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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tRain Jun 23. 2015

현실이 비현실적인 공간이 될 때

사진을 찍으면 항상 따라다니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누구에게나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장비병입니다. 지금 내가 쓰는 장비에 딱히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카메라나 렌즈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장비병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치유됩니다. 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거나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서 사게 되거나.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 장비병이 도지는 빈도수도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두 번째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두 번째는 바로 사진을 촬영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첫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모든 사물이 피사체로 적합해보이죠. 찍는 족족 다 작품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셔터 박스를 갈아야할 정도로 셔터를 아끼지 않지요. 그러다가 어느날 부턴가 슬슬 열정이 식기 시작합니다. 뭔가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든가 특별한 모델이 있어야 카메라를 들게 되는 겁니다. 남들 다 가는 촬영지는 벌써 두어번씩은 돌았고 남들 찍는 촬영법으로 찍을만큼 찍었을 때, 이제 나도 남들 부럽지 않은 사진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결국에는 장비병조차도 찾아오지 않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르기도 하죠. 심지어 아끼던 장비를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되찾는 일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심각한 사진 포기 증세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사진을 즐겁게 찍을 수 있지요. 첫 카메라를 샀을 때 느낌을 잊지 않고 있다면,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기억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도록 합니다. 매번 새로운 공간, 그럴싸한 풍경을 찾아다니는 일은 취미로 사진을 즐기는 사람에게 가혹한 일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상태가 됩니다. 답은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죠.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의 어떤 순간이라도 카메라에 담는 겁니다. 작은 똑딱이 카메라라도 상관없습니다. 가방 한켠에 카메라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고 언제 어디서든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지요. 평소에 사소한 것이라 여겼던 대상을, 일상의 더께에 묻혀 밋밋하게만 보였던 풍경을 파인더로 다시 바라보세요.


다시, 첫 카메라를 손에 들었던 날로 가봅시다. 당신은 천장에서 빛나던 형광등을 향해서도 셔터를 눌렀고, 동네 골목길 귀퉁이에 자라난 잡초에게도 관심을 보였으며, 출근길을 비추던 태양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그때 그 사물과 풍경을 향해 당신의 실력을 다시 보여줄 때가 온 게 아닐까요? 아, 그전에 우선 먼지 낀 카메라에 브로워를 불어줘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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