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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현 Nov 07. 2019

 나는 스마트폰 중독 엄마입니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출산 후 나를 반겨주는 오프라인 세상은 없었다. 계속 칭얼대는 아이를 데리고는 친구를 만나도, 쇼핑을 해도, 커피숍에 가도 눈치가 보였다.


첫째 아이는 지독하게 잠을 안 잤다. 유치원생이 되기 전에는 단 하루도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자다 깨다 울다 반복했다. 온갖 수면 교육을 했으나 실패했다. 책이라고는 멀리하던 내가 수면교육 책만 족히 열 권은 읽었다. 전문가와의 상담도 의미가 없었다. 호르몬 같은 것에 문제가 있나 싶어 대학병원에서 피검사도 했다. 주변에서 독하게 일주일만 울려 보라고 다들 조언을 해서, 독하게 한 달을 울려 봐도 실패했다. 윗집에 아주머니가 아동학대 신고를 할지 고민했다고 하셨다. 울리고, 달래고, 음악을 틀고, 수면 의식을 하고, 목욕을 했으나 무슨 수를 써도 통하지 않았다.


또한 아토피였다. 부모가 업어주거나, 아이를 안고 서서 뛰는 것이 아니라면, 잠투정에 짜증이 난 상태로 무지막지하게 긁어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불, 베개에 묻어있는 피를 보는 내 마음은 무너져갔다.



피가 심하게 난 날 수면교육을 때려치웠다. 남편과 교대로 두 시간씩 아이를 안고 서서 뛰었다. 뛰다가 멈추기라도 하면 귀신같이 깼다. 그 짓을 딱 2년을 채우고 나서야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어제는 밤에 다섯 번, 여섯 번 깼다며 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5분, 10분 단위로 깨다 보니 몇 번을 깼는지 셀 수도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도 잠을 깊이 자지 못하니, 하루 종일 피곤해했다. 잠투정이 어마어마했다. 유모차라도 태우면 엄마가 자기를 버듯 심하게 울부짖어서 지나가시던 할머니들도 아이가 어디 아픈지 살펴보라고 한소리씩 하셨다. 는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아기띠를 하고 서있거나, 포대기를 하고 서있거나.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불과 두 달 전 건강검진에서 신체 나이가 40대라며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뇌병변 1급 장애인이 되셨다. 아버지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나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기어코 본인이 애지중지 키우신 외동딸인 내가 아버지의 똥오줌을 받아 내는 것을 거부하셨다. 끝까지 너라도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너만이라도 행복 하라며 아버지를 혼자서 감내하셨다.


마음에서 피눈물이 났다. 매일 아빠가 벌떡 일어나시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면 지옥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며,  더욱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니 나를 평생 든든하게 지켜주던 지붕이 갑자기 휘청해서 떨어질 지경이라 그 지붕을 내가 팔로 받쳐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다. 우울증이 왔다. 현관문을 열고 있으면 도둑이 들어와서 나를 죽여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를 등 뒤로 업으면 두 손이 자유로웠다. 남는 두 손으로 하루 종일 핸드폰을 했다.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핸드폰을 보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웃음이 났다. 연예, 스포츠 기사, 웹툰을 보다 보면 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특히 인터넷 쇼핑신났다. 분명 예전에 입고 다녔을 예쁜 옷들을 구경했다. 언젠가는 이런 예쁜 옷을 입고 나도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겠지 싶어서 두근거렸다. 유일하게 설레었다. 하루 종일 쇼핑몰만 들락거리다 보니, 옷도 계속 샀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우니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어린이집을 가면서 아는 동네 아줌마들이 생겼다. 모두 육아로 지치고 힘든 전우들이다.  카카오톡에서 단체 채팅을 만들어서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좋은 사람들이었다. 반찬도 서로 나눠주고 육아정보도 공유했다. 말이 통했다. 유일하게 내 말을 다 공감해 주었다. 나도 그들의 말이 공감이 갔다. 그러다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모든 것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제 말이 트여 아장아장 걸음으로 다가와서, 함께 놀자고 서툴게 말하는 내 아이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며, 매서운 눈빛을 쏘아댔다.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육아 전우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하며 킥킥거렸다.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데 핸드폰 중독자인 내 뒷모습은 얼마나 구부정하고 초라할까.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뭐라고 생각할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나는 나처럼 핸드폰 중독자를 키울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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