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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09. 2016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라라랜드

#6 라라랜드 리뷰


본 리뷰는 스포성을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을 위해-


갓 나온 따끈따끈한 베이글만큼이나 입안에 가득 매운 사랑이야기와 달콤하지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불편하게 만드는 바닐라라떼같은 현실 이야기를 함께 노래하는 영화.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엠마 스톤, 작은 눈빛과 고개의 떨림까지도 뭉클하게 만드는 고슬링, 이 모든 것으로 환상적인 마법세계 라라랜드를 창조한 데미언 채즐


요즘 시대에 신선함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환상적인 원테이크 인트로를 보는 순간 낭만의 보랏빛 세계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원샷원킬로 끝난 이 신은 3개월의 사전 연습과 완벽에 가까운 그들의 호흡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의상의 컬러는 영화를 확실히 우리에게 전달한다. 남자는 전체적으로 모노톤의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고 여자들은 대부분 복고풍의 원색을 입고 있다. 이 둘은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장면처럼 서로에게 균형을 맞춰 준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보면 뻔하고 유치한 사랑 영화일 수도 있다. 심층적으로 보면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북돋아 주는 영화다. 옛것(인물)을 사랑하고 클래식한 재즈를 지키기를 원하지만 현실에 벽 앞에 서있는 남자와 배우를 꿈꾸지만 잦은 오디션 실패로 자존감이 바닥나 자주 주저앉아버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꿈을 이루게 하지만 꿈을 이룬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여인이 아닌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남이 되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지막 남자의 연주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


첫 만남부터 삐그덕 되는 로맨스 코미디의 주인공들처럼 그들도 처음부터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었다. 여자는 주저하는 성격이다. 꿈을 가지고 있지만 잦은 오디션 실패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극 중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길이 생겼으니 다른 것은 생각지 말고 일단 가라고 빵빵거리는 은인이다. 처음 룸메이트들과의 멋진 공연은 한마디로 표현해 준다. '나보다 멋진 나를 꾸미자' 이 말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욱 빛날 수 있게 노력하고 전진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극 중 가사처럼 나를 알아줄 곳 나를 찾아줄 곳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는 사람인 남자를 우연치 않은 재즈바에서 만나게 된다. 남자는 여자의 연기를 알아봐 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주는 사람이다. 남자는 망설이고 주저하는 여자에게 처음 등장할 때처럼 신호탄을 울려주는 존재다.


남자는 확고한 자기만의 길을 알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을 받을 정도의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알지 못한다. 정체성의 문제다. 현실과 꿈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서있는 남자는 현실의 벽 앞에서 꿈만 먹고살 수는 없음을 여자와 함께 하면서 알게 되고 대학 친구의 권유로 투어를 가게 된다. 공연을 찾아온 여자를 바라보며 남자는 모두를 불타오르게 할 수는 있지만 정작 여자를 불타오르게 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조금씩 꿈 쪽으로 돌아서고 한 차례 큰  다툼 뒤에 완전히 돌아선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계속해서 여자는 말해준다. 조지 마이클이라던지 나중에 오픈하게 될 클럽명을 셉스라던지 이미 남자 생각해둔 이름이 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서 있어야 할 곳을 상기시켜 준다. 그렇게 남자는 주저앉아있는 여자에게 출발탄이 되어주고 여자는 원치 않는 곳에 있는 남자에게 확실한 표지판이 되어준다.

결국 여자는 파리로 가는 오디션을 보게 되고 천문대 앞의 그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합격을 예상한 남자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고 말한다. 여자는 그 말이 가슴아프게도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안도감을 준다. 결국 둘은 꿈을 좇아 둘이 아닌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의 흥망성쇠가 모두 담겨있는 LA의 사계절을 지나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구름 한 점 없어 맑은 보랏빛의 낭만의 도시는 상막하기까지 한 곳으로 변해있다. 쓸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대로 맞아떨어지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 여자는 꿈을 이루고 결혼을 하여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남자도 꿈을 이루고 매일같이 재즈를 하며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오는 성공한 클럽의 사장이 되어있다. 둘은 꿈은 이루었지만 둘의 관계는 이루지 못했다.


감독은 사랑과 꿈 사이에서 한없이 저울질 하지만 꿈을 위해 사랑(관계)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정법처럼 남자의 연주가 시작되며 그들이 해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유는 꿈을 꾸다 보면 선택의 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 선택이 언제나 옳은 길로 인도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답은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의 사랑도 꿈이라면 꿈을 꾸는 중에도 꿈을 좇아야 하지 않을까? 꿈을 모두 이룰 수도 있지만 모두 다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다는 감독의 영화는 꿈꾸는 바보들에게 실제로 많은 위로를 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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