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그리고 포지타노.

여행 13일. 이탈리아 3일.

by 어린왕자

2014년 6월

이탈리아 남부


로마에 도착했지만 오늘은 로마를 여행하지 않아. 한 달간 같이 여행할 형이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예약해놨어. 난 당연히 오늘인 줄 몰랐지.^^


나폴리에 가고 싶었으나 치안이 안 좋다는 이유로 주위에서 만류했기에 계획에 넣지 않았어. 그래서 형이 출국 전에 '남부 투어 어때?'라고 해서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지'라고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어.


그리하여 이른 아침 산타 마리오 마죠레 성당 앞으로 갔어. 성당 앞 도로에 많은 관광버스가 있어서 놀랐어. 그리고 맞은편 분수대 앞에 여러 한국인 가이드들이 여행사 깃발을 들고 있었어. 즉, 백 명 넘은 한국인들이 남부 투어를 간다는 거야. 처음에는 버스를 가득 채워서 가는 줄 알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어. 한 버스에 20명 정도의 규모였어.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에 놀랐어. 한국 사람들 정말 여행 좋아하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지.




한국과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로 출발해 중간에 휴게소도 정차했어. 밀라노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고속도로 풍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해. 작은 언덕도 많고 중간중간 논과 밭까지 유럽 풍경 중에 가장 비슷할 거야. 같은 반도 국가라 그런가? 그 외에도 과거의 가부장적인 가정과 가족 중심의 공동체가 상당히 비슷하지. 지금은 이탈리아나 우리나라나 그런 부분들이 없어지고 있지만 말이야.


가이드의 자기소개와 간단한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말씀해 주셨어. 가이드 대부분 예술 관련 유학생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고 했어. 잔소리 많은 이탈리아인 아내와 비교해 순종적인 한국인 아내를 부러워한다는 이탈리아 남편들에게 다를 게 없다는 말보다 '네가 안 살아봐서 몰라' 하는 식의 농담 섞인 이탈리아 생활 이야기에 사람들은 웃고 긴장을 풀었어. 그리고 이탈리아를 엄청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거겠지.


폼페이 건물들


그중에 로마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적이 엄청 많아서 땅 파면 나온다고. 그리고 아주 관리를 잘한다고 말씀하셨어. 하지만 난 일부에 동의하고 일부에 동의하지 않아. 물론 이탈리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가장 많아. 하지만 우리나라도 13개로 상당히 많은 편이지.


말씀하신 땅 파면 나온다는 말은 우리나라 과거 대규모 SOC사업할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야. 땅만 파면 유적, 유물이기에 공사가 중지되고 그만큼 손해라고. 그래서 심지어 다시 그곳에 묻거나 다른 곳에 묻는다는 말을 어릴 적 아저씨들에게 제법 들었어.


역사를 재밌어하는 나로서는 유적이나 유물이 나올 때마다 달가워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게 그때 그 시절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기억들이 많아. 하지만 이제 많이 달라졌지. 이제야 선조의 선물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알게 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어. 그리고 이탈리아의 1/3 크기의 땅이지만 유산도 많고, 그걸 보러 전 세계 사람들이 오게 되어서 관광 산업이 나라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


아쉬움이 있다면 100년 전 많은 열강들이 뺏어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한양성을 뜯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더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이드의 말은 '로마는 우리나라만큼 유적이 많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 요즘 서울뿐만 아니라 몇십 년 전만 해도 유물이 발에 차일 만큼 많았다는 경주에 가면 외국인 가이드가 있어. 이탈리아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있듯이 경주에 한국인이 아닌 다양한 다른 나라 출신의 가이드들이 있어. 뭔가 신기하지 않아?




폼페이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데 버스로 3시간 이동이라 푹 잘 수 있었어. 햇볕이 강해질 때쯤 폼페이에 도착했어. 조금 더 남부로 왔다고 얼마나 햇볕이 따갑던지 첫인상이 다른 의미로 강렬했지.


입장권 구매 후 단체로 줄지어 들어갔어. 학생 때 견학 이후로 이렇게 다니는 건 오랜만이야.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몸은 편하지.


포럼 가는 길


출입구를 지나 도시를 바라보니 이천 년 전 만들어졌던 도시의 골격이 남아있었어. 그리고 폼페이의 진짜 입구인 마리나 문이 보였어. 입구는 두 개로 작은 입구는 보행자용, 큰 입구는 마차용으로 되어있어.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로마 도시의 상징인 폼페이 포럼이 나와. forum의 어원이 이 포럼이야. 여기를 중심으로 바실리카, 제우스 신전, 아폴로 신전등 중심이 되는 건물들이 있어. 이곳에서 시민들의 토론과 집행관 후보들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을 거야.


아폴로 신전


화산재에 덮여 있어서 그런지 건물 잔해들이 검은색을 띠고 있어. 종종 건축물에 다른 색으로 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어. 이는 복원된 부분으로 일부러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고 해.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 부분이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이 장점이라고 하는데, 형과 나는 비슷하게 복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어. 의도는 좋은 거 같지만 직접 보면 너무 덕지덕지 느낌이거든. 그리고 최소한 벽돌로 만들어진 거면 벽돌로 복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마 모든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 임시로 복원한 게 아닌가 싶어. 왜냐면 복원된 부분도 오래됐는지 상당히 노화되어 보였고, 너무 대충 해놓았다는 느낌이었어.


복원한 부분과 원본의 차이
베수비오산


포럼의 배경으로 큰 산 하나가 보여. 그 산이 바로 폼페이를 화산재로 덮어버린 베수비오 산이야. 아직도 활화산이래. 산에 구름이 같이 찍혀서 마치 산 정상에서 뿜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묘했어.


한쪽에는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과 유명하다는 사람 형태의 석고가 있어. 화산재가 쌓이고 생명들은 흙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는 빈 공간이 되었어. 그곳에 석고를 부어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었지. 당시 무서웠던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사진을 찍지 않았어. 모조품이라지만 이걸 굳이 전시해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화산 폭발로 인해 이천 년이 지나도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남아 좋았지만 반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흔적들까지 고스란히 남은 거 같아.


폼페이 유적




폼페이의 도로


이곳에서 짧은 자유시간을 받았어.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지. 이 천 년 전에도 가장 사람이 많았던 곳에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아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어. 눈으로 포럼 구경을 하다 다시 투어가 시작되었어.


이곳은 현대처럼 도로를 끼고 양쪽에 건물들이 있었어. 과거에는 자동차 대신 마차가 다니는 길이었지. 도로와 건물 사이에는 현대와 같이 약간 높게 인도도 있어. 도로는 큰 돌들을 깔았고, 그 돌들에 두 개의 패인 줄이 있어. 이건 마차가 다녀서 돌이 깎여 기차 레일처럼 된 거래. 돌이 파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차들이 다녔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그리고 그 많은 마차가 규격화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


폼페이의 도로


그리고 도로 중간중간에 큰 돌이 놓아져 있어. 이건 과속 방지턱이래. 하지만 생긴 건 마치 징검다리처럼 생겼어. 아마 마차들이 이 앞에서 속도를 늦출 테니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횡단보도 역할도 했던 거 같아. 이 천년 전의 도로 시스템이 현대와 거의 같았어.


여기서 더 신기한 거 하나, 야간 등이 도로에 있다는 것. 도로의 돌들 사이사이에 작은 하얀 돌이 있어. 이 돌은 야광으로 어두운 밤에도 도로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해 놨어. 다른 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감탄했어.


도로의 야광석


하지만 여기서 궁금했던 점은 왜 도로에 패인 줄이 두 개밖에 없을까? 그럼 반대 방향으로 마차가 오면 어떻게 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일방통행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순환구조 형태의 일방통행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주차장인지 모르겠지만 돌을 길게 세워놔서 도로가 막힌 곳도 많았어. 뭔가 생각들이 딱 들어맞지 않아 찝찝했어. 가이드를 쫓아다니며 설명을 듣기에도 바빠서 꼬인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했어.





폼페이의 장식


건물들마다 바닥에 독특한 타일 장식이 되어있어. 이건 건물 주인마다 개성을 나타내서 여기가 누구의 집인지 무슨 가게인지, 혹은 메시지 같은 걸 전했다고 해. 그중에 안내받은 집 타일은 정교하고 예쁘더라. 대중에게 어필이 중요한 로마인인 만큼 자신의 감각과 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도 싶었어.


그리고 타일 말고도 건물 앞에 문양? 그림? 들이 있어서 이것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표시해놨어. 일종의 간판이지. 즉, 이를 보고 이곳이 식당인지, 옷 가게인지, 목욕탕인지 알 수 있는 거야. 참 편리해.


집 앞에 장식된 타일




폼페이의 루파나레


19세 미만 관람불가인 루파나레로 들어갔어. 당시의 홍등가야. 여긴 길이 너무 좁아. 우리 일행들이 다 서기에도 어려웠어. 거기다 안은 생각보다 더 좁았어. 이천 년 전에도 홍등가는 뒷골목이라는 건가. 로마에는 앞 골목 홍등가 같은 목욕탕이 있으니 이런 건 좁은 저 뒤로 보내버린 걸까? 계속 먹기 위해 토하면서 먹고, 목욕탕에서도 즐기는 향락의 도시라 홍등가도 동등한 대우를 받을 줄 알았지만 의외였어.


작은 방들이 있고 곳곳에 야한 그림들이 남아있어. 그리고 방에는 돌침대가 있는데 다리를 뻗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작아. 당시 로마 사람들은 작았나? 돌 침대가 아니라 돌 소파 같은데 말이야.


그리고 길바닥이나 벽에 남자 성기 형태의 부조 조각들이 많아. 가이드 말로는 이게 루파나레 방향을 표시하는 거라고 하셨어. 그런데 그 수가 너무 많아. 뭔가 부자연스러워 집에 와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다른 의미도 있었어. 로마에서 남자 성기는 부와 행운의 상징이래. 중국집 가게마다 복자를 거꾸로 달아놓은 것 같은 의미인 거 같아. 어쩐지 표지판 치고는 너무 많더라.


돌 침대? 돌 소파?




폼페이의 목욕탕


그다음은 하루의 노고를 풀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목욕탕. 엄청 크고 좋아. 역시 앞 골목의 위력인가. 로마의 목욕탕은 직위 상관없이 시민이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곳이지. 천장과 벽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았어. 인상적인 건 천장에 유리창을 달아 채광을 확보했어. 밤 달빛이 들어올 때 목욕을 했을 로마인들을 상상해봤어. 꽤 좋았을 거 같아.


옷과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수납장에는 조각들을 달리해서 옷을 보관해 놓은 곳을 기억할 수 있게 해 놨어. 가장 좋았던 건 천장에 길게 만들어 놓은 줄무늬들이었어. 이건 수증기가 천장에 닿아 맺히면 천장에서 바로 떨어지지 않고 이 줄무늬를 따라 흘려 벽으로 떨어지게 하려는 거래. 디테일 쩔어! 역시 로마 최고의 문화 공간이야. 목욕탕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정작 로마 후손인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친숙해하지 않을까 싶었어.


목욕탕 천장
목욕탕 천장과 유리창




고대 로마의 기술력


다시 대로로 나왔어. 중간중간 공공수도를 볼 수 있어. 로마는 다들 알다시피 상수도 시스템이 완벽해. 수도교를 이용해서 주위의 물을 도시 안까지 오게 만들고 이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했지. 거기에 독특한 장식을 해놓아서 이걸로 폼페이의 어디인지 알 수가 있었다고 해. 약속을 잡을 때 '물고기 수도에서 봐'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이 많아. 내부를 벽돌로 만들고 바깥 부분에 대리석 같은 석재를 대었던 거 같아. 이보다 앞서 이집트에서 규격화된 벽돌을 제조했으니까 그다지 놀랍지 않았어. 그보다 지금의 저층 건물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게 신기했지. 그리고 친근해 보이는 건 기와. 유럽의 기와도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


대로와 공공수도
건물 내부의 벽돌
로마시대의 기와


마지막으로 대극장으로 갔어. 앞서 파묵칼레와 아크로폴리스에서 봤던 극장과 같은 형태의 원형 대극장으로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어. 그래서 옆에 또 소극장이 있는 거 같아. 뭐 1관, 2관 이런 거겠지. 그곳에 앉아 잠시 쉬었어. 하지만 그늘 하나 없는 곳에 앉아 있는 건 햇볕에 약한 나로서는 다소 힘들었어. 신기하게도 이천 년 전에도 사람이 많았던 곳은 현재도 많았어. 그곳을 마지막으로 대극장 뒤편으로 폼페이를 나왔지.


점심은 투어에 포함되어 있었고, 바로 옆 레스토랑에서 해물 스파게티와 해물 튀김을 먹었어. 역시 이천 년 전 항구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어야겠지. 맛은 쏘쏘했어. 로마 이후 계획은 형이 예약한 거라 가격을 잘 모르는데, 형이 투어비 치고는 잘 나오는 것 같다고 했어. 식전 빵도 있어서 양도 꽤 되었고. 같은 테이블에 신혼부부와 이야기를 하며 배를 채우고 다음 행선지로 고고!!


공개되지 않은 폼페이 지역




다음 장소로


식곤증으로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들었어. 잠에서 깨자 선착장. 그래서 버스에 내려서도 비몽사몽 멍하니 서있었어. 가이드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 어느덧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돌아왔어.


그리고 떠나온 도시를 보니까 버스 타고 오는 길 풍경이 예뻤을 거 같아서 아쉬웠어. 배를 타고 해안 마을을 보자 이곳도 어디선가 본 느낌은 머지? 형에게 '한국 어딘가라 비슷해 보이지 않아'라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 이탈리아는 정말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야.


그러다 한 곳을 지나가다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은 아말피였어. 아쉽게 이 투어는 아말피는 잠시 정박할 뿐이었지. 아말피 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왜냐면 이탈리아 남부라면 나폴리, 폼페이, 아말피, 시칠리아니까. 이번에는 배에서 보는 것만 만족했어.


출발한 선착장에서
아말피




포지타노


그렇게 한참을 지나 도착한 곳은 포지타노. 아말피보다 근사해 보였지만 여기도 익숙한 느낌은 뭘까?


여기서 2시간 자유시간을 받았어. 전체를 2시간 안에 본다는 건 무리인 거 같아 어중간해 보였어. 우선 사람들을 따라 걸어가다 정체구간에서 멈췄어. 유명한 뷰포인트가 있나 봐. 아마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이겠지만 난 이런 기다림은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사람 없는 곳으로 걸었지.


이내 바다가 보이는 도로가 나왔고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었어. 가이드를 따라다니니까 의외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 이 기회에 조금 찍었지. 형이 골목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골목으로 들어갔어. 골목으로 들어오자 깔끔히 정돈되고 세련된 친퀘테레 같았어. 사진에 프로인 형은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경에 신이 났어. 바다가 보이는 상가들을 지나 더 들어가니 가정집같았고 우리는 조용히 골목 사진만 찍었어. 어느덧 1시간이 다 되어서 내려가야 했어.



내려가면서 상점도 들려보고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구경이 아니라 이리저리 치일 뿐이었지. 특히 다 내려갈 쯤에는 이걸 어떻게 뚫고 가나 싶을 정도로 많았어.


먹고 싶은 젤라또도 패스하고 앉아 쉴 카페를 찾아다녔어. 자리 없음으로 2번의 튕김을 당하고 3번째에도 나가려고 하는 순간, 바다가 잘 보이는 제일 좋은 곳이 마침 비었어. 그래서 냉큼 가서 앉았지. 종업원이 왔고 시원한 과일주스를 주문했어. 이탈리아에 당연히 아아 따윈 없지. 따뜻한 커피만 커피로 취급하니까.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며 형과 소감을 나누었어. 결론은 나랑 투어는 맞지 않아. 행선지는 마음에 들었어. 아마 나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게 불편하지 않았나 싶어. 투어가 아니라면 더 머물거나, 빨리 이동한다거나, 행선지를 바꾼다거나, 소감을 교환한다거나, 쉰다거나 하는 결정을 내가 할 수 있지만 이건 지겨워도, 지쳐도, 좋아도, 그대로 해야 된다는 게 여행 온 게 아니라 학교 소풍, 견학 온 거 같기도 하고 조금 답답했어.



시간이 다 되어 배로 갔어. 여기도 정말 한국인 많더라. 우리 일행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어. 배를 타니 서양권 사람들과 동양권 사람들의 차이가 보였어. 뭐냐면 배에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아야 돼. 이때 선크림을 바르면 동양권, 태닝 크림을 바르면 서양권이야.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인과 비교해 한국인은 정말정말 하얀 편이야. 이탈리아인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얀 사람이 눈에 띄정도로 많지 않아. 내가 더 하얗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니까.



배를 타고 있으니 생각났어. 이곳이 어디와 비슷한지. 바로 통영. 어릴 적 배를 타고 다도해를 구경했던 그 풍경과 비슷해 보였어.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작은 섬에도 마을이 많았어. 그래서 섬과 마을이 어울려져 있는 풍경을 보았지. 형에게 이야기해주자 그런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투어를 찾으면서 본거 같다고 했어. 그리고 이 말을 이탈리아에 살았던 친구에게 말하니 '그래서 통영이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구나' 했어. 역시 보는 눈은 거기서 거긴 가봐.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니 다들 타자 마자 꿈나라로. 난 낮잠을 자서 잠이 오지 않았어. 형이랑 이야기를 하다, 종일 여행을 다녀서 그런지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을을 감상했어.


그러다 밤이 되어서야 산타 마리오 마죠레 성당 앞에 도착했어. 투어를 즐기게 해 주신 버스기사 아저씨와 가이드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렸어. 투어팀들 엄청 피곤했는지 얼굴이 달라졌던 건 안 비밀. 그래도 투어가 좋았는지 표정도 좋고 가이드 아저씨에게 칭찬이 가득이었지. 그런 표정과 말을 들으면 보람찰 거 같았어. 폼페이가 완전히 복원되면 내가 가이드 역할을 맡아서 친구들과 같이 여행 가고 싶어~


그렇게 인사하고 옆에 있는 불빛이 비친 성당을 봤어. 난 그곳에 빠져 내일 로마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게하로 걸어가며 보이는 풍경에 그 마음은 더욱더 부풀어 올랐어. 게하 침대에 누워 어디를 구경할까 생각하며 잠들었어.


산타 마리오 마죠레 성당




이탈리아 남부는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투어 중에 혼자 다니는 동양인 여행객을 노리는 괴담을 많이 들어답니다.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분량 초과로 뺐어요. 그리고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 외에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던 것들과 같이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투어 다녀오셨던 분들 기억과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


다음 주 로마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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