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행복합니다.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아니 행복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사랑하겠습니까?
네. (남자는 목청을 높여 크게 대답한다.)
그렇게 27살의 어린 신부는 34살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로 사랑하며 살 줄 알았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지면 또 보고 싶어서 나는 그 남자랑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하던 시기.
이 남자 하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이 남자에게 나는 친구 같은 부인이 되어주고 싶었다.
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반대한 사람은 우리 고모였다.
먼저 결혼 한 선배로서 만만치 않은 결혼 생활을 경험하고 있던 고모는 당신의 조카가 힘든 게 싫다고 했다.
변변치 않은 직업과 많은 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점, 그리고 시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포스가 너 고생 많이 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고모는 결혼 전날까지도 나의 결혼을 반대했다.
누가 말리면 더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나는 고모가 그렇게 말리던 ‘웰컴투 헬‘에 내 발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모는 촉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나의 15년간의 시집살이와 남편의 병간호로 힘들 나의 상황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으니 말이다. 참고로 고모는 독실한 권사 임을 밝힌다.)
우리는 늘 손을 잡고 다녔다.
산책할 때, 운동할 때, 심지어 영화를 볼 때도 항상 깍지 손을 꼈다.
손에 땀이 나도 절대 놓지 못하게 했다.
가끔은 손이 저렸지만, 그가 내 옆에 꼭 붙어있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손깍지 하나만으로도 누군가 내 옆에 서서 나를 꼭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그는 계속 등이 아프다고 했다.
마누라를 등에 업어서 그런가 장난스럽게 말은 했지만 매일 밤 내가 건네는 핫팩과 파스, 마사지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등은 점점 더 아팠고 우리는 병원을 전전했다.
그 어떤 검사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였다.
의사가 말리던 암 표지자 피검사를 남편은 하겠다고,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굳이 이걸 꼭 하셔야겠냐는 의사의 핀잔을 들으며 남편은 혈액검사를 강행했다.
CA19-9 550
남편의 담당 의사가 검사결과지를 보더니, 얼굴색이 변한다.
당장 소견서를 써주겠다며,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언제는 괜찮다더니, 안심하라더니 에잇! 나쁜 사람)
(참고로 췌장암 종양 표지자 CA19-9 정상범위가 0-37 정도이다.)
서울 아산병원 신관 건물 앞
우리는 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집에서 싸 온 남편의 간식을 건네며 나는 미소 짓는다.
우리 손잡고 한 바퀴 돌아볼까요?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힘을 낸다.
항암으로 살이 다 빠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가락이 내 손을 잡고 움직인다.
손가락에 힘은 없지만 따스함은 여전하다.
그렇게 우리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고 또 걸었다.
아산병원 건물의 안팎을 그는 내 손을 잡고 꼭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걷고 또 걸었다.
1년에 2번
친정아버지도 검진을 이유로 아산병원에 가신다.
그때마다 나는 그와 함께 걸었던 복도, 신관 앞 산책로, 함께 커피를 마시던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다 온다.
그와 함께였던 그 장소에 나를 두고 온다.
,,,,,,
꽃비가 내린다.
그는 내가 온 걸 아는 걸까
반갑다고 어서 오라고 인사하는 걸까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말하는 걸까
장인어른께 아이들과 나를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빠는 내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를 모르신다.
아빠 모르게
나는 1년에 2번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온다.
지금 나의 곁에
그림의 다정한 남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말도 없고, 그 어떤 표정도 없지만 나는 보인다. 그리고 느껴진다.
서로에게 건네고 있을 그 따뜻한 미소가 나는 느껴진다.
그저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
그리고 그리워진다.
가장으로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요즘 내게 아들이 다가온다.
엄마 충전해 줄까?
“응”하고 나는 대답한다.
아들은 두 팔을 벌려 엄마를 꼭 안아주며 토닥토닥 괜찮다고 말해준다.
충전 완료!!
또 한 명의 아들이 다가온다.
엄마 우리 손잡고 산책할까요?
손잡아 드릴게요. 저도요.
다시 충전 완료!!
남편을 보내고
새롭게 적응하는 나의 삶이 조금은 고단하지만,
남편을 대신해 나의 양손을 잡아 줄 아이들이 있어
오늘도 나는 힘을 내어 걸어본다.
너희들이 나의 사랑의 배터리로구나.
고맙다. 고마워.
옆에만 있어 줘도 힘이 되는구나.
오늘도 나는 충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