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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Jun 29. 2017

하나와 앨리스

#11 영화 하나와 앨리스 리뷰

다소 스포가 있습니다.


두 소녀가 걸어간다. 어릴 때 자주 하고 놀았던 기차놀이를 하듯 두 소녀는 걸어간다. 앞선 소녀는 한발 한발 물방울이 튀듯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무신경하고 경쾌하게 걸어간다. 뒤쫓아 오는 소녀는 어딘지 어리숙하고 조금은 불안한 모습에 조심스럽게 앞선 소녀가 걸어간 자리를 살피며 힘겹게 뒤 따라간다. 마치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이. 하지만 호기심 가득하게 쫓아가고 있는 쪽은 하나이고 앞서 가고 있는 쪽은 앨리스다. 대사 한마디 없이 함께 걷는 장면으로 하나와 앨리스가 어떤 아이일지 상상시켜 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출처 : 하나와 앨리스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온 그녀는 가정이란 보살핌 아래 그다지 힘든 일을 경험해 본 적 없는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15살 소녀다. 실제로 하나의 집은 꽃가게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꽃이 만발해 있다. 하나에게 있어 유일한 고난이라면 가정을 나오는 일이다. 타인이 만연한 사회에 나오는 첫걸음마를 도와주는 사람은 밖에서는 항상 밝고 빛나는 소녀 앨리스였다. 앨리스를 따라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새롭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그녀기에 더욱더 과감해질 수 있고 무모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야모토 선배를 미행하던 중 사고로 쓰러진 선배에게 대담하고 귀여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시작된 사기 연애극은 두 사춘기 소녀의 성장도 시작됨을 알린다.

출처 : 하나와 앨리스


새로움에 익숙하고 '처음'이 쉬운 앨리스는 그만큼 모든 일에 무신경하고 무관심하다. 모델 에이젼시에 스카우트 제의를 쉽게 받아들이고 일을 주면 겁도 없이 혼자 잘도 돌아다닌다. 그다지 열의는 없고 황망하기 그지없는 이런 모든 행동들을 계속해 나간다. 황당무계한 하나의 연애극에도 반감 없이 재미있게 동참한다. 그녀에게 있어 오래 배운 발레또 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그만할 수 있고 오디션이 있으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다. 사실 앨리스는 15살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가정사가 있다. 하나 또한 크게 관심은 없고 하나도 언젠간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와 다툰 후 홀로 간 카페에서 엄마와 엄마의 연인으로 보이는 낯선 아저씨를 보게 되고 엄마는 딸을 모르는 척하라며 자리를 뜨라는 제스처를 준다. 앨리스에 집은 오합지졸에 엉망진창이다. 하나의 집이 하나를 대변하듯 앨리스의 집 또한 앨리스를 대변한다.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와 같이 사는 앨리스는 가끔 아빠를 만나는 일상 속에서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버리기도 쉽다는 사실을 가슴속 깊이 새겨 항상 혼자가 될 준비를 하며 자기방어를 한다. 마치 그녀가 만든 오니기리처럼.


항상 장난스럽고 솔직하지 못한 그녀는 해어지는 아버지에게 굳이 중국말로 전철 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랑한다고(워아이니) 외치지만 아버지에게는 닿지 않는다. 본심을 말하는 것만큼 그녀에게 무겁고 어려운 건 없다. 그런 그녀도 토끼 같은 미야모토 선배에게 진심으로 사랑고백을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를 느끼며 성장해 나간다.

출처 : 하나와 앨리스

영화를 조금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와이 슌지의 촬영 기법은 오래전에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뽀얗고 화사하다. 필름 감성처럼 아련하고 어딘지 디지털로는 넘볼 수 없는 감성이 있다. 이따금씩 볼록렌즈로 들여다보는 장면들은 몽환적이고 동화 속에 와있는 기분마저 들게 해준다. 특유의 섬세함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아오이 유라는 배우에게 포커싱 된다.


출처 : 하나와 앨리스


모든 연출과 시나리오는 이 장면을 위한 맥커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아름답다. 변화된 그녀의 굳은 결심은 단단한 발레슈즈가 되어 감흥 없던 아티스트와 보는 모든 이의 마음을 쿵쿵 때리다. 


앨리스는 집을 청소하며 간절하게 춤을 추었던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처음으로 그녀가 욕심을 부리고 열정을 부었던 관심의 결과가 좋게 나오니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변화된 그녀의 집처럼 앨리스의 마음도 한층 성숙해 나가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두 소녀는 더 이상 뒤좇아 가지도 앞서 가지도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길을 가고 소소한 농담을 하며 나란히 걸어간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은 행복하게 웃으며 영화는 130여분의 러닝타임을 마무리한다. 사랑을 통해 성장해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감 한가득 미소를 띠게 만든다.




Authorling   |  Ja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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