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운영 방식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을까?
'과연 이렇게 조직을 운영하는게 최선일까?'
회사를 다니면서 막연하게 가졌던 의구심이다. 자율보다는 관리와 통제가 중요하고, 칭찬과 동기부여보다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조직을 이끌어 간다. 처음에는 우리 조직에만 있는 현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직장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조직운영 방식은 테일러리즘(Taylorism) 혹은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에 가깝다. 테일러리즘은 20세기 초부터 주목받은 조직운영 이론이며 이 이론의 핵심목표는 경제적 효율성, 특히 노동생산성 증진에 있다.
테일러리즘은 작업을 과업 단위로 쪼갠다음 각각의 과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표준화된 작업방식을 만들어 수행한다.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찰리채플린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생산성 증진이 핵심목표이기 때문에 엄격한 통제와 관리가 회사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출처:위키백과)
문제는 지금이 4차 산업 혁명이야기가 나오는 2020년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산업구조는 변화했고, 직원들에게 중요한 역량도 바뀌었다. 생산성, 효율성 뿐만 아니라 협업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인센티브 같은 외재적 보상 못지 않게 성취감, 즐거움 같은 내재적 동기도 중요하다. 20세기의 경영철학에 근거해 21세기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어딘가 삐걱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경영방식이 지금 시대에 맞을까? 최근 주목받는 경영방식이라면 애자일(agile)이 있다. 애자일은 2001년 IT전문가들이 기존 개발 방법론에 대한 한계를 보완하고 더 나은 방안을 만들고자 새로운 방법론을 논의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문) 애자일은 그 뒤로 단순 소프트웨어 방법론을 넘어 경영 철학으로 경계를 확장했다. 애자일은 자율과 책임, 역할, 내적 동기부여 기반의 입체적 관리체계로 효율성보다 변화 적응성을 강조한다.
애자일 경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자일의 '기본가정'을 이해해야 한다. 책 <네이키드 애자일> 3장 '테일러리즘과의 비교를 통해 알아본 애자일 철학'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그중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전통적인 경영방식(테일러리즘)의 기본가정과 애자일의 기본가정의 차이를 살펴보면 평소에 조직에서 느꼈던 답답함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테일러리즘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노동을 싫어하고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일을 한다고 본다. 노동자는 그 자체로는 신뢰할 수 없고 엄격한 감독 및 통제, 위에서의 아래로의 위계, 금전적 보상 등이 필요하다. (X이론) 애자일 경영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일을 즐기고 책임 있는 일을 맡기를 원하며 문제해결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자율적 규제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또한 금전적 보상보다는 자아실현 욕구 등 고급 욕구의 충족을 통한 동기 유발이 가능하다고 본다(Y이론)
직원을 신뢰하느냐, 신뢰하지 않느냐. 책임감 있는 존재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회사 정책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기억나는 사례로는 토스의 높은 수준의 정보공유 정책이 있다. 토스는 연봉 같은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공개한다.( EO 토스의 기업문화편 3:30부터 참고) 회사 매출, 회사에 남은 현금, 1인당 카드사용 등 회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한다. 회사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록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자율적으로 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직원은 자율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기본가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스탠퍼드대학의 캐롤 드웩(Carol Dweck) 교수는 '마인드셋' 이론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2가지로 정의했다.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다. 고정 마인드셋은 인간은 타고난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타고난 재능과 역량이 있으며 이는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인식한다.
반대로 성장 마인드셋은 인간이 가진 자질은 단지 성장을 위한 출발점일 뿐 노력이나 전략, 또는 타인의 도움을 통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애초에 갖고 있는 재능이나 적성, 관심사나 기질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누구나 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존의 일반 경영이 가진 인간에 대한 관점, 감시와 처벌 등의 시스템은 인간의 고정마인드 셋을 자극해 왔다. 반면 애자일은 인간의 성장 마인드셋을 자극한다.
성장 마인드셋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사티아 나델라 취임 이후의 MS다. 사티아 나델라는 회사의 성공을 '조직 개개인이 성장 마인드를 갖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이후 MS는 시총 1위를 탈환하는 등 연일 실적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말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는 인간을 대상으로 '소마(Soma) 퍼즐 실험'을 한다. 그는 A그룹에게는 퍼즐을 완성할 때마다 돈을 준다고 했고, B그룹에게는 퍼즐이 두뇌 개발에 좋다는 이야기만 했다.
처음에는 A그룹이 빨리 퍼즐을 맞췄다. 하지만 맞춰도 돈을 주지 않는 쉬는 시간이 되자 A그룹은 퍼즐 옆에 놓인 다른 게임이나 잡지 등에 한눈을 팔았다. 반면에 B그룹은 점점 더 퍼즐에 빠져 퍼즐에만 집중했다. 이를 통해 돈이 어떤 행위에 대한 외적 보상으로 사용될 경우 인간은 그 행위에 대한 내재적 관심을 잃는 현상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 실험을 통해 에드워드 데시는 인간에는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고 수행하며 탐구하고 배우려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인간은 외적 보상만을 통해서 동기부여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전통적인 경영방식에서는 금전적 보상을 통한 외적동기부여만이 중요시 됐다. 최근 들어 외부환경변화가 극심해지면서 내재적 동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 에드워드 데시에 따르면 인간이 내재적 동기를 갖기 위해서는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며 이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선천적이며 심리적인 욕구'라고 주장했다.
시대와 사람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조직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요즘들어 강하게 받는다. 더 늦기 전에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깊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관점, 동기부여 방식, 인재육성 관점이 과연 효과적인지, 지금 시대와 직원들의 니즈에 부합하는지 하나하하나 점검해보고 맞지 않는 것은 바꿔야 한다. 직원들의 잠재력을 100% 이상 끌어낼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똑같은 월급을 주고 직원들이 더 많은 잠재력을 발휘해서 높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이득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