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고군분투(孤軍奮鬪)
-남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힘에 벅찬 일을 잘해 나가는 것
그녀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루틴이 있다.
그 루틴은 지극히 단순하면서 한편으로는 복잡하다
자신의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집안일도, 남편을 내조하는 부인으로서 며느리와 딸로서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녀도 안다. 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지는 24시간이 그녀에겐 누구보다 긴 시간이면서 짧은 시간이다.
오늘도 그녀에게는 하루가 참 길었다.
새벽부터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남편을 챙기고,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을 지울 힘도 옷을 벗을 여력도 없다.
오로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그녀는 충전 중이다.
아, 이렇게 눈을 감고 편히 쉬고 싶구나.
찰나의 순간!
해야 할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 아직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그녀는 자신의 삶에 활력을 넣어주고 싶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하품이 나온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에게 책은 진정 사치인 것인가
욕심이었을까
나는 남들과 뒤쳐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었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힘들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즐겁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그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 무너져 버렸다.
째깍째깍 움직이던 시계도 멈춰버렸다.
그리고 공허함이 뒤따라왔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가슴에 큰 구멍 하나 잘 메울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도, 이야기를 나누어도 나의 마음은 공허했다.
채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채워주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선물 아닌 선물
남편은 생전에 책을 참 많이 샀다.
월급을 타면 항상 책을 구입해줬다.
내가 읽고 싶은 책,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 본인이 사고 싶은 책들을 늘 넉넉하게 샀다.
누가 읽는 거냐며 무슨 책을 많이 사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남편이 사둔 책에 관심을 보인 건 늘 나였다.
주인 없는 방에 들어가 남편이 사둔 책을 하나씩 살펴본다.
이런 책은 언제 읽지?
남편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햇살 좋은 거실에 앉아 책을 펼친다.
책의 내용보다 남편이 손가락으로 넘겼을 페이지에서 남편을 느낀다.
손가락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가 나와 함께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음이 채워진다. 채워진다. 아니 충만하다.
이 사람.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구나.
오늘도 나는 책 한 장이 읽기가 쉽지 않다.
책 페이지를 건드릴 힘이 없다.
나의 쉼을 허락해주는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그 곳이 바로 거기 있는데
나는 책장을 넘길 힘이 없다.
나의 삶은 온전하게 잘 보내고 있는 건가
그대는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