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지] 지하철 5호선 방화사건

2025년 5월 31일

by 꽁냥이
뉴스 사진.jpg


이번 주는 유난히 힘들었다.

‘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 근무 양 옆으로 주말근무가 모두 붙어있었다. 심지어 조기출근이나 철야근무 같은 특수근무도 없었다. 단 한 가지 좋았던 건 선거기간이라 서초동의 업무로드가 많지 않았던 것이었다.


주말의 특권인 달콤한 늦잠을 자지 못하고, 지친 몸을 깨워 오전 9시 20분쯤 해야 할 오전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위잉-위잉' 그 사이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고, 재난알람이 와있었다.


재난알람.jpg


순간 멈칫하고 폰을 들여봤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겼다. 지하철 잔고장의 경우에도 매번 알람을 보내는 서울교통공사였기 때문이다. '화재'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긴 했어도 금방 꺼질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어서 본 단어는 바로 '방화'였고, 바로 같은 날 출근한 후배에게 현장으로 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본사로 향하는 전동차 안에서 노트북을 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관할 지역에 아시는 분이 계셨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이거 지하철 방화 사건이요. 정리가 좀 됐나요?"

"어 정리 다 됐고, 잡혔어"

"잡혔다고요 누가?"

"범인. 9시 20분쯤인가"


검색어는 '지하철' 네이버 뉴스 최신순을 눌러 촤르륵 살펴봐도 아직 범인이 잡혔다는 기사는 없었다.

오래간만에 머리 위로 도파민이 셈 솟았다. 지난해 봤던 영화 <댓글부대>에 나왔던 "나만 아는걸 세상에 내놓을 때만큼 짜릿한 게 없다"라는 대사는 바로 이때를 일컫는 터. 바로 윗선으로 보고했다.


신나게 기사를 작성하려고 한 순간, 선배에게 카톡이 왔다. "야 벌써 나왔다" 연합뉴스에서 용의자 체포 속보를 띄운 것이다. 굉장히 허탈한 마음이 퉁 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용의자가 토치와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는 말은 담겨있지 않았고, 이걸로 다시 단독을 시도하자는 의견을 냈다.


"40초 내로 써라"라는 선배의 지시가 내려왔다. 물론 40초는 지키지 못했지만 '[단독] "토치와 기름통 들었다"…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용의자 체포'라는 기사를 바로 송고했다. 내보내고 나니 같은 내용을 연합뉴스도 동시에 띄웠다. 선배는 다행히 물먹진 않아 다행이라고 했지만 찜찜했다. 그래서 아직 풀 되지 않은 것 같은 범행 현장 사진을 기사에 넣어 나름 정신적인 면피를 했다.


범행도구.jpg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라이터와 토치


하지만 저녁 뉴스는 상당히 쓰라렸다.

우리는 넣지 못한 소방 제공 영상이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한 4시까지도 소방 웹하드를 계속 체크했는데, 그 이후에도 체크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이런 사건 사고 기사에는 영상의 유무가 너무 큰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몇몇 방송국에서는 이번 방화범이 현행범 체포되는 모습도 영상으로 보도를 하였다. 이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수소문해보니 한 결정적인 제보자가 타사에는 미리 전화를 줬다고 한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어도 현장에 나도 갔었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남았다.


400여 명 대피. 29명 연기흡입 등 경상. 129명 현장 처치

중상자가 아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2003년 사상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기록된 '대구 지하철 참사'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결과다. 당시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지하철 내부 소재들이 불연재, 난연재로 모두 바뀌었고, 차량 안전 설비 설치가 의무화되는 등 열차 화재 사고에 만반의 대비를 했기 때문이다. 승객들과 기관사의 발 빠른 대처도 한몫했다. 타사 기사를 보니 서울교통공사 영등포사업소에서 불과 한 달 전에 열차화재상황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훈련은 항상 가상의 상황을 전제하고 하는 탓에 막상 참가자들의 열의가 떨어지긴 해도 그래도 훈련을 하고 안 하고 차이는 천지차이가 아닐까.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을 잘 새겨 또 다른 참사를 막았지만, 항상 누군가의 피를 흘려야만 안전이 개선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이 갖춰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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