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분명히 살만하다
오징어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오일남과 성기훈의 마지막 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추운 겨울,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한 노숙자가 거의 얼어 죽기 직전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오일남은 그 노숙자가 얼어 죽을 때까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성기훈에게 내기를 신청한다. 하지만 결국 한 행인이 노숙자를 도와주며, 오일남은 게임 패배를 맛보며 생을 마감한다. (자신이 패배했는지 모르고 죽었다는 해석도 있던데.. 어쨌든)
오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앞에 취객으로 보이는 5~60대 아저씨가 벽을 붙잡고 휘청휘청거리고 있었다. 의식도 있고, 움직일 수 있으신 것 같아서 일단은 집으로 올라갔다.
근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창문 밖을 내다봤는데 이게 웬걸..
그 취객 아저씨는 자리를 옮겨서 길 한복판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 것이 아닌가.. 난 그 즉시 옷을 다시 갖춰 입고 내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숨도 잘 쉬셨고, 의식도 있었다. 내 질문에 어렴풋이 대답도 했다. 그리곤 경찰에 바로 신고를 넣었다. 그리고 사진에서 처럼 골목길 한복판이기에, 어두운데 혹시나 사고가 날까 봐 경찰이 오기 전까지 아저씨 옆을 지켰다.
근데 그 과정에서 세상이 참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이긴 했지만, 지나가던 행인 3명 중에 2명이 아저씨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옆에 서있는 것을 확인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신고를 했는지 물어보시고 지나가셨다. 무려 67%의 확률로 말이다. 내가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얼마 있다가 분명 누군가가 신고를 해줬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세상은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이 생각했던 것처럼 각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인간은 서로 함께 살아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