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상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진 Jan 08. 2017

끊어진 끈을 붙잡는 것은 소년이 무스비는 소녀가

#7 너의 이름은 리뷰


스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소녀와 소년이 서로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소 식상할 수 있는 난잡한 설정의 끈들을 아름답고 신카이 마코토 답게 무스비한 영화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이 뒤 바뀌어 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영화의 초반의 도움닫기를 확실히 맡아 주고, 시공간을 초월해야 하는 불가능한 운명은 우리의 감정선을 빛나고 있는 지평선 아래 소복한 구름 위에 있게 하며,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106분을 지나면 조금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영화 -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뒤를 이을 차세대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이다. 일본에서 1600만이라는 일본 안에서도 기록적인 성적을 내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래에 처음 10위권 안에 들어오는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차세대 감독으로 불리는 것은 말뿐만이 아니다. 언어의 정원과 초속 5센티미터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감독으로 다른 작품에서도 이 같이 비슷한 설정이 많다. 별을 쫓는 아이는 지상인 소녀와 지하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별의 목소리는 만날 수 없는 시공간을 핸드폰이라는 매개물로 연결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이번 너의 이름은은 그동안에 내공과 뭐든 혼자 해내려는 천재가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최고의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하모니가 아닌가 싶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도시에 사는 소년은 꿈속에서 서로 뒤 바뀌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들에서 서로에게 지켜야 할 약속들을 하나씩 아날로그식으로 그들만에 방법으로 지켜 나간다. 소녀는 시골마을 신사를 감당하는 집안에 딸로 데릴사위로 들어온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으면서 죽은 이유가 시골마을의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마을 발전에 힘쓰는 정치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초반 소녀에게 엄격한 아버지지만 단번에 소녀 안에 소년이 있는 것을 알아볼 정도로 소녀를 사랑한다. 그 사랑은 기적이란 이름으로 마을을 지켜 내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경험을 하는 소년소녀는 단 번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사실 시공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타임 패러독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도 물건(매듭)이 시공간을 포탈하는 판타지에서 같은 시간에 있었던 일을 개연성 있게 맞춘다는 건 무수한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야 하는 만큼 극난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분명 존재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고 싶지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신카이 마코토의 빛망울과 실사를 더욱더 아름다운 실사로 만들어 내는 그의 능력 일본인들 안에 있는 소소한 습관들이 배경에 녹아 있는 어느 하나 소홀히 볼 수 없는 치밀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중반의 시작은 혜성이 떨어진 후부터이다. 소녀와 더 이상 뒤바뀌는 일이 없어지고 상사병에 점점 더 가슴이 매어 오는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모래알 같은 기억들이 더 이상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있는 힘껏 기억을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기억하기에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바로 기록이다. 소년은 그림이라는 기록으로 소녀의 시골마을을 기억해내 기록한다. 지푸라기라도 잡히는 심정으로 떠난 소년은 소녀를 조금씩 잃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마을은 3년 전에 이미 유성으로 거의 모든 마을 사람이 죽어있는 처참한 관경만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사건을 파 해치며 미츠하가 이미 죽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은 마지막 기억의 파편 쿠치카미사케를 떠올려 그곳에 가면 분명 무언가를 알 수 있다는 마지막 확신으로 소년은 무스비를 붙잡기 위해 또는 무스비를 극복하기 위해 걷고 또 걸으며 포기하지 않는다. 신사를 가기 전에는 죽음의 강을 넘어야 하는데 그 강을 넘으면 죽어 있는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을 한번 독백하며 죽음 따위가 먼들 하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강을 건너 신사에 다다른다. 3년 전 뒤바뀐 자기가 놓은 쿠치카미사케를 마시며 기적이 일어난다.

다시 한번 소녀와 몸이 뒤바뀐다. 그것도 혜성이 오기 하루 전날에 소년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어쩐지 할 수가 없다. 혼자서 '역시 미츠하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독백하며 한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스비는 소녀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영화 초반부터 계속해서 나왔던 무스비를 이어가는 가문의 딸로 태어난 소녀는 무스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 소년은 무스비를 붙잡고 붙들 수는 있지만 끊어진 무스비를 다시 무스비 하지는 못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매듭을 보면 알 수 있든 소년은 매듭을 한 번도 묵지 못한다. 매듭이 아니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으로 풀리지 않게 클립 같은 것으로 고정하며 풀리려는 매듭을 어떻게 해서는 붙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반면 소녀는 머리를 몇 번을 땋아 올리고 그 위에 매듭으로 다시 매듭을 지을 정도로 무스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마지막 관문인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소녀 본인이 해야만 하고 본인만이 할 수 없는 일로 기적을 일어 낸다.

영화 초반에 언어의 정원 선생님 성우(하나자와 카나)가 실제로 선생님으로 등장해 황혼의 시간에 대해서 의미심장하게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황혼의 시간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기적의 시간이라며 마을의 유래를 알려주는 수업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건 이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초반 작업이었다.


황천의 강을 건넌 소년은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한 소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황혼의 시간에 서로를 애타게 부르짖던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3년 후의 소년과 3년 전의 소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나게 된다. 마치 현재의 소년과 어재의 소녀가 만나 매듭을 건네준 것처럼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하기로 하고 소년이 소녀의 손에 이름을 쓰고 소녀가 소년에 손에 이름을 쓰는 순간 관객들을 농락이라도 하는 듯 마코토의 장난은 시작된다. 끝이난 황혼의 시간은 우리를 더욱 애타고 가슴 아프게 한다. 보는 내내 마코토의 작품들이 해피앤딩으로 끝내는 꼴을 본 적이 없기에 속으로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황혼의 시간에서 소년은 소녀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소녀에게 임무를 준다 그 임무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한 그들에게는 대가가 남아 보인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에도 기억이라는 파편은 먼지가 되어 떠내려간다. 결국 그들은 감정만이 남은 체 이 감정의 출처는 도저히 알 수 없이 눈물만을 흘리며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후반부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불길하기 그지없이 또 새드엔딩을 생각하고 있는데 5년 뒤의 친구들의 소소한 모습과 취업을 준비하는 소년이 카페에서 소녀의 친구가 연인이 되어 있는 장면을 보며 이번에는 다르구나를 직감했다. 마코토의 장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겨울비가 오는 거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느끼지만 보지는 못하고 지나간다. 항상 그러했든 소년이 다가가고 이어가는 건 소녀의 몫이다. 배고픔을 계속 유지한 체 참다 참다 먹는 밥이 맛있듯이 마코토는 만날 듯 말 듯 장난의 저울 질 끝에 분홍색의 봄바람이 살랑이는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만들어 낸다. 영화의 제목을 서로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며 재미있던 것을 두서없이 생각나는 데로 작성하여 다소 난잡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소년소녀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자그마한 사회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시골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부정청탁의 모습도 보이고 아버지가 정치인 건설업을 하고 있는 회사와의 회동 모습으로 어떤 집단의 대한 상처를 국민들에게 지적하고 상기시켜주는 내용


동일본 대지진으로 살아갈 힘을 잃어갔던 꺼져갔던 불씨들에게 힘을 주는 기적 같은 내용

유성이 떨어져 마을이 초토화되는 모습은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케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내용으로 실제로 마코토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고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동일본 대지진은 동일본뿐만 아니라 모든 일본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도 같은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많은 치유를 받았다고 했다.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아티스트가 사회 현상에 무관심하다면 그것만큼 쓸모없는 것이 없다. 신카이 마코토는 아티스트다.


신카이 마코토의 처녀작 혼자서 모든 연출, 작화, ost까지 다 다룬 천재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3개 있는데 그 3개를 본다면 이 영화를 보는데 얼마나 일관성 있는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오늘도 그녀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그 무거운 철문을 연다.
문 너머에 있는 불완전한 세계
그런 세계를 있는 힘껏 사랑하려 노력하는 그녀
난 그런 그녀가 정말 좋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고양이의 말

문을 여는 건 열려고 하는 자만할 수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이번 너의 이름은 에서도

신과 신사이를 로우 앵글과 하이앵들로 문을 열고 닫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현실에 숨으려 하지 않고 발버둥 치고 안간힘 쓰려는 나의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가고
그녀는 그녀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가 교차하는 이 순간이
난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고양이 주제에 졸라 멋있는 말만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교차하는 이 시간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신카이 마코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유한한 굴뢰속에 서로 교집합이 되는

그 순간이 기적이고 기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모든 걸 다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억하는 것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들뿐이다.
먼 것은 희미하게 보이고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보인다.
추억도 마찬가지다.


잊어지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다. 모든 것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내 감정도, 매일 갱신했고 앞으로도 해갈 행복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련의 사건들

어느 순간 희미하게 보이고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물건, 오감, 사람을 통해 다시 한번 감정을 느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일 년 365일 중 과연 평생 기억될 날들은 며칠이나 될까 고작해야 1000개도 가지고 갈 수 없을 것이다.



JAOLHOUSE



Authorling  |  JaoL




매거진의 이전글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라라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