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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Nov 30. 2020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앞으로 더

브런치 라디오 공모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앞으로 더


나이가 드니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자연 그중에서도 산을 찾게 된다. 임용을 준비하던 종석이가 3년을 내리 낙방하고 전화를 걸어 내게 건넨 첫마디가 산가자였다. 평생 등산이라고는 해본 적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놈의 그 비장한 한마디에는 친구가 지금 어디까지 내몰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길로 고등학교 추억을 생각하며 제주행 티켓을 끊고 한라산 등반을 했다.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해진 종석이는 등반 내내 공부가 등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탄식하며 황야의 마녀가 황궁을 오를 때처럼 한발 한발 내디뎠다. 딱 죽기 일보직전에 정상에 오른 종석이의 얼굴은 다 죽어 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개운한 구석이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걸려온 합격 전화를 시작으로 평택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스트레스의 바다에서 해엄  것과 같다. 물고기가  없이는   없고 선택하여 물고기로 태어난  아니듯 우리들 에게도 사회란 그런 존재다. 괜히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불가피한 그놈을 빨리 아주 효과적으로 추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히어로의 능력보다 탐나는 능력이 아닐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누구는 잠을 청하고, 게임을 하고, 운동을 하고, 뒷담을 하고, 여행을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한다. 스스로 무력한 스트레스의 파도가 들이닥치면 나는 그때 종석이가 했던 비장했던  마디가 종종 떠오른다.


하고 싶은 걸 찾던 20대의 열정에 번 아웃당해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 싫은 게 아니라 정말 어떠한 욕구가 사라진 기분이다. 좋아 보이 던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고 가지고 싶었던 것들도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지독한 코로나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정신없이 채워 나갔던 시기만큼 비워 내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빼 다 보니 ‘글쓰기’는 확실히 남아 요즘은 브런치에 접속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나는 푸른 숲 작가님의 ‘캠핑의 위로’라는 브런치 북을 발견했다.


원체 산만해서 오래 앉아 있지를 못하는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가 가족들과 다녔던 일 연간의 휴양림 캠핑을 일기처럼 써 놓은 브런치 북이다. 뭐든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려는 버릇 탓에 막연하게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진 캠핑이 신선하고 케쥬얼 하게 다가왔다. 캠핑과 캠핑지의 대한 정보만 해도 빅 이득인 부분인데 삶의 단상들은 나에게 당장 필요한 말들도 있었다. 계절 별로 쳅터가 나누어져 있어 시기마다 다녀온 사진은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도 좋았다.


 아마 비슷하게 지쳐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자연이 주는 교훈은 내가 떠안고 있는 어떤 것들 쯤이야 별거 아니라 말해주는 것만 같다. 도시에서 멀어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언제나 두 팔 벌려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어머니 같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생각일까. 다 읽고 나니 오랜만에 뜨끈한 집밥 한 그릇 먹은 듯 든든하다.


자연이 주는 해독작용의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나는 왜 실천을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매년 초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적어 놓는 ‘캠핑하기’는 연말에 항상 체크당하지 못한 체 몇 년이 흘렀다.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미리 구매 해 두었다. 항상 첫 페이지에 빼곡히 써놓은 버킷들을 뒤로하고 간단하게 몇 가지만 써 놓았다.


운동하기, 책 읽기, 그리고 캠핑하기


캠핑의 위로 - https://brunch.co.kr/brunchbook/gocampig - 푸른숲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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