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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Feb 06. 2016

#37. 궁내동에서 수습과 보낸 하루

설 연휴 첫날 요금소 현장 수습기자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바빠요 바빠! 나중에요 나중에!”


6일 새벽 4시 40분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궁내동 서울요금소 건물 앞에서 김미성 수습기자가 한 여성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상황이어서 모르는 이가 보면 오해할만한 상황.


이 여성은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화장실이 급해 서울요금소 옆에 차를 임시주차하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때마침 "귀성길로 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오라"는 선배의 지시를 받은 수습기자와 맞닥뜨리게 됐고,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김 수습은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가는 게 너무 기쁘죠”라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김씨와 함께 뛰고 김 씨가 일을 치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김 수습은 또 다른 시민을 인터뷰하기 위해 도로공사 측의 양해를 구하고 통행료 영수증 뽑는 기계 옆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CBS노컷뉴스 김미성 수습기자입니다. 귀성길 내려가는 시민 만나보고 있습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지나가는 차량에 탄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열댓 번을 시도했지만, 김 수습은 한 마디도 건지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이 대부분이었고 대답을 한다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바빠요~”였다. 추위가 풀렸다지만 김 수습의 코끝 찡해왔고, 마이크를 든 손끝은 시리기만 했다.


아침 7시 뉴스에 시민의 목소리를 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과적 차량을 단속하는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두 명을 인터뷰할 수 있었고, 7시 아침 종합뉴스 FM98.1 주파수에 새벽에 만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김 수습은 이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차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면 수습기자는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도로상황 생중계에 대한 중요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디오를 들으며 귀성, 귀경길로 향하는 이들에게 라디오는 아직도 중요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오전 10시 도로공사 기자실. 여기저기서 인터넷이 안된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무슨 이유인지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유선도 무선도 모두 접속이 됐다 안됐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모습의 한 남성이 있었다. 바로 김 수습기자와 함께 입사한 송영훈 수습기자다.


송영훈 수습의 임무는 정체구간 확인 및 브리핑을 타이핑하는 것이었다. 도로공사 측에서 제공하는 로드플러스에 접속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안되니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흘러나왔다.


선배의 지시는 쏟아지는데 휴대전화로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무슨 이유인지 스마트폰 테더링 마저도 접속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안되겠다 싶어 기자실을 나와 테더링이 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전 11시 30분쯤. 이상했다. 도로공사 측에서는 오전 11~12시까지 정체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했지만, 어딜 봐도 정체가 절정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기자실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그 창 너머로 전국 도로상황 CCTV가 보인다. CCTV 속 도로의 모습도 평온하기만 했다. 기껏해야 10km 남짓한 구간에서 정체가 이어질 뿐이었다.

12시 낮 방송은 스트레이트로 대체됐다. 리포트를 할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점심을 먹고 올라오는 길에 뉴스를 확인해봤다.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제목은 대부분 오전 11시에서 12시에 차량 정체가 절정에 치달을 것이란 것이었다. 현장에서 바라본 교통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정오를 넘긴 시점에서 서울 요금소를 바라봤지만, 극심한 정체로 보기는 어려웠다.


시시각각 확인하는 교통상황에서도 20km 구간 정체가 최대였다. 평소 명절이면 50~80km 구간 정체가 이어진다. 최대 100km 정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과 비교하면 이날 정체 구간의 수치는 정체라고 표현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예보관의 설명이 떠올랐다. "작년보다 하루 더 쉬기 때문에 귀성길은 대체로 여유롭습니다."


송 수습은 이후 매시간 도로상황을 확인했다. 시간대별로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도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정체 상황, 이동 시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 대수 등을 파악해 단신 뉴스 쓰기를 연습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궁내동 서울요금소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김 수습과 송 수습은 저녁 방송을 막기 위해 열심히 정체 상황 등을 파악하고 있다.


새해 첫 명절을 요금소에서 맞이한 이들. 궁내동에서 하루를 보내며 한 가지 강한 의문을 품게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의 발달로 기자가 얻는 정보의 가치도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최종 진실확인자의 역할을 하는 기자는 건재하다. 나는 어떤 기자가 돼야 하는가?'다.


선배로서 이들과 함께 한 오늘. 아직 모든 게 어설퍼 선배의 눈에는 모자란 것이 많이 보이지만, 그들의 날선 시각만큼은 그 누구못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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