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만나는 학생들은 슬프게도 대부분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미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공부했기에 가르칠 것 없는, 거의 다 알고 있는 아이들이 소수였고, 두 번 세 번 반복했음에도 여전히 계속 모르고 있는 아이들이 다수였다.
이미 아는 아이들, 이번에 또 해도 모를 아이들...
나는 모르는 척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도 모르는 척 수업을 들어준다. 연극이 따로 없다. 다 알면서도 들어주는 아이들, 또다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수업을 들어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수학은 무엇보다 스스로 혼자 이리저리 해보는 시간이 중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학원, 과외 여기저기에서 수업만 계속 듣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하기보다 남이 수학을 하는 것만 계속 구경하고 있다.
수학에 지독하게 질린 아이들
사교육에 닳고 닳은 아이들
누가 시키는 대로 암기해서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것 이라고만 배우는 아이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걱정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평생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접할 때 걱정과 귀찮음 보다는 호기심이 앞섰으면 좋겠다. 몰라도 당당하게 모른다고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적만 중요해서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는 아이가 아니라 우주가 문득 궁금하면 시험기간이라도 우주 관련 책을 뽑아 들고 읽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
솔직히 똥줄 빠지게 공부하고, 잠 줄여가며 공부시켜서 서울대, 연고대에 진학하면 미래가 탄탄히 보장되는 시기는 끝났다고 생각된다. 서울대 나온 사람보다, 음식을 즐기며 먹방을 찍는 사람이 돈을 더 벌 수도 있는 시대 아닌가. 그저 본인이 흥미가 생기면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
공부만 잘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보다는, 길거리에서 본인이 개발한 특제 소스로 떡볶이를 팔면 더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과일을 실컷 먹고 싶다며 과수원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면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지지해줄 것이다. 세상에 겁먹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만이 올바른 길, 성공으로 안내하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고 자책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성적 몇 점 떨어졌다고 세상 잃은 듯 우울해하는 아이는 아니면 좋겠다.
공부는 못해도 수업시간에 유쾌한 농담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좀 좋은 대학 못 가면 어떤가. 대학 또 안 가면 어떤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도 고졸이다.
학교에선 공부를 잘해도 한없이 우울해하는 아이도 많이 만났고, 공부를 정말 못해도 밝고 활기찬 아이들도 많이 만났다. 나는 둘 중 선택한다면 당연히 두 번째다.
미래에는 '1 더하기 1은 2'라고 답하기보다, '일 더하기 일은 과로입니다.'라고 답하는 아이가 성공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글, 학습지, 학원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우리 딸은 수학 교사의 딸인데도 숫자 쓰기 한번 시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한 자릿수 덧셈도 한다. 백까지도 센다고 한다. 초조하지 않다. 백까지 빨리 센다고 수학 잘하는 것 아니다. 한자리 수 덧셈 못해서 고등학교에서 수학 못하는 학생은 드물다. 기초 연산이 그리도 중요하다고들 강조하지만 기초 연산을 못해서 수학을 못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수능에서 1번에서 4번까지는 거의 다 푼다. 그다음이 문제다. 그다음부터가 핵심 아닌가. 그냥 수학 자체가 싫은 학생들은 엄청 많다.
우리 아이는 그냥 계속 놀고 있다. 1부터 10까지는 모르더라도, 우리 집 엘리베이터 버튼을 기똥차게 누르는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나는 현재 우리 아이들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노력만 하고 있다.
엄마 왜 학원을 보내지 않아 나를 이리 공부 못하게 만들었어? 라며 아이가 울부짖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공부 못하는 것이 왜? 그게 뭐? 그리고 학교에서 다 배우거든! 이렇게 대답할 거다.
엄마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2주에 한 권 정해진 책을 읽었다. 지정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재미가 없었다. 억지로 읽어 내렸다. 나 스스로 가입한 모임이었다. 지정 책이 있음을 알고 시작한 모임이었다. 성인인 나도 누가 하라고 정해 놓으니 정말 하기 싫었다. 아이들이 매일 학원 숙제가 넘치고, 반드시 해야 되는 문제집 페이지를 검사당하는데 수학이 과연 재미가 있을 수 있을까.
수학은 꽤나 재미있는 학문이다. 억지로 마구 채찍질해가며 남보다 뒤처질까 걱정하며, 미리 다 알려줄 그런 학문은 아니다. 1년 2년 미리 선행학습을 한 것이 자랑거리가 될 만한 그런 학문은 아닌 것 같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내가 봐도 헉 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과는 공부해야 할 양 자체가 너무 많다. 솔직히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찬성한다.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초등 때부터 그리 몰아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수학이라는 학문에 그토록 질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학원, 학교, 과외 선생님과 반복해서 수업만 듣는 것보다 스스로 책상에서 혼자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 풀이에 폭 빠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려운 문제집을 사서 이런 것도 풀어야 상위권으로 갈 수 있다고 몰아치기보다, 쉬운 문제집을 풀고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기쁨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고 아이의 나이만큼 엄마라는 자아도 나이가 드는 느낌이다. 나는 엄마 6살, 감히 내 아이를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내지도 않았으면서,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노력해서 다 키워 두신 중고등학생들만 그것도 고작 학교에서만 접해 놓고선 충고를 하는 것이 참 우습기도 하다.
내가 엄마 20살이 되면 지금의 내가 한 충고가 부끄러워질 것 같다. 나는 고작 엄마 6살, 감히 6살짜리가 무슨 충고를.
언니들이 이야기했다. 너의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내가 더 시킬 것 같다고 했다. 뒤처지는 것은 참으로 기분 나쁜 일이라고 하셨다.
정말 그럴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한 것이 아이를 낳고 내가 예상한 대로 육아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미래의 육아는 예측이 안 된다. 육아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한 치 앞을 모르겠는 육아라는 세계
확실한 건 공부만 잘하고 만사 귀찮아하며 소극적인 아이로는 절대 키우고 싶지 않다. 무기력하게 고개를 들고, 무기력한 눈빛을 가진 아이로는 절대 키우고 싶지 않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 드릴게요.’ 자세를 가진 아이로는 키우고 싶지 않다. 뒤처진다의 의미도 잘 모르겠다. 세상이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라도 점수가 높으면 앞서는 건가?
엄마가 먼저 세상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지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문득 지금 나의 육아 과정,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들을 글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기하게 요즘 책을 매일 읽으니 글을 쓰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이란 것은 참 신기한 녀석이다. 학교 글쓰기 대회에서 가수 hot의 노랫말 가사를 적어서 제출하던 내가, 완벽 이과녀인 내가 글을 쓰고 싶어 지게 만들었다. 참 대단한 녀석이다. 나라는 사람도 글이라는 세상에 창조자로 다가간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두근두근 설레다.
“엄마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보렴. 엄마도 무작정 도전해보려고 해. 우리 아들 딸도 무엇인가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때 꼭 도전했으면 좋겠어. 공부는 못해도 돼! 하지만 세상에는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