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화가 아닌 우리 회사에 잘 맞는 문화가 있다
국내에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가 있나요?
조직문화, HR컨설팅을 하는 전문가분에게 국내에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가 있는지 물어봤던 적이 있다. 업무 특성상 여러 회사를 만나고 그들의 조직문화를 살펴보는 분이니 평소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답은 "글쎄요 아직 못 본 것 같습니다"였다.
그 대답을 듣고 맥이 빠졌다. 지향점이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구글, 아마존 같은 외국기업들은 멀게만 느껴졌고, 그나마 국내에 있는 회사 중에 롤모델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가 없다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좋은 조직문화'라는 절대적인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회사가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의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가족 같은 조직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팀' 같은 조직을 지향한다. 하지만 고객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세일즈 포스 같은 회사는 '가족'이라는 뜻의 '오하나(Ohana)'를 중시한다. 단일한 문화가 아닌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의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질문은 '좋은 조직문화가 무엇인가요?'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맞는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요?'였다.
외부 언론에 보도될 만큼 특색있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 이전에, 기본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부터 말하는 고려사항들은 최대치가 아닌 '이것만은 지키자'는 최소치에 관한 것이다.
① 윤리적이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조직문화'를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건 조직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뉴스 중 의외로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00 조직에서 5년 이내 입사자의 퇴사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꼽히고 있다', '지속적인 성희롱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꼽히고 있다' 같은 류의 기사들이 주기적으로 자주 눈에 띄었다.
21년 9월에는 대전의 한 9급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 부당한 업무지시(출근 1시간 전 일찍 출근하여 상사의 커피를 타라고 지시), 직장 내 따돌림(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등 투명인간 취급)이 꼽혔다. 또한 국내 유명 IT 대기업에서는 임원급 상사의 지속적인 폭언과 모욕적 언행에 시달리던 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수평적인 문화, 자율적인 문화를 말하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이에 어긋나지 않는 문화여야 한다. 솔직하게 서로에게 피드백하되 인신공격을 하거나 사람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문화가 전제될 때 우리 조직에 맞는 좋은 문화가 꽃필 수 있다.
② 목표 달성과 생존에 적합해야 한다
회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비전 달성, 재무적인 성과창출, 사회문제의 해결 등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비전도 달성할 수 있고, 재무적인 성과도 창출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생존'이라는 프레임으로 조직문화를 살펴보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많은 것이 명확해진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수평적인 문화, 투명한 정보공개, 피드백 문화도 나는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과거와 달리 정보량이 너무나 많아졌고 일의 복잡성이 늘어났다. 아무리 똑똑한 리더라고 해도 한 명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기술과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서 한 명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리더라는 하나의 머리가 있고, 직원 개개인이 손발이 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직원이 머리가 되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런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되려면 관계에 있어서는 보다 수평적이어야 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서로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피드백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하고 있어서', '유명 IT기업이 하고 있어서'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 짝패의 대사처럼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것'이다.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해서 꾸준히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 조직이 생존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③ 우리 조직만의 고유한 강점을 살려야 한다
조직문화 담당자로 했던 많은 일들의 기본 전제는 '우리 조직에 있는 문제점을 찾아서 개선한다'였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자꾸 조직의 문제점만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에는 우리 조직이 문제투성이의 망하기 직전 조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조직에 문제점들이 있는 것은 맞지만 분명한 장점도 존재한다. 특히 회사의 역사가 긴 기업일수록 오랜 기간 살아남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이유를 찾고 어떻게 하면 더 강화할 수 있을지도 담당자로서 고민해야 한다.
내부 구성원들의 우리 조직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상명하복의 보수적인 문화'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찾다 보니 우리 조직의 성공 비결에는 상명하복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반골기질도 있었다. 특히 우리 회사의 주력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에는 경영진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모두를 설득했던 한 담당자의 노력이 있었다. 출시한 신제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로까지 성장해서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회사 역사 속에서 여럿 있었다.
이런 점들을 살펴봤을 때 우리 조직의 DNA에는 상사의 의견에 무조건 YES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반골기질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조직의 고유한 문화와 강점을 어떻게 증폭시킬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좋다고 알려진 구글의 문화를 지금 조직에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리 회사가 정말 좋아질까? 머릿속에서 가상의 사고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폭망이었다. 귤이 강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다른 회사에서는 잘 작동하는 문화와 제도도 우리 조직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의 토양(업의 특성, 구성원의 성향 등)을 고려하지 않은 따라 하기 식의 새로운 문화 도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세상에 100개의 회사가 있다면 100개의 소우주가 있는 것과 같다. 각 회사가 처한 상황, 구성원들의 성향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다른 회사의 문화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100% 똑같은 문화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만의 좋은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우리 조직만의 고유한 자기다움을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거쳐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잘 맞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모두가 함께 더 좋은 문화를 위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눌 때, 그 속에서 우리만의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참고자료
- 마크 베니오프, <트레일 블레이저> (20.11)
※ 세일즈 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책 <트레일 블레이저>에서 넷플릭스의 문화를 예로 들며 자신은 지향점이 다른다는 걸 명확히 밝힌다.(p180)
- 조선일보, <“직원 취급 안해줘…” 극단 선택 공무원이 친구에게 남긴 카톡엔>, 21.10.1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10/01/ZWJTUGDUZ5H3ZLNOIQ32WUUN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