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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Oct 25. 2020

여행책의 서문


여행책의 서문


스페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생전에 자신과 닮은 세 가지를 남겨야 하는데 첫 번째는 나와 닮은 집(방), 두 번째는 나와 닮은 자식, 그리고 마지막은 나와 닮은 책입니다. 정확하게는 사람이 아니라 남자이지만 남자, 여자 구분할 것 없이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당시에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너무 쉽다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 번째 말을 하기 위해서 있는 속담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책 한 권은 꼭 써봐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 보니 쉬운 게 하나 없는 잔인한 말이 었지만요. 처음에는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어떤 책을 쓸까?'로 시작했습니다. 행복했던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선명하게 나를 투영시킨 시간 덕분에 현재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로 고민이 바뀌었습니다.


감정이 동하는 물건을 소중히 하는 편입니다. 책 역시 마음에 들면 우선 소장하고 보는 거죠. 좋아하는 구절은 질릴 때까지 읽고 듣습니다. 휴대전화기를 소지한 시점부터는 길든 짧든 그 순간의 감정을 단어만이라도 나열해 놓습니다. 기록해 두지 않는 다면 닿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 잃어버리기 때문이죠. 전부를 기억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지만, 일부도 없다면 존재의 의심까지 들기에 나름대로 붙잡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 카메라였고 개인 블로그였습니다.


여행이란 세 가지 요소가 허락돼야 갈 수 있다고 부모님은 자주 말하셨습니다. 건강과 돈 그리고 시간, 하나 더 개인적으로 추가하자면 두려움과 설렘을 즐길 줄 아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이 없다면 어디를 대려다 놓더라도 부정적인 부분만을 찾을게 뻔합니다.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저는 군대를 전역하고 집 근처 마트에서 9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부족하지 않은 여행경비가 생겼고, 잘 만들어주신 건강한 신체는 물론, 복학까지 두 달 남짓한 넉넉한 시간도 허락되었었죠.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저는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님에도 두려웠고, 그 돈으로 좋아하는 옷이나 다른 전자제품을 산다면 내 행복은 더 클 거라 단정 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대분 비슷한 고민을 하며 명설이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여행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고 가지고 있어 봤자 음주와 한시적 소모품에 투자할 바에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부모님께서 권유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행을 망설이는 20대들에게 ' 무조건 떠나라' 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 한 번쯤은 가 볼 만하다' 고 말하고 싶네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이어집니다.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싣고 서울의 파노라마를 내 눈으로 담은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많은 생각들을 하기에 충분했고 기분 좋은 폭격은 이미 저를 여행의 포로로 만들었죠.


그 이후 특별한 여행 버릇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또는 제가 의미를 부여한 비밀 장소에서 만족할 만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가 오는 겁니다. 그 비밀 장소는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고 언어를 관통한 저만의 감정이기에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다른 목적은 뒤로 밀어 두고 그저 오감에만 집중하는 거죠. 일종에 명상과도 비슷합니다. 그리스의 코린트 앞바다의 여명, 광저우 아비규환 속 정오의 화 동역, 교토 고즈넉함이 자리 잡은 2월의 청수사, 아버지의 고향 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영동 비봉산 중턱에서 바라본 시골 풍경 등이 모두 그런 장소입니다. 해마다 쌓인 기록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키보드에 손을 올려 봅니다.


여행은 인생과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실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닮아 있는 점들 중 하나를 콕 찍어 보자면 '예외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많은 정보가 있다 하여도 야속하게 멀어지기만 하죠. 여행에서도 그 예외성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고난을 줍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 함은 나의 발을 움직이는 원동력과도 같죠.


괴테는 말했습니다. 여행은 도착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행하기 위함이라고 Travel의 어원은 Travil입니다. 고통과 고난이라는 뜻이죠. 지금에 이르러서야 교통이 발달하여 아무리 먼 곳이라도 하루면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집 떠나는 순간 고생의 시작이었죠. 매 순간 여행을 했을 적에도 예외성 덕분에 고생 끝에 반드시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깊은 한 숨을 쉬다가도 금세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잊지 못할 순간들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결과는 성장의 걸림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 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완벽한 정보로 독자에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는 도우미 글이 있고 멋진 사진과 공감 가는 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간지럽히는 깃털 고문 같은 글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에 치중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모쪼록 재미있게 봐주신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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