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반 피노누아 2016
오랜만이다
사춘기를 겪으며 잊었던 내 취미. 홀로 식탁에 앉아 마음을 다스려본다. 그리고 와인 하나를 준비한다. 혹시나 몸이 받지 않을 수 있으니 저렴한 와인이 있나 셀러를 살폈다. 다행히 세일할 때 사뒀던 1만2천원짜리 '롱반 피노누아'가 있다.
피노누아
한번쯤은 꼭 맛보고 싶었던 포도품종. 부드러움의 최고봉이라고 글로 본 것 같은데 과연 그맛은 어떤 맛일까.
따기도 전부터 기대감이 한껏 상승한다. 내가 와인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의 설렘과 흥분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실어본다.
내게 피노누아란 것은 아끼고 아껴뒀던 포도품종이다. 공부를 하다가 이런 문구를 봤던 기억이 있다.
'까베르네 쇼비뇽을 거쳐 메를로 그리고 결국 마지막엔 피노누아에서 머무르게 된다'는 말을.
퐁
아직 녹슬지 않은 것 같다. 코르크 마개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따지니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코르크에 코를 가져가 킁킁 거린다. 익숙한 향이다. 짙은 단향.
병을 기울여 잔으로 와인을 흘러내려보낸다. 색이 짙지 않다. 옅은 벽돌색이라고 할까. 화려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자주빛이다.
다시 향을 맡아본다. 초콜릿향, 달달한 향이 비강을 타고 들어온다.
무언가 익숙향 향이란 생각이 들어 망설임없이 입안으로 와인을 흘려넣는다. 단향과 함께 들어오는 부드러움. 거부감이 전혀 없다. 머금고 가만히 있으면 와인을 머금었는지 잘 모를 정도다.
그리고 조금씩 느껴지는 와인이 가진 단맛이 서서히 퍼져나온다.
혀를 굴려 와인을 입안 가득 묻혀본다. 입안가득 번지는 시원한 맛과 함께 살짝 쓴맛이 연달아 느껴진다. 꿀꺽하고 넘긴 후에 여운이 꽤 오래가는 편이다. 입안에서 와인의 향과 뒷맛이 지속된다. 여운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한 모금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중적인 와인이란 이런 것일까
예전 아는 형님께서 A란 분을 소개시켜 주신 적이 있었다. 와인쪽에서 대가라고 하셨다. 상당한 대외활동을 한 이력도 있었고,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날 모임에 만난 분들이 와인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하여 그날 내가 준비한 와인은 미국산 와인들이었다. 가격은 2만원 전후반대로 준비했다. 물론 내가 마셨던 와인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엄선한 것이었다. 처음 마셔보는 분들에게도 거부감이 없을 뿐 아니라 와인이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A라는 분은 내가 준비한 와인을 마시고는 혹평을 내놓으셨다. 싸구려 와인으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내가 그날 자리에 함께 한 분들을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나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A라는 분이 하신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고 있다. 내가 최근 와인에 흥미를 잃게 된 계기가 '단맛' 때문이다.
처음 와인을 입문하며 매번 놀랐던 것은 와인이 가진 맛과 향이 저마다 다 달랐기 때문이다. 와인마다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고 할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와인의 맛과 향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강한 단맛이 오히려 와인에 대한 나의 호감을 감소시켰다.
평소 난 단맛을 즐기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초콜릿을 아예 먹지 않아서다. 그런 내게 초콜릿향과 강한 단맛은 그닥 좋지 않은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 마신 '롱반 피노누아'의 맛도 단맛과 예전 어디선가 느껴봤던 단향이란 느낌이 들어 솔직히 매력적이지 않다. 그저 오랜만에 마신 것이라 더 노력하며 와인을 느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다. 누군가 와인에 대해 입문하고자 한다면 난 롱반을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단맛의 와인을 권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대중적인 와인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롱반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아주아주 긍정적이다. 롱반 샤도네이를 처음 접했을 때의 경이로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피노누아
“신은 카베르네 쇼비뇽(이하 카쇼)을 만들었고, 악마는 피노누아(Pinot Noir)를 만들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격언처럼 전해지는 말이다. 피노누아(포도 품종) 와인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고, 와인에 관심을 가지면 궁극적으로 피노누아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노누아는 카베르네 쇼비뇽에 비해 껍질이 얇고 포도알이 촘촘한데, 기후와 환경에 민감해 재배가 어렵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품종이다.
생산자
카모미 와이너리
- 국문명: 카모미 와이너리
- 영문명: Ca'Momi Winery
- 소유주: Valentina Guolo-Migotto, Dario de Conti, Stefano Migotto
- 와인메이커: Dario de Conti, Stefano Migotto
카모미는 2006년 이태리 출신의 와인메이커 Dario De Conti와 Stefano Migotto 그리고 Valentina Guolo-Migotto 3명이 의기투합해 나파 밸리의 열정을 담아 설립한 와이너리이다. 이들은 30년이 넘도록 이태리와 미국 지역 와인메이킹에 전념하면서 쌓아온 구세계 전통의 양조 기법과 신세계 최고급 산지로 손꼽히는 나파 밸리 포도를 사용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고품질 나파 밸리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나파 밸리에 동일한 이름의 이태리 레스토랑 운영(Ca'Momi Enoteca), 음식과 연계한 와인의 'Food Friendly' 컨셉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2011 나파 밸리 카버네 소비뇽이 로버트 파커로부터 합리적인 가격대의 나파 밸리 와인이라는 평과 함께 87점을 획득했다. 2006년 설립된 이래로 유수의 와인 평론지로부터 매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