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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Aug 05. 2022

누구와 경쟁할 것인가

남이 아닌 나와 경쟁하기

그러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3만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마라톤은 축제인 동시에 자신과의 경쟁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든 이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기록을 단축하거나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할 뿐이다. 자신과 경쟁해 본인 스스로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누군가를 꺾고 이기는데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마라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주이지, 짧은 순간에 힘을 쏟아야 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 찰스 핸디,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면 모두가 승자다", p137, 2022


부서 이동이 결정된 다음 임원 분과 점심을 먹었다. 임원 분은 다른 본부로 가서도 잘하라는 의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이 한 마디였다. 


"인사부 가면 인사부장 밀어낼 각오로 일해라"


그분이 한 말의 진짜 의미는 '항상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라'였을 것이다. 좋은 의도로 말한 덕담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한 마디에서 그 임원이 평소에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분에게 회사는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경쟁자'를 밀어내야 하는 냉혹한 공간이었다. 그분에게 회사는 협력과 공존이 아닌 경쟁과 투쟁의 공간이었다.  


실제로 그분은 그렇게 일했다. 항상 회사에서 자신이 가장 돋보여야 했다. 중요한 어젠다를 발굴해서 누구보다 가장 먼저 선점한 다음 사장님에게 보고해야 했다. 누구보다 빨라야 했기에 항상 '납기'를 중시했다. 권력의지가 넘치는 분이었고 실제로 회사 No.3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그 분과는 일하는 동력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던 건 승진을 하기 위해서, 어떤 자리에 오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문제를 푸는 과정이 재밌었다. 이건 왜 이럴까, 저건 또 왜 그럴까 궁금해하며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뜯어보고, 하다가 막히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다시 또 앞으로 나아가고, 그러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경험. 그 자체가 재밌었다. 오히려 못 견디는 상황은 내가 손을 댔는데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이 없을 때이다.  


나도 사람이라서 회사에서 남을 완벽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분명히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가능하면 남과 경쟁하기보다는 나와 경쟁하려고 한다. 한 해가 지나면 스스로에게 묻는 건 '올해 무엇을 배웠고 작년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이다. 최근 몇 년간은 좋은 경험을 많이 했고 대체로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스스로 정체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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