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떤 장르가 됐건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시작한 게 맞습니다.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사치였습니다. 아무나 자신의 초상화를 소유할 수 없었고 아무나 자신의 집에 풍경화를 걸어둘 수 없었죠. 그것은 법으로 규제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그림을 사겠습니까.
사진의 시작도 그리 대중 친화적이지는 않았지만 회화보단 나았지요. 여러 달을 걸려 그려야 하는 작품이 아니었고 한 번의 셔터와 현상·인화하는데 걸리는 수고만 필요했을 뿐이니까요. 순간을 손쉽게 담을 수 있다는 특성으로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동전 몇 개로 신문을 산 사람은 생생한 현장의 사진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죠.
자, 그렇다면 사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진을 만들고 즐기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카메라’라는 기계 없이는 사진 찍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과거 초창기 필름 시대에는 제대로 된 카메라를 구매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시대를 거친 사람들은 카메라가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회상하고는 합니다. 아무나 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카메라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점점 대중화되어갔습니다. 필름시대 마지막을 장식했던 P&S(Point and Shot) 카메라, 즉 똑딱이는 디지털 시대 초반까지 카메라 대중화를 선도했지요. 집집마다 카메라를 한 대씩은 가지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 덕분에 1인 1 카메라 시대로 옮겨갔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여전히 특정 사진은 작품으로 예우받으며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박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진이 산 사진을 억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사진은 특정 계급만이 찍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사진을 즐길 수 있지요. 혹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진짜 사진이 사라졌다느니 무게감이 사라졌다느니 진정성이 떨어졌다느니 폄하하지만, 이는 사진과 사진을 찍는 이를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일부의 시선일 뿐입니다.
카메라는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사진 찍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사진으로 자신의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역사와 추억을 담은 사진이 저널리즘에 입각한 사진보다 낮은 위치를 점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카메라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요. 내가 찍은 사진은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생각은 멀리 날려버립시다. 어쩌면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의 작품 중에 아무 것도 아닌 사진이 훨씬 많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