한 다음 날은 물도 못 먹는다. 먹는 족족 내 몸이 뱉어낸다.


일은 해야겠기에...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위가 씰룩쌜룩 거린다. 처음엔 국물 위주로 먹었다.  


잠시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몸 안에 독소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금방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순댓국의 건더기까지 먹었다. 한 그릇을 다 먹은 뒤 난 감동했다. 순댓국이 죽어가던 나를 살렸다. 난 오열할 만큼 기뻤다. 다시 살아났음에 감사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아무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땀을 흘린 적이 없었다. 이날 이후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난다......

그 후

만취한 다음 날이면 순댓국집을 찾곤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때의 감동은 두번 다시 느낄 수 없었다. 그게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오늘도 순댓국이 먹고 싶은 날이다. 엊그제 먹었던 술이 내 몸을 아직도 괴롭히고 있어서다. 


순댓국의 감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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