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을 중심으로 베네치아 광장 남쪽을 걸어 다니는 내용입니다. 자세한 설명보다는 산책하는 듯한 설명과 감상입니다.
2014년 6월
로마
어제 남부 투어는 가이드 안내에 따라가기만 했기에 덜 힘들 줄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도 자고 싶었어. 이건 원래 그런 건가?
오늘의 계획은 로마 걷기. 그냥 구경하면서 로마 눈에 익히기. 늘 그렇듯 게하에서 제일 꼴찌로 나왔어. 어제와 달리 지도만 믿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는 자유여행 출발!
로마의 뿌연 연기
아침부터 엄청 더워서 쳐지고 있었어.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반질반질해진 로마 돌길을 걷는다는 건 색다른 느낌이야. 5분 정도 걷다 보니 멀리 콜로세움이 보였어. 그래서 그냥 그쪽으로 걸었지. 가는 길에 사람이 없었어. 로마에 사람이 없다는 게 다소 의외지만 좋았지. 하지만 콜로세움이 가까워질수록 제곱 이상으로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어.
사람이 많아질수록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아져서 숨쉬기가 좋지 않았어. 카페가 많은 길에 들어서자 뿌연 연기가 가득. 불이 난 게 아냐. 전부 담배 연기였어. 살다 살다 길 가득 채우는 담배연기는 처음 봤어.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아주 많았지만 이건 비교가 안돼. 이탈리아에 살았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로마는 실내 금연이래. 심지어 집에서도 말이야. 이는 담뱃불 화재로 인해 유적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
그런데 밖에서 피면 불이 덜 번지는 건가?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집 테라스에서,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버려. 흡연실 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야.
형과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래서 연기를 피해 걸음을 빨리하다 나중에는 뛰다시피 했지. 그 길을 나오니 강한 햇볕 때문에 눈이 부셔서 잠시 안 보였다가 시야가 확보되자 어마어마한 인파에 놀랐어.
조심조심
폼페이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고대에 사람이 많았던 곳에 현대에도 가장 많았어. 하지만 이제는 로마인보다는 로마 외 사람들이 절대다수겠지만 말이야.
거기다 차도가 공사 중이었어. 지하에 유적이 발견된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하공사로 인해 인도가 없어지고 차도가 좁아져서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졌어. 거기다 차도 얼마나 많은지, 차도 사람도 천천히 조심조심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 끝없이 꼬리를 물며 길을 건너는 사람들, 운전자랑 실랑이 벌이는 행인, 그런 상황에 관광객들은 짜증을 냈어.
나는 짜증보다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집중했어. 많은 차와 사람들 사이에 소매치기로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거든. 세계 최고의 유적지이자, 관광지이자, 소매치기당하는 곳이 로마니까. 로마를 오기 전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로마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말했어. 당연히 오늘도 마찬가지였지. 우리는 단단히 무장을 했지만 차와 사람이 뒤섞여 걷는 이곳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렇게 걷다 보니 콜로세움 앞에 도착. 오는 길에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어. 이야기하다, 담배연기를 피하다, 차를 피하다 여기까지 밀려와 버렸지. 그리고 공사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콜로세움에 지하철이 다닌다는 사실이 신기했어. 이렇게나 많은 유적이 지상, 지하에 있는데 공사를 어떻게 했데?
콜로세움
콜로세움 (Colosseo)
콜로세움은 정말 엄청난 규모였어. 현재의 스타디움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지. 우리가 이 건물을 발견하고 20분 이상 걸었어. 걸어가면서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아직도 걸어가야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했지.
더 놀라운 건 입장하는 줄이 콜로세움보다 길다는 것. 거기다 입장권 사는 줄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안에도 사람이 많다는 것. 마치 오늘이 빅매치가 있는 거 같았어. 형이 '콜로세움에 굳이 들어가야겠어?'라는 말에 '며칠 있으니까 생각나면 나중에라도 가자'라고 대답했어. 한 드라마에서 말한 진리가 있어. '나중이란 죽기 전 언젠가'라고 말이야. 결국 우리는 콜로세움 내부를 구경하지 않았어. 정말 언젠가 가봐야지.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어. 반은 복원 공사 중이라 찍지 않았지만 나머지 반 찍는데도 한참 걸리더라. 내 번들 렌즈로는 한 번에 들어오지도 않는 크기였어. 그래서 형의 렌즈를 빌려서 화각을 크게 해서 찍었지. 정말 렌즈 갖고 싶더라. 하지만 내가 타고 온 한국 왕복 비행기 값보다 비싸다는 거!
구경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있었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맹수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즐겼다는 것과 이 정도 규모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열광을 했을지, 시대마다 사람이, 생각이 다른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잖아. UFC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뺐는 건데. 그들도 생명이잖아. 그래서 무언가 찝찝함이 남았어.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o di Costantino)
바로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있어.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공인하여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여 비잔티움 시대를 시작한 로마의 위대한 황제로 많이 유명하지.
그만큼 개선문의 크기와 화려함이 대단해. 역시 콘스탄티누스라고 생각되었어. 하지만 콜로세움을 보고 나면 개선문은 거대한 조각품이라고 생각될 정도야.
개선문도 공사 중이었어. 타이밍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게하가서 물으니 작년에 시작했다고 했나? 오래된 유적이라 최대한 노력해서 최소한의 훼손을 위해 시간이 걸리나보다 했지만 이탈리아는 한국과 시간 개념이 다르데. 유적뿐만 아니라 속도면에서 모든 게 다르데. 한국 사람이 이민 와서 가장 힘든 게 이런 답답함이라고 해. 하지만 이내 익숙해진다고, 어떤 면에서는 편하기도 하다고 했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더운 날에 긴장하며 걸어서 그런지 조금 지쳤어. 개선문 앞에 앉아서 멍 때렸지.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점점 더더 많아지더라. 그리고 여행사 투어를 다니는 사람도 많았어. 형이 로마 시내 투어도 하려고 했는데 안 하길 잘한 거 같아. 정말 가이드 놓치기 십상이야. 그러지 않기 위해 여행사 모자나 소품 같은 걸 일행들이 하고 다녔어. 아마 난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었을 거 같아.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카스토리 신전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바로 옆에 포로 로마노가 있어서 그쪽으로 걸어갔어. 고대 로마의 정치, 종교, 경제의 중심지이지. 많은 신전과 황제들의 개선문, 바실리카가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건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콜로세움에서도 보여. 이 개선문은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야. 이 밖에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아.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로마라 그런 듯 싶어.
폼페이와 달리 유적이 복원되어 있지 않고 진열되어 있어. 잔해들이 막 땅에 놓지 않고 받침대를 대어서 진열된 것처럼 놓여있었어. 일부러 복원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같은 이탈리아지만 정책이 다른 건지 유적마다 기준이 다른 건지 모르겠어.
이곳도 그리스에서 봤듯이 건축물 대부분 다른 건축물의 재료로 재사용되었다고 해. 힘의 논리와 시대의 변화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까움이 컸어. 이곳이 로마의 심장이었을 텐데 말이야.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아 (Campidoglio) 광장
걷다 보니 capital의 어원이라는 캄피돌리아 광장에 도착했어. 광장이 크지 않지만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어. 광장의 3면이 건물로 막혀 있고, 우리는 막혀있는 건물 사이로 들어와서 광장이 갑자기 나와 놀랐지. 고대에서 중세로 시간을 넘어왔으니까.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정말 천재야. 가운데는 현재 시청 건물로 쓰이는 세나토리오(Senatorio) 궁전이 있고, 그 양쪽으로 콘세르바토리(Conservatori) 궁전, 누오보(Nuovo) 궁전이 있어. 이 둘은 현재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리고 가운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보여. 이 황제도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야.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그 황제야. 아들이 아니라 막시무스에게 황위를 물려주려고 했던 대단한 황제지.
시청으로 사용되는 세나토리오 궁전과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
그리고 유명한 코르도나타(Cordonata) 계단이 광장 입구에 있어. 계단에 이름도 있고 심지어 건축물보다 유명하다니 신기하지? 하지만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어. 광장 위에서 보면 단 높이가 낮고 넓어서 그냥 경사가 작은 내리막길로 보여. 그래서 계단인 줄 몰랐지. 하지만 계단을 내려와 광장을 보면 계단이란 걸을 확인 할 수 있어. 또 특이한 건 원근감에 따라 윗 계단으로 갈수록 단이 점점 작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여기는 윗 계단이 점점 커져서 단이 높이가 일정하게 보여.
대단해! 미켈란젤로의 대단함은 이탈리아에서 쭈욱~ 느낄 수 있었어. 로마에서 이 계단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많고, 그다지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아. 그리고 보다 더 유명한 스페인 계단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광장의 일부로 너무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해.
카스토레와 플루체 형제와 코르도나타 계단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Vittorio Emanuele Ⅱ Monument)
계단을 내려가 대로에 들어서면 베네치아 광장 (Piazza Venezia)을 볼 수 있어. 여기는 사람의 광장이라기보다는 로마의 도로가 모이는 중심지 같은 곳이야.
그 정면에, 하얗고 커서 로마랑 안 어울리는 듯한 건물을 볼 수 있어. 겉으로 봐서 이 건물이 뭔지 몰랐어. 딱 봐도 현대 건물이거든. 그래서 궁금해서 들어가 봤어. 이곳은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비토리아노)으로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이었어.
베네치아 광장
그래서 로마의 전쟁사를 볼 수 있었어. 특히 이탈리아 근대 역사를 볼 수 있었지.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를 알고 있다면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있었을 거야. 우리의 민족주의와 유럽의 민족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탈리아가 통일한 지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 중세 유럽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이곳에 와서 그 과정을 알 수 있었어. 이탈리아 통일사도 역사에 관심 있다면 꽤 재밌는 이야기야. 이 이야기는 기념관의 주인인 샤르데나 왕국의 국왕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와 붉은 셔츠대의 주세페 마리아 가르발디를 알면 돼. 지구의 땅에 국경이라는 구분선을 만든 건 사람이니까.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광장 오른편으로 작은 길로 들어가 걸었어. 그 길 양쪽에 있는 고대 건물 같기도 하고 중세 건물 같기도 하고 근대 건물 같기도 한 건물들은 유럽 판타지 게임 같은 느낌을 주었어.
골목 구경하다 보니 이러다 시간이 다 지날 거 같아 다시 콜로세움이 보이는 직선의 대로로 나왔어. 이 대로는 포리 임 펠리 알리 거리 (via del Fori imperiali)로 주위에 고대의 흔적이 그대로 있어. 특히 다수의 바실리카 흔적들이 있지. 포로 로마노만으로는 부족해져 추가로 건축했다고 해. 하지만 대로가 그것들을 가로지르고 있었어. 로마에 아스팔트 대신 돌 도로를 깔만큼,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유산을 사랑하는 로마인들이 왜 그랬을까?
대로를 따라 걸어 다시 콜로세움에 도착해 벤치에 앉았어. 그곳에서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데 콜로세움 배경이라니! 괜찮더라.
로마의 골목
포리 임 펠리 알리 거리의 바실리카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했어. 그러다 진실의 입을 보러 가자고 해서 구글맵을 보니 동선이 최악이었어. 어차피 오늘은 발길 닿는 대로 로마 구경이기에 컨셉에 맞는 거겠지.
성당으로 가는 길에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o Massimo)가 보였어. 우리에게는 영화 벤허로 인해 대전차 경기장으로 유명하지. 그런데 그냥 허허벌판이야. 구글맵이 없었다면 아마 아무것도 없는 벌판은 머지하고 지나쳤을 거야. 하지만 눈에 띈 이유는 여기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락밴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어. 형에게 '이곳은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관객석에서 뛰어노는 곳이네' 하고 웃었어.
그리고 이곳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지. 인생 유일하게 새 똥을 맞았어. 눈앞에서 먼가 떨어진다 싶어서 '어!!' 하고 피한다고 했지만 늦었어. 가방에 안착해버렸지. 그나마 옷이나 머리에는 전혀 묻지 않았고 다행히 가죽 가방이라 형이 물티슈로 쓱하니 없어지긴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웃더라고. 그냥 좀 지나가지. 뻘쭘해서 웃음이 나왔어. 형이 새똥 맞으면 운이 좋다고 해서 '남은 여행에 운이 좋겠다' 생각했어.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새똥 맞으면 운이 좋다거나 계시라고 여긴데.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어.
로마에서 웨딩사진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과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얼마 걷지 않아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에 도착했어. 성당을 멀리서 보면 7층 종탑이 상당히 인상적이야. 사진으로만 봐왔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종탑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 우리나라의 친숙한 붉은 벽돌 성당에 뭔가 복합적인 디자인이지만, 반복되는 형태의 탑이라 단순하다는 느낌도들었어. 그런 상반되는 점들이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좋았어.
이곳에 영화 로마의 휴일 때문에 유명해진 진실의 입이 있어. 성당 입구에 있어서 밖에서도 보여. 다들 손을 넣고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 다들 알다시피 플루비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조각에 입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을 삼켜버린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 우리도 들어가려고 했지만 줄이 얼마나 길던지 성당을 감싸고 있었어. 거기다 특이하게 사진을 찍으려면 요금이 내야 해. 특이하지? 그래서 진실의 입 앞에 돈 받는 사람이 앉아있었어.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성당 건너편에 테베레 강이 있어. 그래서 강 가까이 가서 나무 그늘진 강둑 위에 누웠어. 그런데 나 따라 하면 안 돼. 강둑이 얼마나 높던지 떨어지면 병원신세 져야 할 거야. 그래서 나도 금세 일어났어. 더욱이 파란 강이 아냐. 녹차 라테 초록 강이야. 형이랑 나랑 냄새에 예민해서 쿰쿰한 냄새 때문에 얼마 있지 못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야 했어.
테베레 강
오렌지 공원(Giardino degli Aranci)
길을 건너 언덕으로 향했어. 목적지인 오렌지 공원으로 걸어갔어.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되어있어. 그중에 이 언덕이 제일 높은 거 같았지. 왜냐면 나머지 언덕들은 언덕이라는 느낌이 없었지만 이곳은 확실히 경사가 있어.
'덥다 더워'를 반복하며 도착했더니 생각보다 조그만 공원이었어. 하지만 오렌지 나무로 된 공원이라 여러 향이 나서 산뜻했지. 우선테라스로 가서 로마를 구경했어. 높은 언덕이니 만큼 우리가 걸어왔던 곳들이 보였어. 그리고 곧 구경 갈 바티칸도 보였지.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오래 서 있을 순 없었어. 다른 분들도 사진을 찍어야 할 풍경이니까.
오렌지 공원
오렌지 공원에서 본 로마와 바티칸
오렌지 나무는 키가 작아서 나무 밑에서 서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누었지. 햇볕이 쨍쨍한 더운 여름날 오렌지 나무 밑 잔디 위에 눕는 기분?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져.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서 멍 때리는데 공원 구석에서 큰 소리가 났어. 거기서 이탈리아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봤지. 두 손의 손가락을 모으고 얼굴 앞에서 흔들면서 서로가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고함치지만 둘 다 절대 몸에 손은 대지 않아. 누구 목소리가 큰 지를 대결할 뿐이지. 그러다 한 남자가 뜬금없이 상의를 벗었고 더욱더 손동작이 화려해졌어.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경찰이 온 거야. 설마 경찰까지 올 줄이야. 하지만 하는 건 없어. 그래도 급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어. 이탈리아 경찰은 무섭기로 유명해. 법 위에 있는 경찰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여담이지만 이런 걸 이용해서 이탈리아 사복 경찰이라고 속이고 외국인들한테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
아무튼 둘은 화해한 듯이 악수하고 쿨하게 인사도 하더라. 싸움에 뒤끝과 폭력이 없다는 이탈리아인이라더니. 정말 어제 가이드가 묘사해주던 장면이랑 얼마나 똑같은지, 싱크로율 120% 일 거야. 그래서 형이랑 나는 한참 웃었지. 아! 그리고 가이드의 팁으로 이탈리아인과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 할 경우 상대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면 된다고 했어. 경찰이 오면 모르겠지만 그땐 대사관에 전화해야겠지.
오렌지 나무 그늘에 누워서
몰타 기사단의 열쇠 구멍
체력을 어느 정도 보충하고 바로 옆 몰타 기사단의 열쇠 구멍으로 갔어. 짧은 줄이 있어 우리도 줄을 선 후, 열쇠 구멍에 눈을 대봤어. 그러자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보였어. 로마에 서서 몰타 기사단의 정원을 통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보인다는 이유로, 3개의 나라를 관통해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찾지만, 그런 것 보다 허리를 굽혀 눈을 대면 열쇠 구멍을 통해 또 다른 세계의 아름답고 신비한 풍경을 봤다는 느낌이 좋았어.
열쇠 구멍으로 본 성 베드로 성당
바로 뒤쪽으로 성 안셀모 대학교(Pontificio Ateneo Sant'Anselmo)가 있어. 그곳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제복 입은 사람들이 에스코트해주는 길을 신랑 신부가 행진하며 밖으로 나오는 풍경도 아름다웠어. 그대로 그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자 현대의 로마 풍경이 나왔어. 언덕 위에는 중세 같은데 말이야.
성 안젤모 대학교
그대로 트램 길을 따라 걷다 버스를 타기로 했어. 그 정류장은 우리나라처럼 행선지, 도착시간이 전자 시스템으로 정류장에 잘 표시되어 있었어. 버스를 타고 산타 마리아 아이 몬티 성당까지 갔어.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가는 도중 고대, 중세, 현대를 지나는 시간 여행 같은 풍경을 지나쳤어. 그래서 트램이나 버스 타고 로마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지.
하지만 며칠 뒤 버스는 절대 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됐어. 만약 버스나 트램으로 로마를 구경하고 싶다면 반드시 투어버스를 이용하거나 일반 버스는 사람 없는 구간에만 탈 것을 당부하고 싶어.
로마 거리
걷다 보니 다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앞에 도착했어. 모든 길이 이곳으로 통하는 건지 로마 있는 동안 반드시 한 번은 지나게 되는 것 같아. 그때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돼.
그 주변을 돌다 저녁때가 되었고 지쳐서 게하로 돌아갔어. 둘 다 뻗어버렸지.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해서 얼마 쉬지 못하고 게하 사장님께 추천받은 가게에 가 피자를 먹었어.
게하에서 짧은 단잠을 자고 어두운 밤에 휴대폰도 안 들고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앞에 갔어. 다들 성당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 이곳 문화인가? 아무튼 우리도 그곳에 앉아 맥주 한 병씩 들고 오늘 소감을 나누고 돌아갔어. 로마 치안이 불안하다고 했지만 밤에 다니기는 안전했어. 그래서 내일도 나오기로 하고 돌아갔지. 너무 열심히 걸었는지 정말 피곤하더라. 그래서 로마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꿈나라로 빨려 들어갔어.
로마는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멋있는 공간이었어요. 아직도 지하에 고대의 도시가 잠들어 있다고 해요. 담배나 쓰레기, 서비스 같은 문제에 실망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 천년의 긴 세월을 걸어 다니면서 경험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랍니다. 꼭 여행해 보세요. 그리고 긴 줄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전 일찍 관광하시는 것을 추천해요.
다음 주는 가보지 못했던 베네치아 광장 반대편으로 여행합니다. 그곳도 제 글과 함께하시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