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발 붙이고 사는 수많은 사내의 취미 중에 ‘사진’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수집’하는 부류의 사내도 많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보다 카메라의 외형에 감탄하고 조작감에 감격합니다. 기계적 완성도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가 혹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좋고 나쁨을 분류합니다. 그런 취향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 합니다. 카메라라는 기계는 정교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실용성까지 획득해야 하는, 그야말로 예술품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두 가지를 뽑겠습니다. 바로 카메라와 시계입니다. 티끌 만한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무브먼트는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뭇 사내의 가슴도 뛰게 만듭니다. 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분의 일초라는 정밀한 셔터스피드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각양각색의 셔터 소리는 듣는 이에 따라 음악처럼 감미롭게 들리기도 합니다. 첫 월급을 털어 샀던 카메라를 손에 쥐고 천장을 향해 공셔터를 눌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가진 사람 중 상당수는 사진을 찍는 자체의 즐거움 추구하는 동시에 조작하는 즐거움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즐거움이 디지털 시대가 되고 나서 확연히 줄었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필름을 와인딩 한 후 사진을 찍는 순간까지 손과 감각이 느끼는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된 이후로 카메라는 기계적,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죠. 사진만 찍을 수 있으면 그걸로 OK가 된 겁니다.
신제품 발표 사이클이 빨라졌고 기종이 더욱 세분화되면서 한 해에 쏟아지는 신제품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예술품이라는 잣대를 들이밀기 힘들게 됐고 공산품에 가까운 물건이 됐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독일에서 만들어진다는 라이카 M 시리즈 정도가 그나마 카메라 본연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슬프게도 일반인은 꿈도 꾸기 힘든 가격입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여러 브랜드가 단순 전자제품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글로벌 비전을 발표한 시그마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만듦새를 더욱 탄탄하게 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렌즈 마운트 교체 서비스까지 진행해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죠. 최근 탐론도 확연히 달라진 디자인으로 사진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제 양적 팽창은 멈출 때도 됐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안정기로 접어들었으니 좀 더 카메라다운 카메라, 렌즈다운 렌즈가 만들어질 때도 됐습니다. 다음 세대 장비가 더 기다려지는 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