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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부서가 사라졌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by 이지안

-오늘 부서 폐지를 알리는 공고가 떴다. 며칠 전에 부장님을 통해 미리 언질을 받았지만 회사 게시판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라는 단어를 접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서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현재 부서 이름은 사라지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조직이 세팅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원 변동도 있을 예정이다. 내가 남게 될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지는 아직 모른다. 이래저래 애매해졌다.

-지금 가장 난처한 건 부장님이다. 부서명이 변경되고 다른 부장이 올 예정이다. 눈치를 보니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분위기다. 부장님은 최근 며칠간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자리를 자주 비웠다. 그동안 본인이 갈 자리를 스스로 물색했던 것 같다.

-사실상 좌천이다. 작년부터 우리 조직 임원이 부장님을 마뜩잖아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람은 착하지만 눈치가 없다’, ‘일이 느리다’라는 게 부장님에 대한 평가였다. 솔직히 나도 많이 답답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 감사했다고, 둘이 있을 때 이야기드렸다. 진심이었다. 어쩌다 지금까지 받았던 평가를 쭉 볼 일이 있었다. 어떤 리더는 요식행위로 내용을 적었다. 어떤 리더의 평가에서는 개인적인 관심을 느낄 수 없었다. 반면에 지금 부장님은 어떤 리더보다 진심을 담아 정성껏 내용을 적어주었다. 답답할 정도로 뭐든지 FM으로 하는 부장님다웠다. 그 고지식함이 그때만큼은 고마웠다.

-하지만 조직은 냉정하다. 본인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리를 떠나야 한다. 회사 경영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부서는 조용히 사라진다. 물론 내가 그 당사자가 되면 마음이 많이 괴롭다.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제이콥은 아들 데이빗을 자신이 일하는 병아리 감별 공장에 데려간다. 검은 연기가 나오는 공장 굴뚝을 본 데이빗이 무엇을 태우는 거냐고 묻자 제이콥은 맛도 없도 알도 낳지 못하는 수컷을 태우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오늘 유독 그 장면이 많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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