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기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 나겠지
특정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일종의 '시대 감정'이 있다. 2022년을 관통하는 시대 감정은 누가 뭐래도 부러움이다. 누구는 어디를 여행 갔네, 누구는 뭘 샀네, 누구는 뭘 먹어서 좋겠다 같은 말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뱉는다.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 가사를 살펴보면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원리를 알 수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과의 '비교'다. '나'는 십만 원 밖에 없는데 '너'는 백만 원이 있기에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비교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발달한 SNS 덕분이다. 인스타그램을 켜는 순간 주변 지인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샀는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친절히 장소 태그를 걸어 000 아파트라고 주기적으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링크드인을 켜면 "000님이 이직/승진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라는 메시지도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이런 부러움을 유발하는 정보를 지금처럼 매일, 실시간으로 획득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있는 동창회 같은 자리를 갔다 와야 주변 지인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고,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플 정보도 그제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도 누가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 집을 샀다, 유명 회사로 이직했다는 정보를 들으면 부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최소한 주기가 지금처럼 짧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출근길에서도, 잠깐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도, 퇴근하고 내 방 침대에 누워서도 손가락 몇 번만 휙휙 내리면 부러움을 유발하는 각종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남과의 비교가 너무나 쉬워졌다.
문제는 남과의 비교가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자신의 책 <지적 행복론>에서 소득이 증가해도 개인의 행복은 이에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면 같은 시기에 내 주변 지인(준거집단)의 소득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5년 전에 연봉 5000만 원을 받다가 현재 연봉 1억을 받으면 행복함을 느껴야 하지만, 같은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인이 똑같이 연봉 5000만 원으로 시작해서 1억 5000만 원을 받으면, 자신의 연봉 1억이 적다고 느낀다. 절대적인 연봉은 올라갔어도 비교 대상보다는 적게 올라갔기에 불만족하게 된다.
카를 마르크스는 비교가 가져오는 불행의 원리를 짧은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집은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이웃집이 마찬가지로 좁다면 이 집은 거주 공간으로서 사회적 요건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바로 옆에 넓은 궁전이 들어선다면 이 집은 오두막이 되어버린다.¹
다행히도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날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이 많다. 행복을 측정하는 월드 갤럽의 '삶의 사다리 문항'²을 해봤는데 10점 만점에 8점이 나왔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성향 덕분이다. "그래도 우리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않아? 부모님 건강하시고, 둘이 회사 잘 다니고 있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가끔 사 먹을 수 있고. 그거면 됐지 뭐"라는 말을 실제로 아내에게 자주 한다.
비교를 전혀 안 하지는 않지만, 비교의 대상이 남보다는 나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학생 때는 치킨 한 마리 사먹으려면 벌벌했는데, 지금은 먹고 싶을 때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부담 없이 시켜 먹을 수 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먹고 싶을 때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다니, 나 성공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과거의 내가 아닌 미식 취향을 가진 직장인과 비교하게 된다면 '남들은 파인 다이닝 가서 미슐랭에 나오는 음식을 먹는데, 나는 궁상맞게 집에서 치킨이나 먹고 있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비교가 행복에 가까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를 묻기보다 현재에 나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건 뭐지?'다. 현재의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가능성을 찾고, 그걸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회사는 이래서 안 돼'라고 할 때, 속으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만은 얻어 가겠어'라고 생각한다. 매년 조금씩 더 좋은 기회들이 생기는 건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에 집중하는 마인드셋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남과 비교를 덜 하게 되는 환경을 만들자. 특히 SNS를 로그아웃하자. 링크드인을 한동안 열심히 하다가 이제는 잘하지 않는데, 링크드인을 접속할수록 불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의 이직/승진 소식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직을 잘만 하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네'라는 생각을 했다. 이럴 바에야 접속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앱을 삭제했다. (지금은 친구 신청 안내 메일이 올 때만 간헐적으로 접속한다.)
비교를 하고 싶으면 남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하자. 만약 다이어트를 해서 멋진 몸매를 만들고 싶다면 바디 프로필을 찍는 남이 아니라, 야식을 시켜먹던 과거의 나와 비교하자(오늘은 야식의 유혹을 견뎠다!) 필요 이상으로 커리어적인 성장이 불안하다면 이직하는 남을 보지 말고, 과거보다 나아진 나의 실력에 집중하자.(옛날에는 PPT도 못했는데 이제는 꽤 그럴싸하게 만들잖아?) 그리고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자.
그렇게 집중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면 비교가 일상인 세상에서 '부럽지가 않아를'를 외칠 수 있게 된다. 바로 장기하의 노래 가사처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참고자료]
1. 리처드 이스털린, <지적행복론>, 월북, 2022.04.25, 97P
2. 위와 같은 책, 28P
<월드 갤럽 설문조사 문항>
맨 아래 0점에서 시작해 맨 위 10단계가 표시된 사다리를 생각해 봅시다. 사다리의 맨 위는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삶을 나타내고, 맨 아래는 최악의 삶을 나타낸다고 합시다. 더 높은 단계에 있을 때 삶이 좋아지고, 더 낮은 단계에 있을 때 삶이 나빠진다고 하면, 지금 당신은 사다리의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단계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 가장 가깝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