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지] 이재명 대통령 자택 앞

2025년 6월 4일

by 꽁냥이

"대선 날 기자 배치입니다. 각자 확인하세요"

누구보다 빠르게 파일을 열고 내 이름이 어디에 쓰여있는지 확인했다. 당첨된 곳은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자택 앞. 6월 4일 출구조사가 끝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목이 쏠리게 될 곳이었다. 민주당을 출입하고 있는 정치부 후배와 짝을 이뤄 이곳을 커버하게 되었다. 다른 곳들보다 부담되는 스팟을 배정받아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후보의 자택은 인천 계양의 모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가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재판받던 이 후보가 신원 확인을 위해 법정에서 항상 말했던 본인의 집이기 때문이다. 느지막이 집 앞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계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KakaoTalk_20250621_142410525.jpg 4시까지만 해도 평온했다


오후 4시쯤 도착한 아파트는 한산했다.

'길을 잘못 찾아온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지 내부도 조용했다. 동호수를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아파트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한 동 앞 몇몇 주민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리 와있었던 정치부 후배와 인사를 나눴고, 아파트 로비 앞에 앉아있던 타사 정치부 후배와도 인사를 나눴다. 몇몇 타사는 일찌감치 중계용 테이블을 펼쳐놓고, 실시간 중계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뒤편에 설치된 커다란 지미집 카메라를 보니 비로소 굉장히 중요한 스팟이라는게 몸소 체감됐다. 저녁 7시까지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과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곳곳에 정장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까만 SUV 차량도 단지 앞에 주차되어 결과가 무르익은 후에 이 후보를 태워 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시계는 밤 8시를 향했다.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투표 종료와 함께 나오는 출구조사 결과에 쏠렸다. 최근 그 어느 대선보다도 시끌벅적했던 21대 대선.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긴장은 되지 않았다. 아파트 앞엔 4시간 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5, 4, 3, 2, 1! 와아!" 카운트다운과 함께 환호성이 퍼졌고, 시민들은 이 후보의 이름을 연호했다. 아파트 로비 앞으로 경호원들이 배치됐고, 경찰도 시민들이 몰리지 않게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기자들도 후다닥 자리를 잡았다. 어느 정도 당선 윤곽이 나와야 이 후보가 모습을 보일 것 같았지만, 너무 유력했던 탓에 생각보다 빨리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621_142415786.jpg 출구조사 직후 아파트 로비 앞 인파

아스팔트 위에 앉은 지 3시간이 흘렀다.

아빠다리로만 계속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려왔다. 후배는 3번 연속 중계를 하는 사이, 부끄럽게도 나에겐 별다른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로비만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이 손을 흔들기도 했는데, 장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 후보인 줄 착각하고 답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배달기사였다. 선거는 선거지만, 누구에게는 귀중한 시간이었을 텐데. 환호하는 시민들과 다르게 이날 배달기사분은 속이 타들어 가지 않았을까.


KakaoTalk_20250621_142626556.jpg 아파트로 들어가지 못하는 배달기사 분

'당선 유력'이라는 글자가 떴다.

정장차림의 한 경호원이 나와 큰 망원경을 쓰고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다른 아파트 고층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위협을 방지하는 차원인 것 같았다. 이 후보의 등장이 곧 이뤄질 것을 직감한 기자들은 신경이 곤두섰다. 아파트 사이로 함성이 터졌고, 이 후보가 김혜경 여사와 함께 모습을 보였다. 약 3시간 정도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던 한 지지자는 손수 꽃다발을 건네주어 소원을 이룬듯했다. 카메라 앞에 선 이 후보는 짧은 말을 남기고 차량으로 향했다.


"아직도 진행 중이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섣부르긴 합니다만 만약 이대로 결과가 확정이 된다면 우리 국민들의 위대한 결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제게 주어진 사명을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찰나였지만, 신기한 마음이 교차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서울법원종합청사로 재판을 받으러 오던 피고인에서 이제는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마이크를 댈 때만 해도 이 재판이 끝날까 싶었는데, 이번 대선 결과로 재판은 현 시각 부로 모두 중지되었다. 이번 21대 대선 결과에 만족한 사람도 불만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던 민주적인 절차로 뽑힌 새 대통령인 만큼, 나라를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나절의 취재였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회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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