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_다나이드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

by 이지연
image01.png 로댕_다나이드_1889년 경

스트라이크, 아웃

결혼을 1년 정도 앞두고 그 남자랑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사실 무슨 일로 싸웠는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진 않지만, 그때는 심각했던 것 같다.

(계속 이 남자를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화가 나면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무는 그 때문에 화가 났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일들이 그 순간에는 참 크게 다가온다.

조개,

내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화가 나면 입을 꼭 다무는 그 남자.

내 힘으로 절대 그 입을 열 수 없다.

그는 화가 나면 입을 꼭 다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조금씩 열리는 그 입!

내가 어떤 일로 화가 날 때 먼저 입을 다물지 않고,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게 만들어 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사람이 나에게 필요했었는데 내가 오히려 그를 위해 이렇게 하고 있었다.

(결혼한 후에도 계속 내가 이렇게 지냈다는 건 안 비밀)

한바탕 따발총을 쏜 후 다시는 나를 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나는 뛰었다.

멋있게 뛰었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초록 불빛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그 횡단보도로 뛰어갔다.

스트라이크..............아웃!

아뿔사

나는 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시트콤의 여주인공이었나 보다.

퇴근 시간, 그 사람 많다던 대학로의 번화가!

그곳의 횡단보도에서 나는 슬라이딩을 하고 말았다.

정지선에 서 있던 차들도,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도, 마주 오던 사람들도 모두 나의 슬라이딩을 함께 해주고 있었다.

어디 구멍에 머리만 콕 하고 집어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적을 만나면 머리를 땅에 파묻는 타조처럼 말이다.

그냥 누워있어야 하나,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야 하나를 잠시 고민했다.

초록 불이 깜박거리는 불빛 사이로 반대편 횡단보도에 정형외과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기로 가자,

창피함을 무릎 쓰고 다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병원 문을 향하여 달려갔다.

세이프!!

양쪽 무릎의 스타킹 구멍 그 사이로 흐르는 피, 손목에 피딱지, 어디 삔 곳이 없는지 X-ray 찍어본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 없어 드레싱만 하고 병원문을 나선다.

그가 서 있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의 안부를 묻는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돌아선 나인데 내가 그에게 먼저 다가간다.

서러움에 아니 부끄러움에 그의 가슴팍에 나의 얼굴을 파묻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

제발 오늘을 잊어주겠니?


추억은 방울방울

Don’t forget how much your family loves you.

가족들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 Our memories, they have to be passed down by those who knew us in life

-in the stories they tell about us”

“ 우리의 기억은 우리를 알던 사람들에 의해 세대를 거쳐 전해져야 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이지”

-영화 coco의 대사 중 일부


사람은 누구나 추억을 간직하고 산다.

추억이 없다면, 그 사람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누군가를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는 일, 남아있는 사람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지금 이곳에 없지만

나의 기억 속에, 나의 추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날의 슬라이딩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를 또 추억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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