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iss Batis 2/25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하는 카메라가 있다. 바로 미러리스다. 특히 소니의 약진은 괄목할 만하다. α7 시리즈는 2세대를 맞이하면서 기계적 완성도가 몰라보게 높아졌으며 전용 렌즈군도 늘어나 사진가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α7 시리즈는 타사 카메라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강단이 떨어지는 듯한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카메라 자체의 만듦새가 좋아졌을지 몰라도 타사에 비해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짧은 E마운트의 역사가 카메라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헤리티지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소니는 칼 자이스(Carl Zeiss) 인증 렌즈로 고급 렌즈군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칼 자이스 인증만으로 타사와의 간극을 메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최근 ‘어딘지 모르게’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를 단 칼에 자를 구원 투수가 나타났다. 바로 칼 자이스가 직접 만드는 바티스 렌즈다.
근래 칼 자이스의 행보는 에너지가 넘친다. 현대적인 광학 렌즈 설계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권위에 기대기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렌즈를 개발하는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 서드파티 브랜드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개성 넘치는 렌즈군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호평받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13년에 선보였던 오투스 시리즈다. 오투스 렌즈는 2015년 현재까지도 35mm 풀프레임용 렌즈의 화질을 이야기할 때 비교대상으로 빠지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해상력과 선예도를 보여준다.
오투스 이후 정식 발매 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칼 자이스 렌즈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 바티스 시리즈다. 지난 6월 유투브를 통해 공개된 티저 영상은 각종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슬비가 내리는 숲과 계곡을 걷는 사진가의 손에, 헬리콥터를 탄 상태로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소니의 α7 시리즈였기 때문. 그 누구도 칼 자이스가 직접 나서서 소니 α7 시리즈 전용 AF 렌즈를 만들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바티스 시리즈는 현재 25mm F2.0, 85mm F1.8 두 종류로 발매되었으며 향후 새로운 화각이 추가될 예정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선 발매된 두 렌즈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바티스라는 시리즈명은 같지만 달려가는 목적지 자체가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초점거리나 최대 개방 조리개 값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의 느낌이 눈에 띄게 상이하다.
우선 바티스 1.8/85는 최신 고화소 센서에 맞춘 해상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 수차를 일부러 남겨 클래식한 뒷흐림을 보여준다. 즉 고화소 카메라의 장점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기초공사를 탄탄하게 한 뒤 최대한 개성적인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도록 설계한 렌즈인 것이다. 초점거리 특성상 인물 사진을 찍을 목적으로 바티스 1.8/85을 구매한 사진가를 배려한 설계로 보인다. 망원 렌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손떨림을 억제하기 위해 렌즈 자체에 손떨림 보정장치를 탑재한 것도 특징이다.
그에 반해 바티스 2.0/25는 빈틈없이 꼼꼼한 성격을 보여주는 렌즈다. 광각렌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왜곡이나 비네팅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으며 조리개 최대 개방에서도 주변부 화질이 매우 우수한 편이다. 소니에서 가장 최근에 발표한 α7RⅡ의 4240만 초고화소 센서와의 조합에서도 바티스 2.0/25은 전혀 모자람이 없는 해상력을 자랑한다. 이와 같은 만족스러운 결과는 바티스 2.0/25의 설계와 연관이 깊다. 칼 자이스가 바티스 시리즈 이전에 발표한 록시아 2/35의 경우 플랜지 백이 짧은 미러리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비오곤 설계로 완성됐다. 결과적으로 소형화·경량화에 바짝 다가섰지만 화질에 있어서는 약간의 물음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티스 2.0/25는 다르다. 작고 가볍게 만드는 것보다 완성도 높은 광학 성능에 무게추를 올렸다.
바티스 2.0/25는 대표적인 레트로포커스 방식인 디스타곤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센서와 렌즈 사이에 미러를 두고 있는 DSLR에 사용되는 광각렌즈에 적용하는 설계 방식이다. 칼 자이스가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디지털 센서가 충분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각도, 즉 입사각 문제 때문이다. 렌즈 후면이 센서면에 가까워져 화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비오곤 설계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디스타곤 방식을 택한 것. 사용자에 따라서는 작고 가볍다는 미러리스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α7 시리즈에 마운트 해보면 심각할 정도로 크고 무겁다는 인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화질에 집중한 렌즈답게 구성 렌즈도 화려하다. 8군 10매 구성 중 총 7매를 비구면 렌즈와 같은 특수 렌즈로 제작했다. 또한 플로팅 설계를 적용해 전체 초점 구간에서 일정한 화질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MF 촬영 시 응답 속도도 빠르다.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초점링을 돌리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정확한 초점을 요하는 조리개 최대개방 근거리 촬영 시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바티스 1.8/85와 마찬가지로 OLED 거리계 창을 적용한 것도 이 렌즈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과거 MF 렌즈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피사체와의 거리 및 초점이 맞는 범위를 예측할 수 있다. 초점이 맞으면 가장 큰 숫자로 피사체와의 거리를 알려주고 액정 화면 좌우 혹은 상하로 초점이 맞는 범위를 알려준다. OLED 화면에 텍스트가 빛나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에서도 손쉽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비슷한 화각의 타사 렌즈와 비교했을 때 조리개 최대 개방 값은 평균 정도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최대개방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화질이다. 중앙부 화질은 최대 개방에서도 훌륭하고 주변부는 한 스톱만 조리개를 조여도 월등히 화질이 좋아진다. F8 정도로 조이면 모든 화면에서 고르게 최고의 화질을 기대할 수 있다.
바티스 2.0/25의 최단 촬영거리는 20cm다. 실제로 체감하는 워킹 디스턴스는 이보다 훨씬 가까워 다양한 위치에서 피사체를 담아낼 수 있다. 카페나 음식점 같은 실내에서 가까이에 있는 음식을 손쉽게 촬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근거리에 있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중첩적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담으면 광각사진에 심도 표현을 더할 수도 있다.
25mm라는 초점거리는 사용하기에 따라 풍경 사진은 물론 인물 사진, 건축 사진까지 담아낼 수 있는 팔방미인 화각이다. 특히 바티스 2.0/25는 조리개 개방에 따른 화질 저하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심도를 더한 인물 사진이나 정물 사진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광각렌즈에서 흔히 드러나는 공간왜곡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아 건물 사진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바티스 2.0/25는 α7 시리즈의 잠재된 가능성을 제대로 발현시킨 최초의 서드파티 렌즈다. 심지어 소니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을 섬세하게 찾아내 사용자의 만족도를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미하엘 폴만 박사는 칼 자이스 공식 블로그를 통해 향후 다른 초점거리의 바티스 렌즈가 추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바티스는 또 얼마나 개성 넘치는 세상을 보여줄까. 칼 자이스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제품 사양
초점 거리 25mm
조리개 범위 f/2 – f/22
초점 범위 0.2m – ∞
렌즈 구성 8군 10매 디스타곤 설계
필터 사이즈 67mm
길이 92mm
무게 335g
카메라 마운트 E-M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