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에서 만났던 아테네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왔어. 어차피 아네테에서 아크로폴리스 가는 것 외에는 계획이 없어서 오늘은 현지인들 안내대로 여행하기로 했어. 신타그마 광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어제저녁 함께 여행했던 형과 같이 나갔어.
광장까지는 가깝기에 걸어가기로 했어. 걸어가면서 '역시 아테네인가'할 정도로 곳곳에 유적이 보였어. 그중 하나를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제우스 신전이었지. 신전은 기둥만 남았는데 기둥 크기가 파르테논 보다 크더라고. 역시 아테네지만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주신이라는 걸 확인한 것 같았어. 하지만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쓱 지나갔지.
제우스 신전
한국으로 엽서 보내기
광장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은 거 같았어. 역시 유럽인들은 광장에서 모이나 봐. 광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현지인의 장점인 길 안내를 부탁했지. 우선 우체국으로 안내해달라고 했어.
유럽여행 중에 도시마다 뺏지(badge)를 모으는 게 목표였어. 다들 냉장고 자석이라든지 멀 모아간다고 하더라고. 유럽여행 인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하나 더, 후배가 여러 나라의 우편 도장을 부탁했어. 그래서 우체국으로 간 거야.
다행히 우체국은 건너편에 있었어. 나는 횡단보도로 향했지만 아테네 현지인들은 횡단보도가 아니라 그냥 앞으로 쭉 걸어갔어. '횡단보도로 건너야지' 하자 그냥 가면 된데. 머지? 얘네들. 그래서 횡단보도도 아닌 곳에서 기다렸어. 이내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멈춰 섰지.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건너더라고. 그래서 주위를 보니 그 넓은 신타그마 광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건너는 거야. 횡단보도로 건너는 사람이 아마 더 적을 거야.
다시 말하면 신호가 바뀌자 엄청난 수의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는데, 차가 적은 골목도 아니고 차가 많은 도로에서 우르르 건너는 게 엄청난 길이의 횡단보도가 있는 거 같았어. 와~! 장관이더라.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난 신호가 끝나도 계속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멍해져 있었어. 어느 차 하나 빵빵하지 않더라. 와우! 여긴 이게 국룰이었군.
아테네의 룰을 하나 익히고 우체국 앞으로 도착했어. 여긴 우체국이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야. 우체국에서 후배에게 하나,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도착할 나에게 하나씩 해서, 보낼 엽서를 샀어. 내용을 쓰고 보내려고 직원에게 말하니 우표를 주더라고. 나보고 붙이라는 건가? 우표를 붙이고 직원에게 보내달라고 하자 우체국 밖에 있는 해외로 보내는 우체통에 넣으래. 우체국 앞에는 우체통이 몇 개나 있었어. 그중에 해외로 가는 것을 찾아 넣었지. 여긴 당연히 우체통도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이야. 단순히 엽서를 보내는 행동에 먼가 색다른 느낌이 들더라. 처음으로 외국에서 엽서를 보내서 그런가. 앞으로 몇 통의 엽서를 보낼 때마다 이런 느낌을 들면 꽤 좋을 거 같았어.
신타그마 광장
메트로 폴리탄 대성당과 다마스키노스 대주교
이제 본격적으로 현지인들이 이끄는 대로 걸었어. 플라카(Plaka) 지구로 갔고, 상가랑 작은 호텔들이 보였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라 뭐 딱히 특별난 거 없었지. 다양한 상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사동이 더 재밌는 거 같았어. 고대 유적이 즐비한 아테네까지 와서 볼 거 까지는 아닌 거 같았지. 아마 본인들의 핫플레이스라서 데리고 온 거라 생각됐어. 이내 내가 별 재미없어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다른 곳으로 안내했어.
걷다 보니 근처 아테네 메트로 폴리탄 대성당에 도착했어. 겉으로 보기에는 최근에 지은 성당 같이 반질반질해.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100년이 되었다는 걸 알았지. 대부분 우리나라 성당을 보면 빨간 벽돌에 조금 칙칙한 분위기잖아. 이 성당은 하얀 대리석 성당이야. 깔끔하고 보기 좋았어. 그리고 주위 건물들도 같은 색상이라 조화롭게 보였지. 우리나라 성당은 고난을 겪어서 그런지 나이 들어 보였지만 여기는 국교라 대우받고 지내서 그런지 젊어 보였어. 계속 보수 공사를 했던 건지 좀 신기했어.
그리고 앞에 다마스키노스(Damaskinos Papandreo) 대주교 동상이 있었어. 정교회 신부복이 낯설어서 새로운 느낌인지 신기하게 성당보다 동상이 마음에 들어왔어. 심지어 카메라에 사진을 찾아봐도 유명한 성당 사진은 없고 동상 사진만 남아 있었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성직자로서, 그리스인으로서 현대의 그리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될 만큼의 대단한 인물이었어. 나라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분이셨던 거 같아. 그래서 그런가 성당 말고도 아테네에서 종종 본듯한 느낌이 들었지. 현지인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는 건지 딱히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이곳으로 데리고 와줘서 마음에 드는 동상을 볼 수 있어 고마웠어.
다마스키노스 대주교 동상
아테네의 그라피티
모나스티라키 시장도 갔지만 여기도 익숙한 풍경에 그다지였어. 어릴 적 국제시장이 머가 재밌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여기는 어릴 적 국제시장보다 작아. 그러니 나의 흥미를 끌게 있나. 그리고 터키 바자를 보고 와서 그런지 더 흥미를 끌 수가 없었어. 그리고 어제저녁에 레스토랑을 찾느라 이미 봤거든. 중간중간 버려진듯한 유적만이 내 눈길을 끌 뿐이었지. 아마 외국인들도 서울에서 중간중간 보이는 유적들을 보면 이런 신비한 느낌이겠지? 메트로 폴리탄 대성당처럼 고대 유적들과 현대의 물건들이 잘 어울려져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보기에는 조금 부조화스러웠어.
특히 아테네 곳곳에 빠짐없이 있는 그라피티는 정말 안 어울리더라. 너무 많은 양이라 어제부터 눈에 거슬렸어. 난 거리 예술의 장점은 주위 대상과의 공감과 조화 속에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라 생각해. 그런데 여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해 보이는 그라피티뿐이었어. 튀고 싶다는 느낌, 아님 고대 아테네가 싫어서 그라피티로 가리겠다는 느낌이었어.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느껴져서 그런지 너무 따로 놀아 사진도 일부러 찍어놨어. 어울리지 않는 그라피티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거 같아 눈살이 찌푸려졌어.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과 맥주를 마시고 다른 곳으로 향했어.
그라피티와 아크로폴리스
현지인에게 끌려다니기(?)
그들의 차로 한참을 달렸어. 행선지도 안 가르쳐줘서 납치하냐고 농담했지. 그러다 바다가 보였고 요트클럽이 있는 해안으로 갔어. 별 흥미가 없어 보여서 그랬는지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왔어. 내가 친구들이랑 지하철 타고 바다 보러 다니던 사람이란 걸 그들이 알았다면 여기로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야. 수영만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요트와 배 때문에 바다는 보이지 않고 평범했어. 역시 별 흥미 없었어. 정말 한국 도시들이 큰 도시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지.
그곳에서 차랑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맛있더라. 그리고 가이드 해준 값도 있고, 아직 학생들이라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했지만 싫다고 더치페이를 했어. 한국 문화는 알지만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처럼 보인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아주 멋진 자세라고 칭찬해줬지.
그리곤 차를 타고 돌아와 그들의 아지트 같은 가게에 가서 간단히 밥도 먹었어. 그들이 노는 게 먼가 우리나라 X세대 느낌이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스러운 대학생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어. 게하 근처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니 늦은 밤이 되었어.
요트클럽
내가 느낀 그리스인
하루 종일 그리스인들과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그들의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었어.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고 내가 겪어본 사람들에 대한 느낌일 뿐이야. 그리고 6년 전이라는 걸 고려해줬으면 해.
내가 본 그리스인들은 우선 아주 개방적이야. 그리고 다른 서양 문화권처럼 남녀노소 안 따지고 친구를 하지. 나이 차이가 꽤 커도 정말 아무 상관없었어. 특히 남녀관계에서는 다른 유럽인들보다 더 개방적이야. 다만 종교 때문인지 의외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했어. 그리고 어르신들은 다른 인종에 대해 의외로 낯설어해.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다른 인종에 대해 낯설어하는 정도인 거 같았어.
그리고 여기도 공부를 그다지 하지 않아. 학구열은 우리나라가 정말 최고야. 하지만 그리스 학생들은 외국어를 곧 잘해. 심지어 일본어, 한국어도 하니깐. 우리나라 외국어 수업이 정말 문제 있는가 보다 싶었어. 그리스에서 공부를 좀 한다 싶으면 유럽의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듯했어.
가장 충격적인 건 준법정신이 높지 않아. 이건 내가 어릴 적 주입식 교육으로 생긴 유럽인들의 선입견으로 유럽인은 준법정신이 높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선입견은 완전 없어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법 잘 지키는 편이었어. 여기서는 무단횡단 그냥 하는 거야. 그리고 지하철 무임승차 그냥 하는 거야. 헬멧 안 쓰고 오토바이 타는 사람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으며, 늦은 밤이 되면 술 안 마시고 운전하는 차가 드물다나(?). 그리고 술 마시는 미성년자가 흔해. 거리에서도 흔하고 가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아. 차 없을 때 무단횡단 정도야 그렇다고 쳐도 무임승차와 음주운전은 당황스러웠어. 이게 다 불법이라는 걸 인지하고 처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더욱이 '아무 문제없어'라는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어. 이거 그리스에서는 웬만한 건 용인되겠는데 싶었지.
물론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도 준법정신이 많이 부족했어. 아이들에게는 신호 지켜라, 어른들 말 들어라 해놓고 어른들은 아무것도 지키고 않고 법 지키면 손해 본다고 말하는 걸 많이 봤었어.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잖아. 무임승차와 음주운전을 무용담처럼 떠들면 비난받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법인 것을 떠나 잘못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잖아. 그리고 최소한 부끄러워하기는 하잖아.
그런데 여긴 아냐. 그냥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릴 적 고대 그리스 역사를 들으면서 민주주의의 대단함을 느끼는 한편 이 사람들 말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인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들의 후예가 맞는 거 같았어. 나라 전체가 이러면 어느 날 곪아 터질 텐데라는 오지랖이 발동됐지만 길게 말하진 않았지. 말 그대로 외국인의 오지랖일 테니까.
몇 년 후에 그리스 정부의 분식회계와 국민들의 탈세로 인한 경제위기가 있었을 때 이때가 기억났어. 아마 누군가 고발해도 문제없다고 말했을 거야. '다들 그런다고. 너한테 피해 가는 것 없다'라고 말이야.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더 좋겠지만 우선 우리나라부터 고쳐 나가야겠지.
그래도 이런 생활이 가능하고 문제없었던 것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 매너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상당히 치안이 좋아. 자정까지 운영하는 가게도 제법 되고, 늦은 시간에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어. 심지어 술 취해서 주정 부리는 사람도 못 봤어. 그리고 개방적이라 타인의 생각을 상당히 잘 인정한다고 해야 하나 잘 흘려버린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불편해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어. 물론 뒷담화는 해.^^
그들이 공공의 영역을 무시하지는 않아. 길에서 부딪치면 바로 사과하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매너, 그리고 최근에도 볼 수 있듯이 경제가 힘들어 중국자본이 많이 들어왔어. 이에 따라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처 노력들과 자신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면 알 수 있지. 개인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을 구분한 선이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다시 말해 내가 본 그리스인들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무언가에 엮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어. 심지어 규칙에 관해서까지도 말이지. 이런 면은 말하기 나름이고 대하는 사람마다 다른 장단점인 거 같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지랖이 싫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정이 가장 좋다고 하는 외국인도 있으니까 말이야. 오지랖과 정의 차이처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한류
그리고 가이드해준 아이들은 엄청난 한류 팬이야. 당시에는 엑소가 전성기였어. 그래서 최애가 엑소였고, SM 그룹들이 인기가 많았어.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다른 가수들, 배우들 많이 알고 있었어.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쓸고 다닌 이후라 싸이 때문에 그리스인 모두 한국을 알고 있다고 했지. 한류가 정말 대단하더라. 정말 문화 훈장 줄만 한 거 같았어. 덕분에 나도 조금이나마 편하게 다녔잖아. BTS와 많은 한류스타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궁금해. 지금 가면 더 편하게 다니지 않을까 싶어.
정신없이 끌려다녀서 너무 피곤했어. 씻고 누우니 자정이 한참 넘었지. 몸이 너무 지쳐서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잠들었어.
그리스인들의 대한 제 생각과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눈과 머리, 가슴으로 느낀 것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제 기준의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친구가 여행 갔다 와서 하는 말이라 생각해주세요. 제 여행기는 친구들끼리의 수다 같은 글이니까 선입견을 가지는 말아주세요. 만약 선입견이 생겼다면 그것을 깨는 건 직접 겪어보는 것이랍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코로나가 끝나면 아테네에서 직접 느껴보시길 권해드려요. 한류가 더 강해진 지금 만약 한국인에게 더 친숙해진 그리스인을 만난다면 저에게도 들려주세요.^^
당시의 그리스 친구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