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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Oct 18. 2021

어릴 적 놀이와 깍두기

#아이들 놀이, #깍두기, #공정한 경쟁, #한 번 더, #같이 놀자!


어릴 적 놀이


  요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우선 어릴 적 재밌게 놀던 놀이들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여자들은 몰라도 남자들이라면 지금 해도 꽤 재밌을 겁니다. 다만 오징어는 빼고요. 어릴 적에도 너무 격렬해서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다치면 다친 사람만 아픈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같이 놀던 모두가 다 불편하고 아파하던 시절이니요. 물론 다치치만 말라는 엄마의 당부와 다른 어머니들의 꾸중을 듣기 싫은 것도 있지만요.


  어릴 적 놀이들을 생각하니 많은 놀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어요. 이 정도라면 오징어 게임이 몇 시즌 나와도 게임은 부족함이 없을 거 같아요. 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딱지 치기, 홀짝, 달고나는 물론 숨바꼭질, 하늘땅, 얼음땡, 구슬치기, 쌀보리, 여우야, 팽이, 제기차기, 말타기 등을 하며 놀았어요. 그것보다도 많은데 이름들이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그리고 지역별로 이름이 다르기도 하고요. 정말 재밌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 많은 게임의 규칙과 방법을 어떻게 다 익히고 기억했는지 새삼 신기하네요.




깍두기


  <오징어 게임> 드라마에서 어릴 적 하던 놀이는 수단일 뿐 데스 서바이벌 게임을 하여 살아남는 자가 상금을 가지게 되는 내용이지요. 순수한 어린이들의 놀이라는 상징성을 사용하여 자본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고찰로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극한의 자본주의의 말로는 데스 서바이벌과 유사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잠깐 언급된 '깍두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느 날, 동생과 이야기하던 중에 어릴 적 자신은 깍두기였다고 했어요. 그래서 서운한 줄 알고 그때 더 잘 놀아줄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참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을 진지하게 상대해주지는 않았지만 항상 놀이에 껴줬다고요. 생각해 보니 언니, 오빠들이 몸을 쓰는 놀이에 조그만 여자 아이가 상대가 될 수가 없죠. 진지하게 하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툭 쳐도 다칠 테니까요. 막상막하의 게임에 최약체를 상대할 여유가 없었기도 했겠지만 아마 동생이 더 재밌게 놀 수 있도록 언니, 오빠들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놀이에서 깍두기란?


  드라마에서는 상대가 없어 깍두기가 되어 다음 게임에 자동 진출하지요. 깍두기란 놀아주지 않는 게 아니에요. 깍두기라서 다음 게임에 자동 진출하는 것이지요. 깍두기는 게임에 불리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친구가 있을 경우, 팀 숫자를 더 많게 하거나 잡혀도 한 번은 봐준다거나 한 발만 뛰는 규칙에 한 발 더 뛰게 해 준다거나 하는 혜택이 있는 존재예요. 드라마 말고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명수는 12살'편에서 버들이 12살로 돌아가 어릴 적 놀이를 해요. 여기서 놀이에 처음인 박명수 씨를 깍두기로 하여 가르쳐주고 실수를 하거나 아웃이 되어도 넘어가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놀아요. 그게 정확하게 깍두기예요.


  나이를 먹고 어릴 적 놀이를 하지 않는 지금이 돼서 생각해 보니 깍두기 문화가 참 좋은 문화 같아요. 신체조건이나 다른 조건으로 공정하지 않기에 공정하게 할 수 있게 혜택을 주는 방법이라니. 아이들 입장에서 봐도 그들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도록, 자신들도 더 재밌게 놀 수 있도록, 그렇게 모두 재밌게 놀 수 있게 하는 좋은 문화 같아요. 어린이 문화지만 너무나도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문화인 거 같아요.



차이


  세상의 출발점은 조금씩 다릅니다. 태어날 때부터 조건이 다르죠. 재능, 성격, 인맥, 집안, 신체, 재산까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죠. 그러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이것들로 인해 가속도 자체가 다른 것이 더 큽니다. 자본으로 자본을 늘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가속도가 빠른 자가 멈추지 않는 한 따라잡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은 경쟁사회에서 뒤처진 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속도를 늦추고 결국 전제의 정체에 이르게 하지요.


  물론 장애를 가진 경우나 나라를 위해 행동한 경우 이점을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건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일 경우입니다. 심지어 그 때문에 아예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완벽하게 공정하기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극단적으로 선천적인 지능지수에 따라 시험문제를 다르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사람이 하나의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자신도 다 모르는데 말이죠. 사람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지요. 너무 많은 경우의 수에 의해 오히려 그 부분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 전체가 정체될 수도 있습니다.




공정


  하지만 경쟁을 위해서는 공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정이 없다면 경쟁 자체가 되지 않으니요. 어릴 적 놀이에도 편 뽑기나 규칙 정하기 혹은 깍두기 혜택 정하기에서 '그러면 우리 편이 너무 불리하잖아!'라며 공정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 티격태격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정이란 단어와 경쟁이란 단어를 따로 놓아둔다면 왜 이리 거리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니, 아예 반대편에 있는 단어로 느끼시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아마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가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포츠의 규칙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없었던 규칙과 반칙, 벌칙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변해가고 세상이 변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벽한 공정한 경쟁을 위한 노력이지요. 사람들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공정한 경쟁을 위해 늘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니 무한한 경쟁이 이 세상과 문명의 진리라 여기며 공정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기보다는 경쟁과 공정은 동행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곁에 두었으면 합니다. 왜냐면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요.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다.

 

  우리는 태어나하는 일에 처음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놀이에 연습게임이 있지요. 그리고 새로 온 친구만 게임을 모를 경우 규칙과 방법을 가르쳐주고, 익숙하지 않으므로 불리하기에 깍두기라 실수들을 봐주면서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경쟁이라는 이유로, 효율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잘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천재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이 천재가 아닌 것을 알고 있죠. 하지만 회사에 입사만 하면 다 천재이길 원합니다. 심지어 천재가 아니라서 화를 내며 사람이 아니라 말합니다. 그렇게 대다수 사람들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잊습니다.


  학교라는 기관으로 사람을 교육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회사에서 일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학교는 사람과 더불어 살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의 전반적인 규칙을 가르치며 기초 교육을 하는 곳이지요. 직업 교육에만 집중한다면 그 분야에서 이탈할 경우,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축구 교육만 받은 유소년 축구 유망주가 한 번의 무릎 부상으로 어른이 되면 다른 일에 적응할 수 없듯이요.




회사의 일과 놀이


  물론 회사의 일은 놀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새로 온 사람이 일을 못하면 나머지 사람들의 업무가 과중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여유분의 인력을 보충하며 회사의 이익을 줄일 리가 없으니까요. 부족하다면 야근과 특근이라는 추가 근무라는 좋은 제도를 이용하면 되니까요. 이러한 시스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시스템 또한 사람이 만듭니다. 그러니 무한한 경쟁, 돈이 우선이라는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소원하지요. 일을 놀이처럼 하고 싶다고. 그건 고용인뿐 아니라 고용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가 일은 놀이가 절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소원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란 신기하죠?


  그런데 놀이에 경쟁이 없을까요? 생각해 보면 경쟁 없는 놀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하는 놀이가 없지요. 사람은 경쟁을 통해 성취감과 재미를 느낍니다. 그런데 놀이는 재밌고 일은 힘들기만 하죠. 원하던 일을 해도 힘들고 원하지 않은 놀이를 해도 재밌습니다.


  그것은 아마 일에는 의무감이나 책임감, 추가 근무, 사람 간의 관계라는 다른 것들이 섞여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이에도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따르며 하기 싫지만 친구들과 관계를 위해 하기도 하며, 때론 싫은 사람과 같은 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놀고 나면 재밌고 친해지죠.


  그래도 일은 힘들고 하기 싫은 건 아마 실수에 대한 대가가 가장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놀이에서 자신의 실수를 친구들이 원망하며 질타만 한다면 어떨까요? 한 번의 실수로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힘든 회사 생활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이미 익숙한 일

  그래서 더욱더 깍두기라는 문화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또한 다른 이에게 역할 과중이 아니라 보다 같이 경쟁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도록 공정함도 같이요. 그렇게 친구가 놀이와 규칙을 가르쳐주고 실수 한 번에 한번 더 기회를 주며, 익숙해지도록 기다려주어 그 기다림이 힘듦이 아니라 같이 하는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손해 보기 싫으며, 현재의 영광은 영원할 거라 믿지요. 또한 지속된 양보를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놀이에는 사람이 필요하고 각자 역할을 잘한다면 더욱더 재밌습니다. 그렇기에 친구가 익숙해져 잘할 때를 기다리고 깍두기 친구는 빨리 익혀 깍두기에서 벗어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어 놀이에서 이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말하죠. '생각보다 잘하는데 내일도 같이 놀자. 내일 아침 10시에 여기까지 오면 돼.' 그리고 '잘 가르쳐줘서 고마워, 내일 봐.' 그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죠.


  가르쳐주면, 조금 기다려 주면, 같이 놀면, 더 재밌다는 것을 어릴 적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바쁘게 살 수밖에 없으니 그렇겠죠. 잠시 큰 숨을 쉬고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우리 모두는 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익숙하게 해 봤던 일이니요. 모두 같이 재밌게 노는 방법을요. 다 같이 잘하는 방법을요. 다 같이 사는 방법을요.



  어른이 되면 어린이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신기합니다. 본인도 어린이였을 텐데 말이죠. 놀이는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화의 한 과정입니다. 저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많은 것들을 배워 생각이 되고 습관이 된 거 같습니다.


  또한 참 어려웠던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이 있어서, 재밌는 놀이들이 있어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깍두기도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어린이같이 이상으로 쓴 글이라, 어릴 적이라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추억을 그리며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나 조금은 즐거운 생활이 될 수도 있잖아요.^^ 꼭 그러지 않아도 어릴 적 좋은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 지어지길 바라봅니다.


  아~그리고 다음 주는 쉬어갑니다. 2주 후에 화학글로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갑자기 다가온 겨울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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