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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Nov 23. 2020

십 년 전 오늘

연평도


십 년 전 오늘


십 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에 있었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화천지역으로 최전방에 차량과 물자를 지원해 주는 부대였다. 군생활에 8할은 gop 막사에 차량 한 대를 가지고 파견을 간다. 나는 갓 일병을 달았던 터였다. 처음부터 최전방에 파견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운전 스킬과 차량 정비 여러 가지 숙달하고 대부분 일병 3호봉 안에는 최전방으로 파견을 간다.


전방에 교대를 기다리는 대대로 파견을 돌며 부대 사람들과 간부들의 안면을 익히기도 하고 한다. 당시 나는 휴가 복귀 하자마자 전방에 모 부대로 파견을 갔다. 수송대와는 멀지 않아 잔뜩 군기가 잡혀 있었다.


아침 6시 기상나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제법 습관이 들어 5분 전 저절로 눈과 몸이 깨어 난다. 신속하게 환복하고 주변 정리를 마친 후 연병장으로 튀어 나간다. 저 멀리 산둥성을 향해 힘찬 고함도 질러 본다. 점호를 마치고 미비된 것들을 정리 후 밥을 먹고 운행 대기를 기다린다. 내가 파견 간 부대는 5분 대기 부대였다. 일명 오대 기라고 불리는 곳이다. 전쟁이 나면 5분 안에 정해진 위치와 역할로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중요한 부대다. 일과가 시작되자 아저씨들은 어디론가 다 나갔다. 생활관에 소대장 한 명이 들어왔다. 높게 잡아도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임에 틀림이 없다. 빙결된 도로가 있으니 점심 먹고 염화칼슘을 뿌리러 가자고 하셨다.


쉬는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순식간에 오전이 흘렀고 점심을 먹었다. 그날 점심 메뉴는 밥, 부대찌개, 김치, 소시지 야채, 멸치였다. 입이 저렴해서 나는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다. 근대 그날은 왠지 맛이 없었다. 오후 2시가 20분쯤 소대장이 들어와 빙결 지역으로 가자 하였다. 차에 올라타 빙결 지역으로 이동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대장은 시퍼런 산송장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바 좇댔다." 순간 당황해서 무슨 일 있냐고 여쭤 봤다. 소대장은 소리를 지르며 부대로 빨리 복귀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부대로 돌아왔다. 평소와는 다른 부대 분위기에 나는 몸으로 뭔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주차를 끝내고 소대장은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나는 애써 뭔가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천히 차를 살피고 내 관물대로 향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생활관과는 다르게 행정반은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전화벨은 수시로 계속 울렸다. 여기저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생활관에 들어서자 몇몇 아저씨들을 제외한 부대 사람들은 이미 완전군장 상태로 공포감에 잠식된 표정으로 티브이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뭔가 이건 꿈일 거야 하는 그런 표정으로.


연평도 포격 도발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민가는 폭발하고 찍고 있던 cctv가 날아갔다. 검붉은 연기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다. 계속해서 포격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처절한지 알 수 있었다. 나도 한 동안 그 자리에 멈춰 텅 빈 껍데기처럼 서 있었다. 이게 뭐지? 훈련 영상을 보여 주는 건가? 전쟁 시뮬레이션인가? 오만 간지 생각이 나를 동상으로 만들었다. 나를 움직인 건 결국 가족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은 실제 상황이고 부모님도 보고 계심이 틀림이 없다. 천안함 사건 때 입대를 하였기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은 그 어느 때 보다 깊었다. 군대를 어떻게든 미룰 수 있으면 미루라 눈물로 호소하셨다. 미룬다면 어정쩡한 상태로 복학을 기다려야 했기에 별생각 없이 입대했건만 그 당시는 조금 후회스러웠다. 부끄러운 모습 보이기 싫어 신분에 맞게 군 지시에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완전군장을 마치고 전투태세를 완료한 뒤 숨죽이는 대기는 계속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부모님에게 전화를 빨리 드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후로 세 달간 군장을 착용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내가 있던 곳은 북쪽으로 5킬로미터만 가도 북한에 도착하는 위치에 있었다.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군장을 착용한 생활을 제외하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반복이 무서운 건지 무감각해지는 인간이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망각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많은 동물들은 색을 변형시켜 은신을 하기도 하고, 단단한 등껍질 속으로 숨기도 한다. 사람에게 망각이란 스스로를 지키기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매 순간을 기억하는 것만큼 잔혹한 인생도 없다. 나 또한 그날의 참상을 군부대 안에서 간접경험했음에도 살아가다 보니 오늘이 아니고서야 생각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또다시 번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정일, 정찬호, 손병문, 전지호 해병님 포격 속에서 아이들과 노인들, 주민들을 반공호에 대피시키기 위해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재원 해병님 전우를 위해 불길을 뚫고 구급차를 데려와 긴박했던 생명을 살려 주심에 감사합니다. 조수원 해병님 큰 부상에도 전우를 먼저 구해 달라며 호소한 그 마음에 감복합니다. 이충민 해병님 당신의 기지로 불바다로 변한 연평도를 더 빨리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준영 해병님 자신의 철모가 불타 녹는 와중에도 대응사격을 할 수 있었던 당신에 용기에 감사합니다. 고 서정우, 문광욱 해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두 분에게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외에 열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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