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흐림과 보케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135mm

SIGMA 135mm F1.4 DG | Art

by EastRain

(광고) 폰으로는 넘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 렌즈가 있다. 폰의 렌즈가 작고 편리하다곤 하지만 고정되어 있어 다른 렌즈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 다양한 렌즈를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다. 특히 SIGMA의 Art 시리즈는 ‘이것이야 말로 카메라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렌즈’라고 알리는 것 같다. SIGMA Art 렌즈들은 대부분 그 성능 자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크기나 무게는 그다음이고 가장 우선으로 밀고 있는 부분은 성능이다. SIGMA의 Art 단렌즈 중 일부 초광각과 매크로 외에는 최대개방 F1.4다. DSLR 시절 SIGMA가 선보였던 135mm F1.8 DG HSM | Art는 최대개방 F1.8이었다. SIGMA는 그 숫자가 Art시리즈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SIGMA는 대담하게 F1.4로 밀어붙였다. 개인적으로 망원 렌즈의 F1.4가 너무 궁금했다. 이번 리뷰는 SIGMA 135mm F1.4 DG | Art에 대한 이야기다.


집중과 압축

대상을 다양하게 합쳐 사진에 담아내는 것도 좋지만 일부만 대상을 다양하게 합쳐 사진에 담아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일부만을 압축하듯 모아 한 장에 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그 압축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화각이 바로 135mm다. 현실적인 크기와 무게로 일반 카메라에 무리 없이 사용하면서 ‘망원’이라는 개념을 처음 성립시킨 초점거리가 135mm였다.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화각이 요구받는 이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감천문화마을

감천 문화마을은 넓고, 복잡하고, 산만하다. 하지만 135mm로 잘라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많은 것들 중 일부만 남고 남은 것들은 서로 밀착되어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겹겹이 쌓인 집들은 실제로는 서로 꽤 떨어져 있다. 하지만 135mm로 바라보면 그 거리는 사라진다. 앞뒤의 간격은 눌리고, 색과 형태만 남는다.

이 화각은 풍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장면으로 정리해 버린다.


외부에서 내부로

감천문화마을

멀리서 바라본 감천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겹쳐진 색과 형태가 사진을 채웠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리도, 방향도, 시선도 급격히 가까워진다. 이때부터 사진은 압축이 아니라 깊이의 문제가 된다.

SIGMA 135mm F1.4는 이 지점에서 성격이 바뀐다. 멀리 서는 구조를 정리하고, 가까워지면 깊이를 만든다.

부산 서동

그리고 부산이기에,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이한 동네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서동이다. 이 동네는 작은 산을 둘러싸듯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동네 역시 먼저 외부에서 압축하는 느낌으로 촬영한 뒤,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자. 서동의 골목은 굳이 망원 렌즈가 아니더라도 빡빡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대신에 망원 렌즈를 사용할 경우, 이 동네가 가진 더 솔직한 거리감이 드러난다. 가까워 보이지만 쉽게 닿을 수는 없는 거리, 서동은 그 간격을 숨기지 않는 동네다.

부산 서동

멀리서 보면 서동은 하나의 풍경이다.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은 사라지고, 색과 형태만 남는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풍경은 다시 생활로 쪼개진다.

너무 좁아서 가까이 설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물러설 수도 없는 거리. 이때 망원은 압축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생활을 건드리지 않기 위한 거리가 된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기에

길고양이.

어떤 대상은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사라진다. 길고양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135mm는 그 거리를 유지한 채로 시선을 건네는 렌즈다. 다가가지 않고, 침범하지 않고, 대신 정확히 바라본다.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초점은 분명하고, 주변은 조용히 물러난다. 가까이 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찍히는 대상이 많은 만큼, 보케도 많다

해동용궁사

대상이 많아질수록 배경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 렌즈에서는 복잡함이 사라지지 않고, 보케로 전환된다.

사실 해동용궁사의 내부는 넓은 편이 아니다. 작은 섬 위에 지어진 절이기에,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부터 좁다. 그런 의미에서 해동용궁사는 ‘내부 같은 외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은 표준 화각이나 광각 렌즈가 더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결과가 너무 뻔하고, 식상해질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면 공간을 압축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보케까지 포함한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해동용궁사가 아니더라도, 넓지 않은 야외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그런 장소에서 SIGMA 135mm F1.4 DG | Art는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해동용궁사

그리고 사람보다 조금 더 큰 대상 역시 SIGMA 135mm F1.4 DG | Art와 잘 어울린다. 대상이 크기 때문에 촬영자는 자연스럽게 조금 더 뒤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거리가 생긴 상황에서도, SIGMA 135mm F1.4가 만들어내는 보케는 여전히 충분하고 넉넉하다. 이 렌즈는 대상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대상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복잡함이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송도 해수욕장

이 갈매기들을 많이 담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135mm였기에 제법 뒤로 가야만 했다. 걱정할 수도 있지만 F1.4 덕분에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왔다. 수많은 갈매기들의 각기 다른 펄럭임이 겹치며 보케와 흐림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송도 해수욕장

이 장면을 찍으면서 복잡함을 정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갈매기들이 많아질수록, 프레임은 더 어지러워졌고 피사체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SIGMA 135mm F1.4는 복잡함을 지우는 렌즈가 아니라 복잡함을 그대로 두고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렌즈였다.

송도 해수욕장


어느 거리에 맞춰도 사라지지 않는 압축

이 사진들은 2026년 1월 1일 광안리에서 촬영했다.

해가 뜨기 직전부터 떠오른 이후까지, 같은 자리에서 꾸준히 셔터를 눌렀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부터, 솟아오르는 해까지 모든 사진은 최대개방 F1.4로 촬영했다. ISO는 전부 100이었고, 해가 뜨기 전의 어두운 순간에도 셔터스피드는 1/1250초를 유지했다.

이 결과를 하나로 요약하면 단순하다. 어느 거리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이 렌즈의 압축은 사라지지 않는다.


멀리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밀도

해운대 동백섬

해운대에서는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 렌즈가 정말 궁금했던 건, 아주 멀리 있는 대상을 어떻게 다루는 가였다.

135mm는 거리를 단순히 늘리지 않는다. 멀어질수록 장면은 평평해지고 구조는 또렷해진다.

파도와 바다, 건물과 인공 구조물까지 한 장면 안에 모두 들어와 있지만 사진은 흩어지지 않는다. 이 거리에서도 압축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해운대


135mm F1.4, 아주 먼 거리에서도 얕아지는 심도

광안리, 원본과 일부확대.

우리는 135mm로 먼 곳에 있는 대상을 찍을 때 기본적으로 압축을 기대하면서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결과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서 ‘아, 여기에 얕은 심도가 더해지면 더 좋겠다 ‘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135mm F1.8이나 F2.8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가리. 원본과 일부확대.
해동용궁사. 원본과 일부확대.

사진의 일부만 크롭 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전체를 크게 사용할 때도 많다. 전시 출력, 포트폴리오 이미지, 대형 인쇄물, 혹은 웹에서도 큰 해상도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경우에 특히 유효하다. 사진을 크게 볼수록 135mm F1.4 특유의 얕아지는 심도와 공간 분리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해운대. 원본과 일부확대.

135mm 자체의 장점이 압축인데 거기에 얕은 심도를 더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렌즈가 바로 SIGMA 135mm F1.4 DG | Art가 아닐까. 물론 이 특이한 매력만큼 일반적인 135mm 렌즈보다 무겁다. 사실 편리한 무게는 아니다. 대신에 편리함과 가벼움 만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진이 나타난다.

해운대. 원본과 일부확대.


대체할 수 없는 선택

SIGMA 135mm F1.4는 분명히 가볍지 않은 렌즈다. 크기와 무게만 놓고 보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종종 비슷한 선택들이 반복된다. 어릴 적에는 작은 전자피아노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결국 크고 무거운 피아노를 떠올리게 된다. 공간을 차지하고, 옮기기 어렵고, 관리도 까다롭지만, 그 무게와 부피가 만들어내는 울림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

135mm F1.4 역시 같은 이유로 존재하는 렌즈다. 단순히 밝은 렌즈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먼 거리에서도 심도가 얕아지는 영역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선택된 크기와 무게다. F1.8로도 충분한 장면은 많다. 하지만 초점이 맞은 지점은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그 주변이 거리와 상관없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장면은 F1.4라는 조건이 있어야만 성립한다. 이 렌즈의 무게는 불필요한 과장이 아니라, 그런 결과를 감당하기 위한 물리적인 전제에 가깝다.

비석문화마을

그래서 SIGMA 135mm F1.4는 항상 들고 다니는 렌즈라기보다, 그 표현이 필요한 순간에 선택되는 렌즈에 가깝다. 전자피아노로는 끝내 닿지 못하는 울림이 있듯, 가볍고 편한 렌즈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렌즈는 바로 그 지점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부산근현대역사관

사진을 찍다 보면 항상 가볍고 편한 선택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자주 느낀다. 들고나가기엔 부담스럽고 사용 빈도도 높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SIGMA 135mm F1.4는 그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렌즈다.

결과가 분명히 달라질 걸 알 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도구. 무게를 감수하는 대신 사진이 끝내 도달해야 할 지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

이 렌즈는 그 선택 중 하나가 아닐까.


2026.1.26 EastRain

::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결과입니다.

:: 모든 사진은 원본 사이즈입니다. 터치 후 확대해서 보세요.

:: 이 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SONY a1 II로 촬영했습니다.

:: SIGMA 135mm F1.4 DG | Art는 대여했습니다.

::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F1.4 최대개방으로 촬영한 결과입니다.

:: 본 리뷰는 제품과 원고료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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